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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문명이 잃어버린‘생각하는 손’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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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7호 22면

1 박종선의 월넛 데스크

“조선 목가구의 핵심은 ‘가늘다’는 것입니다.”
박종선(43)은 조선조 목가구의 전통을 세련된 감각으로 현대화하는 ‘하이브리드 목수’다. 그는 ‘가늘다’는 말을 최적의 상태에서 얻어지는 “적절히 비어 있는 검박함”이라고 설명한다. 불필요한 것들을 모두 제하고 난 후 비로소 얻어지는 아름다움이라는 말이다. 2년 전 강원도 원주의 작업실을 처음 방문했을 때의 기억이 생생하다. 그는 한창 페어 출품작의 마감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중에는 그의 대표작인 우주인처럼 생긴 긴 다리 조명도 있었다. 창고에는 이 작품을 위해 만든 다리가 세 개나 더 있었다. 깎아 보니 나무의 결 등이 마음에 들지 않아 네 번째 것을 다시 만들었단다. 내 눈에는 다 똑같이 훌륭해 보이는데, 그의 눈은 세심한 차이를 모두 구별해냈다. 그날 나는 장인적 완결성이 무엇인지 보았다. 그러니 그의 작품이 세계 최고의 디자인 페어인 바젤 디자인 마이애미에서 3년 연속 매진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장인』(21세기북스, 2010)을 쓴 리처드 세닛은 예술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사회학자다. 그는 신자유주의 체제하에서 인간이라는 문제를 놓고 오랫동안 연구해 왔다. ‘현대문명이 잃어버린 생각하는 손’이라는 화두를 내세운 이 책에서 그는 ‘삶의 가치와 일의 의미’를 추적한다.

이진숙의 ART BOOK 깊이 읽기 <38> 리처드 세닛의 『장인』

2 박종선의 메이플 오디오사진 중앙포토

장인에서 너무 멀어진 현대 예술가
장인과 예술가가 결정적으로 분리되는 시점은 르네상스 시대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미켈란젤로는 장인에서 예술가로 바뀌는 근대적인 변화를 극적으로 보여준 예들이다. 대부분의 미술사는 초월적인 천재로서의 예술가 숭배를 당연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나는 미술사에서 벗어나 ‘예술가’라는 현상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느낀다. 현대의 예술가들은 이제 그 출발점인 ‘장인’으로부터 너무 멀어져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미술관에 남자용 소변기를 들고 등장했던 뒤샹은 예술가의 개념을 또 한번 바꾸어놓았다. 뒤샹과 더불어 예술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개념’이 되었다. 기성제품(readymade), 소위 오브제(object)의 도입은 분명 현대미술의 언어를 풍부하게 만든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손이 아닌 머리가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된 것이다. 개념의 판단 기준은 논리적 적확성이다. 물론 복잡해진 사회 속에서 분명 예술가들이 전하는 말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런 개념의 대두 속에서 ‘아름다움’의 가치는 망실됐다. 리처드 세닛이 “현대문명이 잃어버린 생각하는 손”이라는 화두를 내건 것만큼, 나는 “현대미술이 잃어버린 아름다움을 만드는 손”에 대해 한번쯤 생각해 보고 싶었다.

다시 책으로 돌아가서 세닛의 일반론적인 분석에 귀를 기울여 보자. 세닛은 정성을 들여 장인 노동의 특수성에 대해 논구한다. 고대 도공부터 벽돌공, 바이올린 명인 스트라디바리, 요리 전문가, 현대의 리눅스 시스템 참여자들까지 그가 드는 예는 매우 다양하다. 어떤 일에 종사하건 중요한 것은 장인의식이다. “장인의식은 면면히 이어지는 인간의 기본적 충동이며, 일 자체를 위해 일을 잘해내려는 욕구”, 궁극적으로는 양이 아니라 질을 추구하는 의식이다. 그는 책 곳곳에서 손의 건강함과 “손과 머리 사이의 긴밀한 관계”를 주장한다. 인간 두뇌의 발전은 손의 노동과 함께 이루어졌다. 문제의 설정 과정이 문제의 해결 과정이며, 그 문제의 해결이 곧 새로운 과제를 설정하는 장인의 노동 과정은 인류의 진보 과정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라는 것이다.

손과 머리가 분리될 때, 결정적으로 타격을 입는 것은 오히려 머리라고 그는 주장한다. 나치의 살인 기술자들과 원자폭탄을 발명한 과학자들은 손과 머리가 분리되면서 생긴 가장 큰 문제점을 노정한 역사적 사건이다. 장인의 노동 과정에서 목적과 수단은 분리되지 않는다. 앞서 든 예는 목적과 수단이 분리돼 노동이 단순한 수단으로 전락한 예다. 그 결과는 무시무시한 윤리적 타락이었다. 손과 머리가 조화로운 관계에서 상호 협조하는 장인의 노동 과정을 존중함으로써 세닛은 사회의 건강함을 회복하고자 한다. 그는 장인노동의 특징을 분석하면서 감성과 지성성의 통합, 경쟁보다는 협력, 대결보다는 적응과 조절이라는 패러다임을 제시한다.

손·머리가 황금비율일 때 아름다워
현대미술은 이미 개념미술과 더불어 건널 수 없는 강을 건넜다. ‘재주 좋은 손’만으로는 아무것도 될 수 없다. 아니 원래 ‘생각하는 손’의 최정수였던 미술에서는 손과 머리가 원래 분리될 수가 없었다. 좋은 재주를 부린 작품이 아니라 감동적인 작품이 미술사에 기록된다. 예술에 담긴 사유는 글로 배워서 예술로 옮긴 것이 아니라 예술작품과 함께 탄생하고 조탁되는 것이다. 그래서 정말 좋은 작품은 사람의 눈만 빼앗는 것이 아니라 마음도 송두리째 빼앗는다.

다시 하이브리드 목수 박종선에게로 돌아가 보자. 최근 그의 작품은 ‘조선시대 선비의 사랑방’을 현대적으로 꾸민 것이다. 그것은 최소한의 크기로 최적의 상태를 추구하는 것이다. 예컨대 테이블을 만들 경우 예전 선비들이 쓰던 서안처럼 객과 주인이 공유하는 최소한의 크기를 지향했다. 시각적으로 최적인 상태의 추구는 삶의 최적의 상태에 대한 사유와 연관이 있다. 질을 추구하는 장인적인 노동은 늘 새로운 사유를 촉진시킨다. 그리고 이런 노동 속에서 나오는 사유는 삶이라는 굳건한 뿌리를 가지고 있어 흔들림이 없다. 손과 머리가 황금비율을 이룰 때 아름다움은 찬란한 그 얼굴을 감동적으로 드러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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