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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김정은 ‘개혁’에 나설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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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강영진
논설위원

지난해 12월 17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사망하고 젊은 후계자 김정은이 권력을 넘겨받았을 때 국내외 관측통들은 북한이 개혁에 나설 것인지에 큰 관심을 보였다. 스위스에서 9년을 보낸 김정은이라면 과감한 개혁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의견이 많았고 북한의 체제 특성과 가혹한 대외환경을 고려할 때 못할 것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그러나 김정은이 개혁에 착수할 것이라는 보도는 최근까지 계속되고 있다.

 가장 먼저 개혁 가능성을 예측한 사람은 박재규 전 통일부 장관. 그는 김정일 사망 직후 인터뷰에서 “김정은 노동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을 중심으로 중국의 개혁개방 정책을 북한 체제에 맞게 채택하는 방안을 연구해 왔다는 말을 김정일 국방위원장 측근으로부터 들었다”고 밝혔다. 당시 수많은 국내외 전문가들도 북한이 개혁에 착수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그러자 북한 스스로 해외의 전망에 맞장구를 치고 나왔다. 양형섭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부위원장이 1월 중순 평양에서 AP통신과 한 회견에서 “새 지도자 김정은이 지식기반 경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고 중국을 포함한 다른 나라들의 경제개혁을 살펴보고 있다”고 밝힌 것이다.

 이어 2월에는 북한 소식에 밝은 북한전략정보서비스센터(대표 이윤걸)가 북한 고위급 소식통을 인용해 지난해 8월부터 김정일 사망 전까지 노동당 조직지도부, 대외 및 경제정책 부서들, 내각 등 각 부서의 과장급, 책임부원급 몇 명씩을 선발해 중국식 경제개혁 사업을 진행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모든 공장과 기업소의 생산수단을 개인이 아닌 집단에 임대해주고 연말에 수익의 일정 부분을 국가에 바치는 형식으로 하려 했다는 것이다.

 또 지난 4월 중순에는 일본 마이니치신문이 김정은이 1월 28일 당간부들에게 “자본주의 방법을 도입하는 것에 위축되지 말고 북한 경제 재건축을 위한 방법을 찾으라고 지시했다”며 주민생활 향상을 위해 개혁을 서두를 것을 주문했다고 보도했다. 또 북한은 4월 6일 김정은이 당 중앙위원회 일꾼들에게 “경제 문제에서 제기되는 모든 문제를 내각에 집중시키고 내각의 통일적인 지휘에 따라 풀어나가는 규율과 질서를 철저히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밝혔다.

 미국 타임지도 김정은이 4월 15일 김일성 출생 100주년 열병식 연설에서 “인민들이 다시는 허리띠를 조이지 않게 하고 사회주의의 풍요와 부를 맘껏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게 당의 확고한 방침”이라고 강조한 대목을 두고 개혁 가능성을 전망하는 보도를 했다. 가장 최근에는 동아일보가 26일 “김정은의 특별 지시에 따라 올해 초 내각 산하에 ‘경제관리방식 개선을 준비하는 소조’가 꾸려졌고 이르면 8, 9월에 경제개혁 방안이 나온다는 기대가 높다”고 보도했다.

 이처럼 북한 스스로 외부에 개혁을 준비 중임을 알리고 이것이 바탕이 돼 각국 언론이 앞다퉈 북한의 개혁 가능성을 높이 전망하는 상황이다.

 사실 수십 년 동안 경제난에 시달려 온 북한에서 경제개혁이 화두가 되지 않은 적은 없었다. 다만 개혁이라는 말 대신 ‘개선’이라는 용어를 고수하는 것이 다른 점이다. 외부의 기대와 달리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를 포함하는 자본주의 방식의 전면적 도입을 의미하는 ‘개혁’은 한사코 거부해 온 것이다. 그 대신 국가 단위의 중앙집중식 계획경제를 완화해 각 기업소·공장·농장에 생산과 분배의 자율권을 확대하며 인센티브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운영 효율화’에만 초점을 맞춰온 것이다. 이 점이 북한에서 ‘개혁’과 ‘개선’의 차이다. 수요와 공급에 따라 가격이 결정되는 시장의 기능을 상당히 받아들이면서도 사회주의 경제체제의 핵심인 ‘집단주의 원칙’은 결코 포기한 적이 없었다.

 이번엔 외부의 기대에 걸맞게 자본주의 방식을 본격 도입할 것인가. ‘자본주의 방식을 도입하는 것에 위축되지 말라’는 김정은의 발언을 그런 뜻으로 해석할 수 있는가. 대다수 전문가들은 부정적이다. 그렇다고 북한이 추진하는 ‘개선’이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개선의 종착점은 결국 ‘개혁’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역사의 증언이다. 물론 1990년대 동유럽 국가들처럼 정권과 체제가 한꺼번에 뒤집어지는 일은 기대하기 어렵다. 그 대신 중국이나 베트남처럼 경제발전에 발맞춰 서서히 정치체제도 변해가는 과정을 밟을 것이다. 그렇다면 북한의 ‘개선’은 충분히 ‘개혁’에 걸맞은 관심을 받을 만하다. 적절한 지원 방안을 고려해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