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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지 수학 쌤 50여 명, 1박2일 특별과외 … 백령도 수학마법에 빠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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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신기한 수학버스-서해 3도 수학체험전’이 27일 인천시 옹진군 백령면 백령중?고등학교에서 열렸다. 교육기부에 나선 홍익대·인하대·대진대·숭실대 대학생 도우미 교사들과 백령중학교 학생들이 백령도 사곶해변을 산책하고 있다. 이들 손에 들린 것은 수학의 원리를 쉽게일깨워주는 기자재들이다. 초록색 상의를 입은 백령도 학생들이 대학생 교사들과 즐거워하고 있다. [김경빈 기자]

“소청·대청·백령도 학생들, 환영합니다. 서울·부산·청주에서 50명 넘는 선생님들이 왔습니다.”

 27일 오전 9시 인천시 옹진군 백령면 백령중·고등학교(교장 윤현상) 강당. 신현용(수학교육과) 한국교원대 교수가 “재미있는 수학을 마음껏 즐겨봅시다”라며 개회사를 끝내자 강당을 가득 메운 초·중·고생 335명이 박수로 환호했다. 연수 때문에 잠시 육지에 나간 교장을 대신해 장기환 백령중·고 교감이 답사를 했다. “먼길 오느라 수고하셨습니다. 섬 학생들을 수학의 마법으로 안내하실 선생님들께 감사드립니다.”

 학교는 백령도 백령초·백령북포초, 대청도 대청초·중·고, 소청도 대청초 소청분교 등 3개 섬 초·중·고교생 430여 명으로 북적였다. 이들 세 섬 초·중·고교생 490여 명 대부분이 모인 것이다.

 학교 체육관과 10개 교실에선 ‘신기한 수학버스-서해3도 수학체험전’이 반나절 동안 열렸다. 학생들이 직접 수학 기자재를 만지며 수학적 원리를 체험하는 행사다. 올 7월 열리는 ‘제12차 국제수학교육대회’(ICME-12) 조직위원회(위원장 신현용 교수)가 기획했다.

대청초등학교 소청분교 5학년 오수영·김은진, 1학년 하정민 학생(왼쪽부터)이 다면체 거울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소청분교의 전교생인 이들은 이 행사에 참가하기 위해 대청도에서 1박을 하고 행정선으로 백령도에 왔다.

 “ICME-12는 수학교육에 대한 이론적 논의를 하는 학술대회지만 궁극적 목표는 수학 교육을 개선하는 것이거든요. 이런 취지에서 ‘신기한 수학버스’를 마련했어요. 교과부가 올봄 발표한 ‘수학교육 선진화 방안’과 같은 맥락의 행사죠.”(박경미 홍익대 수학교육과 교수)

 남한에서 가장 서쪽에 있는 섬인 백령도는 인천항에서 300t급 쾌속선을 4시간 넘게 타고 소청도·대청도를 거쳐야 닿을 수 있다. 북한군 서해 병력이 밀집해 있는 황해도 장산곶과 불과 13㎞ 정도 떨어져 있다. 이런 지역적·안보적 특수성 때문에 3개 섬은 교육 여건이 열악할 수밖에 없다. ICME-12가 첫 방문지로 백령도를 선택한 배경이다.

 ‘신기한 수학버스’ 팀에는 장훈(인하대 수학과), 정달영(숭실대 수학과), 이정례(대진대 수학과), 김부윤(부산대 수학교육과) 교수도 동참하고 있다. ICME-12 조직위원을 맡고 있거나 개별적으로 수학 대중화에 노력을 기울여온 이들이다. 이들 교수에게서 지도를 받는 홍익대·인하대·대진대·숭실대 수학 전공 대학생 48명도 교육기부에 나섰다.

학생들이 ‘사이클로이드 미끄럼틀’을 체험하며 즐거워하고 있다.

 교수와 학생들은 하루 앞서 백령도에 당도해 이 학교 체육관과 교실에 60여 종의 수학 기자재를 진열했다. 체육관에 놓인 27개의 테이블에는 학생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교구들이 놓였다. 공배수의 원리가 담긴 톱니바퀴, 원 넓이 실험기, 피타고라스의 의자, 레오나르도 다빈치 다리 등이었다. 교실 10곳은 색종이로 다면체 접기, 축구공 만들기, 정사면체 분할 퍼즐 맞추기 등의 체험 공간으로 변신했다. 이날 진열된 수학교구들은 교수와 대학생들에게 역시 생소한 것들이었다. 장 교수가 수학 대중화를 위해 설립한 ‘수학사랑’이라는 교육기업에서 개발·제작했다.

 대학생들은 이들 기자재를 이용해 섬마을 학생들을 수학의 마법에 빠지게 했다. 박소영(홍익대 수학교육학과 2학년)씨가 맡은 사이클로이드(cycloid·원 위에 한 점을 찍고 그 원을 직선 위에 굴렸을 때 점이 그려나가게 되는 궤적) 미끄럼틀은 교구 중 가장 덩치가 컸다. 학생들의 발길도 가장 많이 모았다.

타원형으로 만들어진 당구대 앞에서 ‘타원형의 초점’에 대해 공부하고 있는 백령면 북포 초등학교 2, 3학년 학생들.

 “하늘에 있는 독수리가 땅 위의 먹이를 빨리 잡아채려고 하면 어떤 곡선을 그리며 내려와야 할까?” 소영씨 질문에 심수진(대청초 6학년)양 등 초등학생들이 서로 얼굴을 쳐다봤다.

 “자, 여기 미끄럼틀에서 같이 실험해볼까” 소영씨는 직선·포물선·사이클로이드 곡선·원 등 네 가지 형태의 미끄럼틀에서 동시에 색색의 공 4개를 내려보냈다. 공이 가장 빨리 내려온 쪽은 사이클로이드 미끄럼틀이었다.

 직선이 가장 빠를 것이라는 예상이 틀리자 수진양 등 학생들의 얼굴에 호기심이 가득했다.

 “독수리는 본능적으로 사이클로이드 곡선이 가장 빠른 강하 곡선이라는 걸 알고 있는 거야. 한옥 지붕의 경사면이 직선이 아니라 곡선 형태인 것도 같은 원리이고. 그래야 지붕에 떨어진 빗물이 가장 빨리 흘러내리거든.”

왼쪽부터 정용호 교과부 연구사, 김부윤·이정례·박경미·신현용·정달영 교수.

 소영씨 설명에 학생들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수진이는 “수학이 어렵고 복잡한 것인 줄만 알았는데, 도구로 실험을 하면서 배우니까 신기해서 재미있네요”라며 즐거워했다. 수진이는 “나중에 여기 선생님처럼 재미있게 수학을 설명해주는 교사가 되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대부분의 학생에게 이런 체험 학습은 처음이었다. 이날 학생들 중에선 소청도에서 온 소청분교 전교생 세 명이 특히 눈에 띄었다. 전교생 중 막내인 1학년 하정민군은 한동안 쭈뼛거리며 체육관을 돌아다녔다. 그러다 원형 다리 쌓기 같은 기자재를 장남감 다루듯 가지고 놀았다. 정민이는 “누나, 이것 봐라. 진짜 신기해. 쓰러질 것 같은데, 안 쓰러져” 하며 자신이 쌓은 만든 다리를 함께 온 김은진양(소청분교 5학년)에게 자랑했다.

 고등학생들도 수학 기자재를 신기해했다. 백령고 3학년 이동준군도 그중 하나다. “삼각형의 내심과 외심을 그냥 공식대로 외웠거든요. 그런데 이렇게 실험기에 삼각형을 넣어 회전시켜보고, 삼각형 위에 모래를 뿌려보니 왜 공식이 그렇게 나온 것인지 이제 알게 되네요.”

 정달영 교수는 테이블 옆에서 학생들의 반응을 살피다 같이 미소를 지었다.

 “수학은 직관적 관찰을 통해 우선 흥미를 느끼는 게 중요해요. 그래야 그 다음에 ‘왜 그럴까’ 하는 궁금증을 자연스럽게 갖게 되죠. 그런데 우리 수학 교육은 입시에 대비한 문제 풀이 능력을 키우는 과목으로 변질됐죠. 한국 학생들이 문제 풀이 능력은 세계적이지만 수학에 대한 흥미는 매우 낮아요.”

 조직위원회는 이날 체험전에 앞서 3개 섬의 4개 학교에 각각 50만원 상당의 수학 기자재를 기증했다. 이날 행사는 포스코·중앙일보·인천시교육청·한국교총이 후원했다.

 ICME-12 조직위원회는 ‘신기한 수학버스’를 연중 프로그램으로 진행하기로 했다. 올여름에는 경북 칠곡 인평중, 전남 신안군 압해중 등 4곳을 찾아간다. 이곳에 가는 비용은 눈높이대교가 후원하겠다고 나선 상태다. 조직위원회는 독지가나 관심 있는 기업의 후원을 받아서 신기한 수학버스와 수학 교구 기증을 내년 이후에도 계속 이어나갈 예정이다. 동참 문의는 수학문화원(e-메일 c_hoon@naver.com)에서 받고 있다.

◆ICME-12=제12차 국제수학교육대회(http://icme12.org). 국제수학교육대회(International Congress on Mathematical Education)는 4년마다 열리는 세계 수학교육계의 최대 행사다. 1960년대에 시작해 12번째 대회가 올 7월 8~15일 서울 코엑스에서 개최된다. 국내 개최는 이번이 처음이다. 학술대회, 수학교사 연수, 수학 축제 등 세 부분으로 진행돼 1만 명 이상 참여 신청을 했다.

‘신기한 수학버스’ 말말말 

현지 교사들

“섬지역 학교로는 기적 같은 일이었습니다. 섬에는 학습 의욕이 떨어지는 학생들이 많습니다. 학생들이 좋아했다는 것만으로도 큰 성과입니다. 오랫동안 학생들의 몸에 기억될 것입니다. 아이들이 수학을 좋아하면 좋겠습니다. 감사드립니다.”(권순학 백령고 수학교사)

 “학생들이 평소 많은 체험을 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섬마을 학생들에 대한 배려에 많이 놀랐고 고마웠습니다. 멀리 떨어진 섬까지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지요. 우리 학생들의 삶에 오랫동안 긍정적 영향을 주리라 생각합니다. 나중에 대청도에 꼭 놀러 오세요. 정말 아름다운 섬입니다.”(권태룡 대청고 수학교사)

섬마을 학생들

“이런 좋은 행사가 많이 열려 우리 후배들이 꿈을 넓게 가지길 바랍니다.”(백령고 3학년 박민정)

 “그동안 수학에 대해선 공식, 숫자 등 복잡한 것만 떠올렸어요. 어렵기만 하던 수학이 놀이와 같이 쉽게 느껴졌습니다.”(백령고 2학년 김예빈)

 “남자 대학생 선생님들이 진짜 멋있고 자상하고 재미있어 좋았어요. 호호호~.”(백령중 1학년 홍명희)

수학 교수·연구자들

 “수학은 역시 체험이에요. 섬마을 학생들에게도 역시!”(이정례 대진대 교수)

 “때 묻지 않은 순수함으로 가득 찬 서해3도 학생들, 그리고 자신의 교육재능을 기부한 대학생 도우미들에게서 한국 교육의 미래를 엿보았습니다.” (김부윤 부산대 교수)

 “콧노래가 흥얼흥얼 어깨춤이 들썩거리는 아이들 모습이 귀여웠어요. 수학시간이 오늘만 같았으면 합니다.”(정용호 교과부 수학교육정책팀 교육연구사)


북한이 코앞 … 군사작전 같았던 ‘백령도 수학 교실’
전교생 3명 소청분교, 행정선까지 동원해 참여

‘신기한 수학버스-서해3도 수학체험전’은 군사작전을 방불케 했다. 서해 낙도라는 특성상 소청도·대청도 학생들이 27일 오전 9시에 일제히 백령도에 모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기상 조건에 따라 배가 결항할 가능성이 상존하는 데다 날씨가 좋더라도 이들 섬에서 백령도행 첫 배는 점심때나 있어서다.

 참가자 중 가장 큰 관심과 환영을 받은 이들은 3개 섬 중 가장 작은 소청도의 학생들이었다. 인구 100명의 소청도에는 학교가 딱 하나로 대청도에 본교를 둔 소청분교다. 분교 학생은 5학년 동갑내기인 김은진양과 오수영군, 그리고 1학년 하정민군 셋이 전부다. 올해 정민이가 입학하지 않았다면 분교는 폐교될 뻔했다. 은진이와 수영이가 입학하기 전 몇 년간은 학생 수가 너무 적어 학교가 문을 닫기도 했다.

 지난해 봄 소청분교에 부임한 송현제(36) 교사는 수학체험전 참가를 위해 학생들과 1박2일 나들이를 해야 했다. 하루 앞서 대청도에 나와 권태룡 대청고 수학교사의 집에서 하룻밤 신세를 졌다. 다음 날 아침 대청초·중·고생 60명과 합류해 백령도에 오는 데에는 옹진군청의 도움을 받았다. 권 교사는 대청도 학생들의 배편을 위해 옹진군청에 여러 차례 협조 공문을 보냈다. 군청은 행정선에 어업지도선까지 동원해 학생들에게 당일 왕복 배편을 제공했다.

 난제는 또 있었다. 수학체험전에 쓰이는 교구를 담은 2.5t 전용 탑차를 인천에서 백령도로 운송하는 것이었다. 인천~소청도~대청도~백령도 구간을 오가는 여객선은 자동차를 싣지 못한다. 탑차는 화물선에 실려 12시간 뒤에야 백령도에 도착 했다.

 장기환 백령중·고 교감은 “육지와 3개 섬에서 500명에 가까운 인원이 일시에 백령도에 모여 무사히 행사를 마친 것은 기적 같은 일”이라고 말했다. 풍랑은 말할 것도 없고 안개가 많이 끼는 지역 특성 때문에 배가 출항하지 못해 발이 묶이는 일이 허다하기 때문이다. 서해3도 구간은 1년 중 100일 이상 배편이 결항된다. 다행히 체험전 전후로 이곳은 기상이 좋았다.

 세 개 섬 중 가장 큰 백령도도 교육 여건은 열악하다. 초·중·고생이 300명가량이다 보니 학원도 없다. 백령도나 대청고 학생들 중 경제 형편이 넉넉하고 인천에 연고가 있는 사람은 방학 때 인천에 머물며 학원을 다닌다. 이렇다 보니 서해3도 학생들에게 수학체험전은 값진 경험이었다. 서해3도 학교들은 체험전으로 정규 수업을 대체했다. 박경미 홍익대 교수는 “서해3도 학생을 대표해 소청도 1학년 하정민군이 행사 개막 테이프를 자르도록 하는 등 추억과 꿈 만들어주기에 정성을 쏟았다”고 말했다.

중앙일보·JTBC 취재진 6명의 ‘미디어 특강’도 열기
“방송 기자는 외모로 뽑나요 … 기자직 보람은 뭔가요”

“기자님들이 꼭 전교생을 만나주시면 좋겠어요. 섬에 있다 보니 애들이 언론인을 접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신기한 수학버스-서해 3도 수학체험전’을 이틀 앞둔 25일 이희경 백령고 수학교사가 취재진에 전화를 걸어왔다. 수학 대중화라는 행사 취지에 공감한 중앙미디어네크워크에선 중앙일보, JTBC, 코리아중앙데일리 등 3개 매체가 공동 취재에 나서기로 한 터였다. 한글·영어·방송으로 이 행사를 국내외 독자들에게 입체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6명의 취재진이 백령도에 간다는 것을 이 교사가 듣고 특강을 요청한 것이다.

 기자들이 초청받은 프로그램은 이 학교에서 올 3월부터 매달 두 차례 진행하는 ‘휴먼 라이브러리’ 였다. 자신의 분야에서 즐겁게 일하고 있거나 굴곡진 인생을 살아온 사람들을 학생들이 만나게 하는 행사다. 26일은 전국 단위 학업성취도 평가가 실시된 날이었지만 시험이 끝나자마자 중·고생 200여 명이 기자들을 만나기 위해 강당에 모였다.

 취재진은 강당에서 백령고 2학년 김예빈, 김민정, 손가희, 김송란 학생들의 인터뷰에 응했다. 학생들은 한 시간 가까이 ‘언론인이 되려면 어떤 전공을 해야 하나’ ‘방송기자는 외모를 보고 뽑나’ ‘사진기자가 쓰는 카메라는 어떤 사양인가’ ‘기자로서 보람은 무엇인가’ 같은 질문을 쏟아냈다. 청소년답게 ‘카메라발을 잘 받는 비법’을 묻기도 했다.

 학생들에게 큰 호응을 얻은 이는 23년 경력의 김경빈 사진기자였다. 김 기자는 1996년 경찰병원에 입원 중이던 전두환 전 대통령이 잠깐 창밖을 내다보는 순간을 찍은 사진(33회 한국보도사진전 대상 수상작)의 특종기를 소개했다. 김 기자가 “이 한 장의 사진을 위해 6일 밤낮을 잠복해 있었다”고 말하자 학생들은 ‘와’ 하고 감탄하며 박수갈채를 보냈다. 전정아(백령고 2학년)양은 “기자직에 대한 궁금증이 많이 풀렸다”면서 “기자들의 열정과 도전정신을 읽을 수 있는 뜻깊은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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