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어붙는 주택시장 … 분양·입주 물량 느는데 수요는 바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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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말 정부와 많은 부동산 전문가는 올 하반기 주택시장이 회복될 것으로 전망했다. 유럽 재정위기, 정부와 서울시의 정책 엇박자 등 경제에 나쁜 영향을 미치는 불확실성이 해소되고 매수세가 조금씩 살아날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이다. 상반기는 어려워도 하반기는 살아나는 ‘상저하고(上低下高)’ 전망이다. 6개월이 지난 지금 분위기는 싸늘하다. 하반기 주택시장 반등을 예상하는 전문가는 찾기 힘들다. 잘 해야 ‘상저하중(上低下中)’이고, ‘상저하저(上低下低)’가 대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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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반기 부동산 시장 전망


 주택시장을 둘러싼 경제 여건이 좋지 않다. 최근 한 달 사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아시아개발은행(ADB), 국제통화기금(IMF) 등이 모두 한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3% 초반대로 하향 조정했다. 대외경제 의존도가 큰 한국 경제에 유럽 재정위기, 중국 경기 침체 등이 부담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행도 동조하는 분위기다. 김중수 총재는 “해외 위험요인이 심각해져 경기의 하방 위험이 더 커졌다”고 말했다.

 비관적 경제 전망으론 주택시장 회복을 기대하기 어렵다. 은행은 주택 대출을 축소할 수밖에 없고 가계의 실질 소득은 떨어진다. 전문가들은 “물가는 오르고 임금은 제자리걸음을 걸으면서 가계의 주택 구매력은 계속 위축되고 있다”며 “글로벌 경제 위기가 계속되면 주택시장도 침체를 면치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주택 공급량은 많은 편이다. 국토해양부에 따르면 올해 주택 입주량은 35만2000가구로 작년보다 1만3000가구 늘어난다. 이중 하반기에 19만1000가구 몰려 있다. 하반기 입주량의 63%(12만2000가구)는 수도권에 위치한다. 지난해 동기 대비 1만4000가구 많아진 것이다. 나비에셋 곽창석 사장은 “수도권에서 입주량이 몰린 고양, 김포, 수원, 남양주 등에는 전세입자를 구하지 못하는 ‘역전세난’이 생길 수도 있다”고 말했다.

 분양 물량도 많다. 올 하반기 전국에서 14만5000여 가구가 분양된다. 수도권 2기 신도시인 경기도 화성시 동탄2신도시 등지와 판교신도시 알파돔시티 주상복합아파트 등 입지여건이 좋은 지역의 값싼 아파트가 대거 분양된다. 올해는 시세보다 싼 보금자리주택 공급도 15만 가구 예정돼 있고 새 보금자리지구도 1~2곳 추가 지정된다. 부동산부테크연구소 김부성 소장은 “시장 침체가 장기화된 상황에서 시장의 관심이 싼 보금자리주택 등에만 쏠릴 가능성이 크다”고 예상했다.

 주택 수요는 계속 위축될 전망이다. 수도권엔 재건축 공공성 강화, 한강르네상스 백지화, 뉴타운 출구전략 등 수요심리를 억누르는 악재가 많다. 지방도 거래량이 줄어들면서 시세 상승세가 꺾이는 분위기다.

 국민은행에 따르면 5월 전국 ‘매수세우위지수’는 30.7로 2009년 3월 이래 최저 수준이다. 전국 중개업소를 대상으로 산출되는 매수우위지수는 100을 기준으로 낮을 수록 매수 우위의 비중이 낮다는 의미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해 주택거래량은 감소 추세다. 지난 5월 전국 주택 매매거래량은 6만8000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0.2% 줄었다. 올 들어 매월 월평균 20~50% 정도씩 감소하고 있다. 주택산업연구원 김덕례 연구위원은 “이런 추세가 하반기에도 이어져 급매물이 늘고 미분양이 쌓이면서 집값도 1% 정도 떨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런데 위축된 수요를 살릴 마땅한 대책도 기대하기 힘들다. 하반기 대선을 앞두고 정부가 추가 부동산대책을 내놓을 가능성이 크지만 총부채상환비율(DTI) 한도 확대 등 수요를 자극할 대책을 내놓긴 어렵다. 이명박 대통령은 최근 가계부채 증가 우려 때문에 DTI 한도 확대가 어렵다는 입장을 명확히 했다. 국민은행 박원갑 수석부동산팀장은 “정부 대책이 더 나와도 하락폭을 조금 둔화시키는 효과에 머물 것”이라고 내다봤다.

 경매시장은 활기를 띨 것이란 전망이 많다. 기존 주택시장이 침체를 겪으면서 경매에 넘어가는 물건이 늘어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올해 들어 월간 기준 법원경매 물건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 올 1월 8300여건에 불과하던 경매 물건 숫자가 지난달 5월 1만100여건으로 증가했다. 부동산태인 정대홍 팀장은 “전용면적 85㎡ 미만 아파트 물건이 늘어나는 등 실수요들에게 인기 있는 경매물건도 늘어나는 추세”라며 “저렴하게 내집마련을 하려는 사람들이 몰리면서 경매시장이 활기를 띨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방 인기 지역과 소형 주택 시장도 상대적으로 활기를 띨 전망이다. 상반기 인기를 끈 세종시, 혁신도시, 지방 대도시의 분양시장에 사람들이 몰리고, 역세권 오피스텔, 도심 단독주택 용지 등에 꾸준히 매수세가 따를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주택 매수는 실수요 차원에서 급매물을 중심으로 고르되 무리한 대출은 절대 삼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대우증권 김제언 부동산팀장은 “주택을 구입해서 생기는 기대 수익이 주택담보대출 이자에 못 미치기 때문에 투자목적으로 주택을 사는 것은 절대 금물”이라고 말했다.

 집을 팔 사람이라면 내년을 도모하는 게 좋다는 의견도 나온다. 내년 새 정권 출범하면서 내수경기를 활성화할 경우 부동산 시장에 다시 회복 기대감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투모컨설팅 강공석 사장은 “지금은 급매물도 거래가 안되기 때문에 버틸 수 있다면 내년에 팔 기회를 노리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박일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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