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수 뒤 능청스럽게 다시 친 사람 이름서 따왔다고 …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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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8호 19면

첫 번째 티잉 그라운드에서 잘못 친 샷을 취소하고 다시 한번 샷을 할 때 ‘멀리건(Mu lligan)’이라고 부른다. 원래 멀리건은 한 라운드에 한 번만, 그것도 골퍼가 원하는 아무 때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오로지 첫 번째 홀 티잉 그라운드에서만 허용되는 게 관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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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쳤는데도 원래 샷보다 더 나쁜 결과가 나오면 ‘피니건(Finnegan)’이라고 불렀다. 세 번째 샷 역시 첫 번째 샷보다 나쁘면 ‘브래니건(Branagan)’, 네 번째 샷마저 더 나쁘면 ‘플래너건(Flanergan)’이라고 한다. 멀리건은 자선 골프대회 때 한번 더 샷을 할 때마다 돈을 더 내게 함으로써 기부액을 늘리는 유용한 방식으로 이용되기도 한다. 지인들끼리 라운드할 때에는 9홀마다 한 번씩 멀리건을 허용하기도 한다. 멀리건으로 한 번 더 쳤는데 피니건이 발생한 경우 처음 친 볼로 플레이하는 변칙도 종종 목격할 수 있다.
멀리건은 1940년대 미국 골프장에서 사용되던 용어인데 미국골프협회(USGA) 박물관 자료를 보면 어원에 대한 몇 가지 설이 있다. 첫 번째는 1920년대에 데이비드 멀리건이라는 사람이 캐나다 몬트리올에 있는 세인트 램버트 골프장에 자주 갔는데 한 번은 만족스럽지 못한 티샷 때문에 다시 공을 티에 올려놓고 샷을 했다. 그는 스스로 그 샷을 ‘수정샷(Correction Shot)’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그의 동료들이 “그보다는 ‘멀리건’이라고 부르는 게 낫겠다”며 그렇게 불렀다고 한다. 당시 멀리건은 호텔을 여러 개 소유한 유능한 사업가이면서 한때 뉴욕시의 월도프 아스토리아 호텔의 매니저이기도 했다. 그가 멀리건 샷을 즐기게 되자 동료들이 “멀리건이라 부르기로 했다”는 소문도 순식간에 퍼져나갔다.

두 번째는 미국 뉴저지주의 에섹스 펠스 골프장의 라커룸 담당 직원이었던 존 버디 멀리건에게서 비롯됐다는 설이다. 존 버디는 손님이 없는 날엔 클럽 소속 프로인 데이브 오코넬, 클럽의 회원이자 신문기자였던 데스 설리번과 함께 라운드를 하곤 했다. 그런데 어느 날 그가 첫 번째 샷을 실수하자 “두 사람은 오전 내내 연습했으니 그러지 못한 내게 한 번 다시 칠 기회를 달라”며 간청했고 그들의 허락을 받아 다시 쳤다고 한다. 존 버디는 그 후 라커룸에서 회원들과 만날 때마다 두 사람으로부터 동의를 받아 다시 쳤던 얘기를 자랑처럼 늘어놓았다. 그 얘기가 재미있었던지 회원들이 라운드할 때 실수가 나오면 존 버디 멀리건을 흉내내며 그의 이름을 따 ‘멀리건’이라 불렀고 다시 치는 것이 유행처럼 번졌다. 그 얘기를 설리번 기자가 신문에 실으면서 ‘멀리건’이라는 용어가 본격적으로 사용됐다고 한다. 이 얘기는 2005년 ‘투데이 쇼’라는 TV 프로그램에서 소개되기도 했다.

세 번째는 멀리건이 아일랜드인의 흔한 이름이었다는 데서 나온다. 20세기 초반 미국 동북부는 아일랜드 영향이 컸던 지역이고 아일랜드계 미국인들이 당시 멋들어진 골프장의 회원으로 가입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에 대해 반아일랜드인 정서가 생겨났고 멀리건이라는 용어도 만들어졌다는 설이다.

네 번째로, 과거에는 요즘처럼 티펙을 사용하지 않고 주변의 잔디나 흙을 모아놓고 그 위에 볼을 놓고 스윙을 했는데 그 잔디 혹은 흙더미를 ‘멀(mull)’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라운드 도중 미스 샷이 나오면 골퍼가 한번 다시 쳐보고 싶을 때 캐디에게 “멀-다시(mull-again)”라고 했는데 그것이 1940년대 크게 퍼지면서 멀리건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과거 술집에서 공짜로 먹을 수 있는 술병 하나를 바에 진열해 놓고 원하는 고객들로 하여금 마시도록 했는데 그 공짜 술병을 멀리건이라고 불렀다고도 한다. USGA박물관은 이 얘기는 소개하고 있지 않다.

이처럼 멀리건에 대한 어원이나 기원에 대해 수많은 ‘설’이 존재하지만 어느 하나 입증할 만한 증거는 없다. 어찌 됐든 멀리건 샷이 나오지 않아야 골프가 즐겁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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