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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운동권 방식 고집하면 진보정치 발전 못해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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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이 이석기·김재연 통합진보당 의원에 대한 자격심사에 돌입했다. 향후 국회 판단은 정치권 초미의 관심사다. 관건은 민주통합당, 특히 당내 운동권 출신 의원들의 생각이다. 민주통합당의 486 운동권 대표 주자는 우상호(50·사진) 최고위원이다. 그는 1987년 6월 항쟁 당시 전대협 부의장이자 연세대 총학생회장으로 학생운동을 이끌었다. 그런 그가 30일 중앙SUNDAY와의 인터뷰에서 “통합진보당에 있는 운동권 출신들의 의식과 행동 방식을 보면 아직도 과거 운동권 때의 낡은 도구들을 쓰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헤게모니를 장악하기 위해 편법을 동원하는 건 국민을 상대하는 정치에선 정당화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사상을 문제 삼아 국회의원을 제명한다는 발상은 어이가 없다”면서도 이같이 밝혔다. 다음은 일문일답.

-통합진보당 내 운동권 출신 인사들의 문제점은 뭔가.
“아직도 운동으로서의 정치를 하고 있다. 정치는 국민과의 관계가 중요하다. 그런데 이분들은 아직도 자기들 집단에서 운동을 하듯이 정치를 한다. 그러니 집단 내 헤게모니를 잡고 비밀그룹을 만들어 움직이는 게 더 중요하다. 운동을 하다 보면 목적이 중요하니 절차를 사소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국민을 상대하는 민주주의는 결과도 중요하지만 절차와 과정도 중요하다. 동의를 얻지 못하면 정당성을 얻지 못한다. ‘운동 마인드’는 일부 절차상 하자가 있어도 ‘옆의 친구가 죽어가고 있는데 지금 (절차가) 중요하냐’며 봐주는 것인데 운동권 땐 용인됐을지 몰라도 현실 정치에선 그런 게 아니다. 또 지금이 그런 시대도 아니다. 과거 80년대 운동권의 조직 운영 방식을 고집하면 진보 정치가 발전할 수 없다.”

-왜 ‘80년대 운동권 마인드’가 계속된다고 보나.
“이석기·김재연 의원과 관련된 논쟁을 보면 이분들은 아직도 운동권으로서의 선민의식을 갖고 정치권에 침투한 듯한 느낌이 든다. 여기서 (부정 경선 등) 여러 문제가 생겨난다. 깊숙한 내심엔 자신들이 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심리가 숨어 있는 듯하다. 그러나 (이런 태도로는) 오히려 진보 정치의 어려움을 초래한다.”

-경기동부연합이 수면 밑에서 진보당을 좌지우지한다는 비판을 받는데.
“옛날처럼 운동권 서클을 중심으로 지휘부가 따로 있고 나머지를 조종하는 일이 지금 어떻게 가능할 수 있겠나. 그렇다면 당의 공식 지도부는 도대체 뭔가. 예를 들어 지금 우리 당에 486 지휘부가 숨겨진 채 따로 있고 이들이 당을 조종한다면 그게 말이 되나. 그런 방식은 낡은 조직 형태인 데다 당을 사유물로 여기는 것이다. 정당의 공공성과 공익성을 저해한다. 나는 운동권 출신들이 진보 정당에 들어와 진보적 가치를 지키는 순기능을 존경한다. 그런데 정당은 국민을 대표한다. (통합진보당에선) 이념·정책의 진보성과 실제 당 운영의 낙후성이 충돌하고 있다.”

-자격심사를 통해 제명하는 방안에 동의하나.
“‘색깔론’은 안 된다. 그러나 선거 부정 여부는 국회의원의 정통성에 관한 문제인 만큼 통합진보당의 조사 결과가 심각한 것으로 나오면 국회에서 (의원 자격을) 논의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니 당 내부의 진상 규명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 양당 합의는 이 정도 수준이라고 생각한다. 선거 부정에 대한 진실 확인 없이 반드시 두 의원을 제명시키자고 합의한 것은 아니다.”

-두 의원과 통합진보당의 일부 세력을 놓고 ‘종북’ 논란이 벌어지는데.
“나는 주사파 출신들이 정치권에 와 있을지는 몰라도 사상으로서의 주사파는 사라졌다고 본다. 특히 북한의 3대 세습이 진행되는 순간 남한 주사파는 사라졌다. 말을 안 하고들 있지만 3대 세습이 남한 주사파에 준 충격은 크다. 그나마 남아 있던 주사파에게도 이는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솔직히 진보 진영은 3대 세습에 대해 대체로 어이가 없다는 반응이다. 나는 주사파가 가장 많이 사라진 시점을 김대중 정부 때라고 본다. 당시 화해협력 정책으로 북한에 가서 현실을 보고는 ‘가 보니 지상낙원이 아니었다’며 많이들 바뀌었다.”

-종북에 대한 비판을 ‘색깔론’으로 반박하는 게 적절한가.
“새누리당이나 보수 진영에선 아직도 우리나라에 주사파가 엄청 많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건 80년대 얘기다. 그렇다면 실체가 없는 유령을 만들어 색깔론으로 공격하는 것이다. 내가 이렇게 얘기할 수 있는 것은 80년대 학생운동을 하면서 당시와 이후 사상적 흐름의 변화를 봤기 때문이다. 새누리당에도 과거 사상에 몰입했던 분들이 있지만 우리가 빨갱이라고는 하지 않지 않는가.”

-그러면 북한에 대한 진보의 입장은 뭔가.
“첫째, 북한과의 체제 경쟁은 끝났다. 북한은 남한을 도발할 수는 있어도 전면적으로 침범할 능력은 없다. 기름이 있어야 탱크를 굴린다. 둘째, 북한의 급격한 몰락은 남한에까지 영향을 줘 파국을 불러온다. 그러니 북한이 몰락하지 않고 자립하게 도우며 이를 통해 우리가 볼 피해를 최소화하고 남한의 발전을 도모하자는 것이다. 예컨대 금강산 관광객 박왕자씨가 숨졌는데 이에 대한 사과와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는 것은 어느 정부건 당연히 할 일이다. 그런데 북한을 압박한다고 관광을 장기간 막아 고성 지역에서만 3000억원의 피해를 보고, 야반도주하는 가장도 생겼다. 북한을 압박하는 게 필요할 때가 있지만 그것도 우리 피해를 최소화하면서다.”

-민주통합당에선 경제민주화가 화두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자는 건가.
“보수층 인사들은 진보의 변화를 잘 읽지 못한다. 이건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자는 것이다. 정부의 재정 지원을 주로 중소기업·서민으로 돌리고, 조세의 공평성 문제를 들여다보자는 거다. 경우에 따라 규제가 들어간다 해도 과도한 혜택, 지나친 재벌의 독점, 시장의 공정성 훼손에 대한 규제이지 부자를 증오해 부자의 부를 빼앗아 나누겠다는 게 아니다.”

-앞으로 진보·보수 관계는 어때야 하나.
“모두가 정치를 통해 국민을 더 잘살게 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인데 해법에 차이가 있다. 그런데 해법을 놓고 논쟁하는 와중에 ‘너 빨갱이 맞지’라고 하면 해법 경쟁이 사라진다. 이건 건강하지 않다. 나는 개혁적 보수와 합리적 진보가 대한민국을 잘살게 경쟁하는 시대가 선진화 시대라고 본다.”

채병건·강나현 기자 mfemc@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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