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학교 폭력 가해자 그게 내 아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277호 14면

학부모라면 공감 100%다. 집단따돌림을 받은 여중생이 교실에서 목을 맸다는 극의 배경은 직접 겪어본 적 없는 충격적 소재지만, 등장하는 부모들이 너무도 리얼해 극의 전개는 차라리 일상적이다. 대한민국 어느 학교에서 언제 벌어졌대도 이상하지 않다. 연극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는 현직 교사인 작가 하타자와 세이고 원작으로 2008년 일본에서 초연된 우리 시대의 연극이다. 올 초 낭독 공연으로 선보여 뜨거운 호응을 받은 작품을 김광보 연출이 무대에 올렸다. 학교폭력이라는 사회문제를 다루고 있는 듯하지만 실은 부모란 이름으로 살아가는 어른들의 두 얼굴을 확인하는 소름끼치도록 리얼한 무대다.

연극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 7월 29일까지 세종문화회관 M시어터

자살한 여학생이 유서에서 지목한 다섯 친구의 부모들이 상담실로 모인다. 현직 교사의 눈이기 때문일까, 교사와 부모들의 행동과 심리 묘사가 적확의 경지다. 다섯 쌍의 부모 캐릭터에 우리 시대 학부모 군상이 압축돼 있다. 목소리 큰 학부모회장과 대기업 간부 남편, 조손가정이라 어딘지 위축된 조부와 조모, 냉정과 논리를 가장한 교사 커플, 외국물 좀 먹은 이혼녀, 나서지 못하고 주변을 맴도는 평범한 주부. 이들은 쉽게 섞이지 못하면서도 ‘내 아이만은 ...’이라는 공감대 아래 집단이기주의란 무엇인지 온몸으로 웅변한다.

암전 한번 없이 한 호흡으로 진행되는 단선적인 전개지만 흡인력이 대단하다. 고정된 무대에서 온전히 언어로만 설명되는 연극이지만 새로운 유서가 한 장씩 발견될 때마다 호기심은 효과적으로 증폭되고, 익숙한 캐릭터들이 전혀 예상치 못한 조합으로 극적 재미를 만들어 간다. 불리한 상황을 아전인수로 논지를 흐리고 적반하장으로 역전시키는 부모들의 논리적 궤변의 향연엔 왠지 모를 기시감에 무릎을 치게 된다. 가장 다혈질인 윤정모와 가장 이성적인 지수부가 찰떡궁합을 이뤄 사건 은폐 환상의 복식조로 활약하는 모습은 단연 백미다.

가해자 다섯 친구는 한 번도 무대에 등장하지 않지만, 진실을 감지하면서도 은폐로 대동단결한 부모들의 이중적 태도에서 모르쇠로 똘똘 뭉친 아이들의 모습이 생생히 그려지는 것은 곧 작품 제목의 반어적 수사다. 부모들은 자기 아이의 결백만 주장할 뿐 아이들과의 만남과 대화는 원천봉쇄된 상태다. 왕따를 넘어 부모와 자녀 간 소통의 부재를 건드리는 것은 어쩌면 그것이 ‘왕따’ 문제의 근본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은폐하려 할수록 점점 죄어오는 불편한 진실에 부모들이 마지못해 아이들을 찾아나서는 열린 결말엔 뒷맛이 개운치 않다. 하지만 아무래도 좋을 것이다. 반성하지 않는 가해자들과 은폐하려는 부모들의 만남에 희망적 결론이 나오지 않을 것임은 모두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저들 중 나는 과연 어떤 부모인지, 내 모습을 분주히 찾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 이 연극의 미덕일 뿐.
저들 중 어느 하나, 어쩌면 저들 모두일 수도 있다는 깊은 공감은 중견배우들의 연기몰입 덕분이다. 윤정모 역의 서이숙은 내 아이 학교의 회장엄마 바로 그녀였고, 개성적인 부모들 틈에서 우왕좌왕하는 평범한 다현모 역 우미화는 가장 많은 부모들을 대변했다. 끝까지 방관자로 사건의 중심에서 비껴 있길 택한 비겁한 그녀에게서 닥치고 시류에 편승해 살아가는 99%의 우리를 본다. ‘살아야 하니까’라는 작품의 마지막 대사가 스스로를 변호한다. 누가 저들의 얼굴에 침을 뱉겠는가.

50년 전 이 학교를 졸업했지만 ‘50년 전과 똑같다’고 말하는 예림 조모 역 손숙의 대사는 이 연극이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임을 암시한다. 부모도 아이도 결국 똑같은 얼굴이며, 부모가 변하지 않는다면 아이도 학교도 변하지 않을 것이기에. 하지만 우리를 똑바로 비춰 보여주는 거울 같은 무대가 있기에 희망도 없지 않다. 연극은 묻는다. 당신은 과연 어떤 얼굴의 부모냐고.

김소연(연극평론가) 우리를 경악하게 하는 것은 사건의 진상이나 죽음 앞에서의 애도와 반성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역시 사건의 공모자였으며 이 끔찍한 현실에 아이들만큼이나 무기력하다. 우리는 왜 괴물이 되었을까. 소재의 충격을 넘어서는 드라마는 여기에서 시작된다. ★★★☆

박정기(연극평론가) 현재 연극계에서 주시하고 있는 청소년 연극으로 더없이 적절한 소재다. 일본 작가의 작품이지만 김민정 작가가 완벽에 가깝게 각색했다. 학원계의 집단 괴롭힘 문제를 당사자뿐 아니라 관객 모두에게 책임을 지우고 그 타개책을 묻는다는 점에서 새로운 의미를 부여할 만하다. ★★★★★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