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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국인이다! 1948년, 뜨거웠던 런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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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64년 전 영국 런던, 28세 동갑내기 두 명이 첫 올림픽 무대에 섰다. 한 명은 성조기, 다른 한 명은 태극기를 가슴에 단 채. 소속도 달랐고 서로 알지도 못했지만 둘은 한국인이라는 하나의 끈으로 연결돼 있었다. 두 선수는 힘든 환경을 스스로 이겨 냈고 올림픽 무대에서 오랫동안 기억될 이야기를 만들어 냈다.

 ◆‘한국인의 우수함을 보여 주자’=1948년 8월 7일, 백인들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올림픽 다이빙 시상대 한가운데에 동양인이 서 있었다. 작은 키였지만 당당한 자세로 금메달을 목에 건 선수는 좌우의 백인 선수들과 하이파이브를 나누며 승리를 만끽했다.

 아시아계 미국인으로서 처음으로 올림픽 챔피언이 된 이 선수는 새미 리(92·Sammy Lee). 1920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한국인 노동자 부부의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다이빙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유년 시절 수영장에 하루도 빠짐없이 달려갔지만 피부색 때문에 일주일에 한 번만 이용할 수 있는 설움을 겪었다. 식당 입장을 거부당하는 등 인종차별은 일상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그는 민족의식이 투철한 부모의 영향으로 오히려 한국인임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의대로 진학해 이비인후과 의사가 될 만큼 머리도 좋았다. 그는 오랜 꿈을 좇아 근무 중 틈틈이 연습에 매달린 끝에 48년 런던 올림픽 출전권을 따내며 미국 대표로 올림픽 무대를 밟게 됐다.

 다이빙 경기장에 선 동양인을 바라보는 백인들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한국계 미국인이라는 굴레 속에 주변의 기대도 크지 않았다. 하지만 새미 리는 10m 플랫폼에서 금메달, 3m 스프링보드에서 동메달을 받으며 스스로 우뚝 섰다. 작은 한국인 선수가 세계 최고의 자리에 오르는 순간이었다. 극심한 인종차별에 굴하지 않고 꿈을 실현한 그는 단숨에 전 세계 이민자의 ‘스포츠 영웅’으로 떠올랐다. 그는 52년 헬싱키 올림픽 10m 플랫폼에서도 우승하며 플랫폼 다이빙 2연패를 달성한 세계 최초의 선수가 됐다.

 새미 리는 ‘우리 가족과 한국 혈통에 부끄러운 일은 하지도 마라. 한국인의 뿌리가 얼마나 우수한지 제대로 보여 주지 못하면 미국 땅에서 인정받을 수 없다’는 신조로 어려움을 정면 돌파했다. 그는 50년대 조국을 방문해 한국 선수들을 지도했고 2018년 평창 겨울올림픽 개최에 큰 역할을 하는 등 몸은 멀리 있어도 마음은 평생 고국과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가 올림픽에서 입었던 수영복과 트레이닝복은 8월에 등록문화재가 된다.

 ◆낡은 자전거 고쳐서 경기 출전=새미 리가 인간 승리를 써 내려가기 전 또 한 명의 선수는 이제 막 탄생하려는 국가의 대표로서 영국 땅을 밟았다. 한국 사이클 선수단(임원 장일홍, 선수 권익현·황산웅)의 일원이었던 고 권익현(1920~2002) 선생에게 배와 비행기를 이용해 지구 반 바퀴를 달려온 18일간은 힘든 여정이었다. 체력이 바닥난 것은 물론 주변 환경도 열악했다. “자전거가 낡아 대회에 나가기 창피했다”고 말할 정도였다. 장비도 변변찮고 엔지니어도 없어 권익현이 스스로 바퀴살을 고치며 경기에 나섰다. 힘들 때마다 강한 정신력으로 버티며 가슴에 단 태극마크를 부끄럽게 하지 말자고 다짐했다.

 팀 동료였던 고 황산웅(1924~2012) 선생도 생전 “런던에서 2층 버스를 탔는데 영국 여자들이 마늘 냄새 난다고 어느 순간 다 내려 버렸다”는 일화를 밝히며 인종차별에 씁쓸해했다.

“우리는 키가 작아 덩치 큰 서양 선수들과 부딪쳐서 타이어에 펑크가 나고 넘어지기 일쑤라 성적이 잘 나지 않았다. 고달팠던 여정도 경기력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고 황산웅 선생은 이역만리에서 느낀 비애감을 털어놓기도 했다. 도로사이클에 출전한 우리 선수들은 입상권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러나 이들의 머리에 ‘포기’라는 단어는 존재하지 않았다.

 새미 리와 권익현. 이들은 피로 누적, 체격 차이, 지원 부족, 인종차별 등 많은 고비를 넘어 ‘대한민국’을 세계에 알렸다. 64년이 지난 2012년 여름, 그들이 알렸던 ‘대한민국’의 또 다른 이야기가 선수들을 기다리고 있다. [사진:권용웅 씨(권익현 선생의 아들)/중앙포토]

  정종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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