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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풍년 충무로 '펀드 붐'…예술성 과제

중앙일보

입력

'공동경비구역 JSA'로 일급 영화제작사의 자리를 굳힌 명필름(대표 심재명)은 요즘 조심스런 변신을 꾀하고 있다. 다음달 중 1백억원 가량의 영화펀드를 조성할 계획이다. 현재로선 기금 마련에 무리가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명필름은 모은 돈을 자사 영화에는 물론 때에 따라 타사 작품에도 투자할 생각이다.

심대표는 "영화 제작의 안정적 창구로서 펀드 조성은 필연적이다. 작품마다 투자자를 구하려고 애쓸 필요 없이 영화제작에 전념할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작품 하나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회사 전체의 장기 계획을 세울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 주식을 맞교환하며 로커스 홀딩스에 인수된 시네마서비스의 경우도 비슷한 차원에서 풀이된다. 국내 영화제작·배급의 큰손인 시네마서비스는 자사 주식의 63%를 넘겨주는 대신 로커스홀딩스가 발행한 신주를 인수해 1백50억원의 추가 재원을 확보하게 됐다. 영화 제작·배급에 원군을 얻은 것이다.

한국 영화계에 영화펀드 조성이 활발하다. 최근 급성장한 우리 영화계의 현주소를 웅변으로 보여준다. 영화 관련 투자가 지난해까지 주로 개별 창투사·벤처사 차원에서 이뤄졌다면 올해엔 보다 체계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정보통신산업 분야처럼 영화 제작을 전문으로 하는 기금이 속속 결성되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펀드바람은 제작·배급사 모두에 공통된 현상이다. 시네마서비스와 함께 한국영화 투자·배급의 양대 축을 이루고 있는 CJ엔터테인먼트(대표 이강복)는 이번 주 안에 80억원 가량의 별도 펀드를 조성할 계획. 또다른 배급사인 튜브엔터테인먼트(대표 김승범)도 조만간 1백억원 규모의 투자조합을 출범시킬 예정이다.

영화계에선 이런 대형 영화펀드가 다음달에 대략 8∼10개 정도 더 생길 것으로 점치고 있다. 그만큼 많은 돈이 영화계로 유입되는 것. 또 지난해 말 발족한 4백억원대의 각종 펀드를 합하면 한국 영화계는 전대미문의 여유자금에 둘러싸이게 된다.

긍정적인 점은 한국영화 제작의 토대가 단단해진다는 것. 투자사의 금융기법과 영화사의 제작 노하우가 결합하면서 우리 영화산업이 과학화·조직화하는 전기가 될 수 있다. 풍부해진 자금을 효율적으로 운용하면 세계 영화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경쟁력을 갖추게 된다.

하지만 낙관하기엔 아직 이르다. 영화자본의 대형화에 따른 부작용을 우려하는 시각도 만만찮다. 상대적으로 부족한 콘텐츠(영화)에 비해 많은 돈이 갑자기 밀려드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자칫 내용이 부실한 영화가 양산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형 제작·배급사의 펀드에 합승하지 못하면 작품성이 훌륭해도 영화는 죽고 마는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

또 수익률을 앞세우는 펀드의 속성상 상업·예술영화의 균형적 발전도 숙제로 꼽힌다. 심재명 대표는 "말처럼 쉽진 않겠지만 급증한 투자액에 부응하는 양질의 작품을 만들어내는 게 관건"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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