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억대 상장회사 몰락 뒤에 기업사냥꾼과 뒤봐준 강남 경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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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기업사냥꾼들로부터 사건 수사를 청탁받고 이들의 약점을 잡아 12억원을 가로챈 현직 경찰간부가 검찰에 적발됐다. 검찰은 범행에 가담한 경찰관이 더 있는 것으로 보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수원지검 특수부(부장검사 차맹기)는 발광다이오드(LED) TV용 부품 제조업체를 인수해 회사 자금 100억원을 빼돌린 혐의(특경법상 횡령·배임 등)로 코스닥 등록업체인 L사 실제 사주 이모(48)씨를 구속기소하고 이 회사 대표이사 신모(43)씨를 불구속기소했다. 또 이들로부터 사건 수사 청탁과 함께 5억원을 받고 이들의 약점을 잡아 7억원을 갈취한 혐의(특가법상 뇌물 등)로 서울 강남경찰서 소속 김모(43) 경위를 함께 구속기소했다. 또 100억원의 대출을 알선하고 이들로부터 3억원을 받은 모 자산운용사 대표 주모(53)씨와 130억원어치의 부실 회사채(BW)를 인수하는 대가로 3억9000만원을 받은 모 증권사의 계열사 간부 2명도 함께 구속기소됐다.

 검찰에 따르면 이씨는 2007년 말께 L사를 인수한 뒤 회사 자금 100억원을 빼돌려 개인 채무변제 등에 사용한 혐의를 받고 있다. 대표이사 신씨는 분식회계로 이씨의 횡령 사실을 숨겨준 혐의를 받고 있다.

 김 경위는 2009년 12월 L사와 다른 업체가 채권채무 때문에 다툼이 생기자 이씨에게 상대 업체를 고소하도록 하고 사건을 수사해 35억원의 합의금을 받도록 도운 혐의를 받고 있다. 김 경위는 합의금 중 5억원을 수고비 조로 받아 챙겼다. 또 청탁 사건을 수사하면서 알게 된 L사 경영진의 범죄 사실을 내세워 자신이 L사 계열사에 투자했던 2억원어치의 주식을 7억원에 매수하도록 한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 관계자는 “김 경위 외에 다른 경찰관 여러 명이 사건에 연루된 정황을 잡고 수사 중”이라고 말했다.

 L사는 2004년 10월 코스닥에 상장된 뒤 삼성·LG 등 대기업에 LED TV용 레이저 도광판을 납품하는 건실한 업체로 성장했다. 한때 자산 규모가 1000억원에 이를 정도로 성장하다가 이씨 등에게 회사가 넘어간 뒤 4년여 만인 지난해 말 결국 등록 폐지됐다.

수원=유길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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