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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분야 벌여 전원이 뛰게 만드는게 진짜 구조조정이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 93년 직원 5백여명을 줄이는 대수술을 단행하면서 신재철 사장은 ‘이건 아니다’라고 느꼈다. 그래서 강조하는 게 ‘상시적 구조조정’. 인원을 줄이는 대신 시장의 변화에 신속히 대응할 수 있도록 새로운 분야를 발굴, 이에 대한 투자를 계속하는 것이다.

한국IBM 신재철 사장(54)은 사람을 아주 살갑게 대한다. 직원들의 말을 빌자면 “마치 기다렸다는 듯 반갑게 맞아준다”고 한다. 인터뷰가 있던 3월 9일 오후. 신사장은 약속시간보다 10여분 늦게 나왔다. 10일부터 2주간의 일정으로 출장이 계획돼 있어 처리할 일이 많았다며 미안하다는 말을 연발했다. 그리고는 악수를 청했다. 마치 잘 알고 있는 사람을 오랜만에 만나는 듯 힘주어 손을 잡고는 기자의 손등을 자신의 왼손으로 서너 차례 가볍게 톡톡 두드렸다.
그는 무엇보다 사람을 소중히 여긴다. 항상 말로, 행동으로 먼저 상대방에게 친밀감을 표시한다. 처음 만난 사람이 신사장 앞에서 쉽게 마음을 여는 것도 그 때문이다. 사람에 대한 그의 애정은 구조조정에 대한 견해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한국IBM은 지난 93년 대규모 구조조정을 단행했습니다. 1천5백명의 직원들 중 5백여명을 줄이는 대수술을 실시한 것이죠. 이 과정에서 떠나는 사람이나 남은 사람 모두 큰 고통을 겪었습니다. 그걸 보면서 ‘이건 아니다’고 느꼈습니다. 구조조정은 인원을 줄이는 게 아니라 정보 시스템을 이용해 프로세스를 조정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그때 깨달은 거죠.”

신사장은 그래서 ‘상시적 구조조정’을 주장한다. 인원을 줄여나가는 대신 시장 변화에 신속히 대응할 수 있도록 새로운 분야를 발굴, 이에 대한 투자를 계속해 나가는 것이다.

신재철 대표 약력
  • 1947년 8월 28일生
  • 1970년 서울대 전기공학과 졸업
  • 1990년 서울대 최고경영자 과정 수료
  • 1994년 미국 하버드대 Program for Management Development과정 수료
  • 1973년 한국IBM 입사
  • 1979년 영업부장
  • 1982년 제조 유통기관 지사장
  • 1987년 영업총괄관리본부 전무이사
  • 1990년 경영관리본부 전무이사
  • 1991년 사업총괄 수석 전무이사
  • 1994년 아태지역 운송 및 공익사업 총괄본부장
  • 1995년 아태지역 에너지서비스산업 총괄본부장
  • 1996년 한국IBM 대표이사 사장

  • “끊임없이 조금씩 각도를 틀어줘야지 한꺼번에 크게 틀어버리면 꺾여 버리지 어디 버틸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매년 말 직원들에게 강조합니다. 그동안 해왔던 것들 중 15∼20%를 버리고 대신 25∼30%의 새로운 분야를 발굴해 내도록 말입니다. 연초에 그러한 것들을 검토해 경영에 적극 반영, 새로운 인적, 물적 투자를 합니다.”

    올해 시장을 이끌 분야로 그는 리눅스, 무선(wireless), e-비즈니스 인프라, 서비스 등을 꼽고 여기에 집중적인 투자를 계획하고 있다. 특히 리눅스에 대한 그의 기대는 크다. 최근 리눅스협의회 회장직을 수락한 것이나 내달 중 리눅스지원센터를 오픈하는 것도 다 이런 맥락에서 비롯된 것이다.

    신사장의 이러한 시도는 이미 큰 성공을 거둔 것으로 평가받는다. 1천명으로 줄었던 직원들이 현재는 2천명을 넘어서고 있으며 아직도 인력이 부족, 늘 채용의 문을 활짝 열어놓고 있다. 벌써 올해 들어서 만도 86명의 인력을 신규로 채용했을 정도. 또 항상 새로운 분야를 발굴, 투자하다 보니 시장의 변화를 읽고 재빨리 대응하는 능력도 갖추게 됐다. 이제 한국IBM은 과거의 업체가 아니다.

    “예전에는 IBM 하면 컴퓨터 등 하드웨어만 떠올렸잖아요. 하지만 지금은 솔루션 개발업체로 더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지속적으로 체질 개선을 한 덕분이죠. 저희 회사를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종합 솔루션 메이커입니다.”

    빙모상 사실 숨기고 강연

    신사장은 올해 한국IBM의 목표를 ‘지속적 성장’과 ‘변신’ 두 가지로 잡았다.

    “지난 해 매출 신장률이 28%였습니다. 올해는 시장 상황이 좋지 않아 지난 해보다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두 자리수 성장은 반드시 달성할 것으로 확신합니다.”

    변신에 대해 신사장은 큰 밑그림을 그리고 있다. 우선 협력회사와의 완벽한 파트너십에 기초한 마케팅 분야 강화를 가장 중요한 것으로 꼽고 있다.

    “IBM과 파트너사가 상호 연계해 완벽한 그림이 나올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자면 파트너사에 대한 지원이 반드시 뒤따라야겠죠. 이를 위해 오는 4월 ‘솔루션 파트너십 센터’를 열어 파트너사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을 방침입니다. 또 유기적인 연계를 통해 수요도 공동으로 창출해 나갈 계획이에요. 결국 IBM의 무게 중심은 세일즈에서 마케팅으로 이동하게 될 것입니다.”

    그는 ‘고객지원 시스템 강화’도 변신의 한 축으로 상정해 놓고 있다. 고객만족도 면에서 업계 1위 자리를 고수하기 위해서는 고객지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고객이요? 저희들을 먹여 살리는 분들이잖아요. 그런 면에서 모든 활동의 출발점이 바로 고객이라 생각합니다. 아직 고객지원 시스템이 완벽하다고는 볼 수 없습니다. 그래서 더욱 변해야 하는 것이죠.”

    이처럼 고객을 소중히 여기는 신사장은 항상 그들과의 약속을 먼저 내세운다.

    지난 해 모 그룹 경영진을 대상으로 e-비즈니스와 관련한 강연을 하기로 계획돼 있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강연이 있기 바로 전날 빙모상을 당했다. 그는 부음 기사를 원치 않았다. 다음 날 아침 약속을 지키기 위해 신사장은 빈소에서 바로 강연장으로 향했고 강연에 참석한 사람들 중 누구도 신사장이 상중에 강연한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다. 이런 그의 일화는 지금도 직원들 사이에서 고객의 중요성을 이야기할 때마다 언급되고 있다.

    신사장은 정통 IBM 맨이다. 지난 73년 IBM에 입사한 이래 지금껏 자리를 지키고 있다. 외국계 기업에서 거의 30년 동안 생활해 온 그는 요즘 한창 회자되고 있는 글로벌 스탠더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궁금했다.

    “투명성과 공개주의가 기본 아닐까요. 또 조직에 의한, 그리고 지위에 의한 리더십이 아니라 가치 창조를 유도하는 리더십도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밖에 개인을 존중하고 다양성을 인정하는 자세도 빼놓을 수 없지요.”

    그런 차원에서 그는 ‘앞서가는 창조적 소수’가 되길 강조한다. 세계의 역사는 늘 다수가 아닌 소수, 그 중에서도 창조적인 자들에 의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직원들이 첨단기술을 바탕으로 한 정보산업의 선두주자로서 나름대로의 색깔과 긍지를 가질 수 있도록 리더십을 발휘하고자 신사장은 항상 노력한다.

    그의 일정은 모든 직원들에게 전부 공개된다. 사내에서는 이를 ‘오픈 캘린더’라 부른다. 신사장이 스케줄이 없을 때는 필요하면 직원들이 신사장 일정을 짤 수도 있다. 회사에서 요구하는 스케줄에 따라 사장이 움직이는 것이다.

    그는 또 열린 경영을 표방한다. 대표적인 것이 ‘Tell CC’. 신사장(CC: 신재철 사장 이름의 영문 이니셜)에게 직언(Tell)한다는 취지로 지난 96년 그가 사장에 취임한 이후 창안한 내부 커뮤니케이션 제도다. 직원들은 회사에 대한 다양한 의견과 고충을 사장에게 직접 전달하고 이에 관해 사장으로부터 답변을 듣는다. 지금까지 연간 평균 80여 건의 Tell CC가 올라오고 있으며 신사장이 이를 직접 챙긴다. 여기에서 제기된 문제와 조치는 수시로 사내망을 통해 공개된다.

    대학을 졸업하고나서부터 한 번도 제대로 쉬어본 적이 없다는 신사장. 남은 여생에 가장 해보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맘껏 쉬어보고 싶어요. 그리고 난 후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해 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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