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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주목 받았던 신인들(9) - 95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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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의 르네상스로 기억될 만한 95시즌은 사상 최초로 500만 관중을 돌파하며(540만명) 폭발적인 인기를 구가하게 된다. 이는 가장 규모가 큰 잠실,사직 구장을 홈으로 사용하는 LG,OB,롯데의 선두권 다툼이 연일 관중들의 발길을 끊이지 않게 하였으며 92년부터 지속되어온 신인돌풍의 주역들이 고정팬들을 확보하며 프로야구의 흥행을 주도한데서 기인한 것이다.

95년에는 92년의 염종석,93년 양준혁,이종범,구대성,94년의 유지현,김재현,서용빈 등과 같이 대박급 활약을 선보인 신인들은 없었지만 투,타에서 수준급 활약을 선보인 선수들이 고루 분포하며 막판까지 치열한 신인왕 타이틀 경쟁을 하게된다.

1. 2억원 계약금 시대

94시즌에 대형 고졸 신인들이 유난히 많았던 반면에 95년에는 국가대표 출신의 대형 대졸 신인들과 대형 고졸 신인들이 고루 주목을 받았었다.

충암고-고려대를 거치면서 국가대표 4번타자로 활약한 심재학(당시 LG)은 당시 신인중 최대어로 주목 받으며 서울 연고구단인 LG와 OB의 스카우트 0순위로 지목 되었는데 결국은 주사위 추첨에서 89,94시즌을 제외하고는 한번도 져본적이 없었던 LG가 심재학을 낚는 기쁨을 누리게 되었고 OB는 다시한번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투수 송재용을 지목하게 된다.

심재학은 당시 신인 사상 최다 계약금인 2억 1천만원을 받으며 기대를 한몸에 받지만 프로 첫해의 활약은 몸값과는 전혀 거리가 먼 0.230의 타율에 4홈런에 그치고 만다. 팀내 차세대 4번타자로 한 몫을 해줄거라고 믿었던 LG로서는 심재학의 부진이 아쉽기만 하였다.

동산고 시절 팀을 전국 최강으로 이끌었고 인하대를 거치면서 국가대표의 에이스로 줄곧 활약해온 위재영 역시 태평양의 차세대 에이스로 기대를 받으며 2억원의 계약금에 입단한다. 13승 10패 방어율 3.60의 수준급 성적을 기록하였지만 입단 당시 지명도에 비해서는 다소 기대에 못미친 성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롯데는 '소총부대'로 불리울 만큼 장거리포 부재에 시달리고 있었다. 특히 93시즌에는 팀홈런이 불과 29개에 그쳤는데 이는 당시 홈런왕이었던 김성래(삼성)의 28개보다 불과 1개가 많을 정도로 장거리포의 부재는 극심할 지경이었다.

그러나 장거리포에 목말라하던 롯데 타선에 오아시스 같은 존재가 등장하였는데 그는 바로 부산고-고려대-상무를 거친 국가대표 출신의 대형 슬러거 마해영이었다.

메이저리거급의 체격에서 뿜어내는 화끈한 장거리포는 롯데의 타선에 활력을 제공함과 동시에 92시즌 우승이후 하락세를 보이던 롯데를 단숨에 선두권으로 끌어올리면서 구도 부산 시민들을 열광시키게 된다. 0.275의 타율에 18홈런 87타점을 기록하며 대졸 신인들중 가장 뛰어난 성적을 보였다.

92시즌 롯데, 93시즌 해태, 94시즌 LG가 우승할 당시 공교롭게도 각 팀에는 박계원,이종범,유지현이라는 걸출한 신인 유격수들이 좋은 활약을 선보이며 우승에 공헌하는데 이에 대해 우승하려면 대어급 유격수를 데려와야 된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오기도 하였다.

삼성이 영입한 신인 유격수 김재걸(덕수상고-단국대)도 그런 맥락의 연장선 상에 있었을 만큼 입단 당시 팀의 큰 기대를 받았었다. 당시 아마 현대 피닉스에 몸담고 있었던 그를 데려오기 위해 삼성은 2억원의 위약금을 지불하고 거기다 김재걸에게 계약금 2억 1천만원을 주고 그를 입단시킨다.

졸지에 '귀하신 몸'이 되버린 김재걸은 아마시절 심재학이나 위재영에 비해 지명도가 떨어지는 데도 불구하고 심재학과 더불어 최고 계약금을 받는데 입단 첫 해 그의 성적은 0.249타율에 도루 10개라는 초라한 성적에 그치고 만다. 그 후에도 96시즌에 41도루로 잠시 반짝 활약을 했을뿐 이제는 아예 주전경쟁에서 밀려난 상황이다.

2. 고졸 신인

-- '리틀 라이언'의 태동

경북고 시절 투,타에서 맹활약을 펼치며 팀을 청룡기 고교야구 대회에서 정상에 올려놓고 청소년 대표로도 줄곧 활약을 했던 이승엽(삼성)은 당시 한양대와 삼성의 치열한 영입 경쟁속에 마침내 1억 3천만원을 받고 삼성에 전격 입단하게 된다.

원래 삼성은 팀내 좌완 투수가 부족한 실정상 이승엽을 투수로 키울 생각이었다. 이승엽은 입단 당시 인터뷰에서도 "라이벌 구단인 LG의 좌타선을 봉쇄하는데 선봉장으로 나서겠다"고 입단 소감을 밝혔을 만큼 그 역시 투수로 활약할 뜻을 품고 있었다. 그러나 전지훈련 당시 그의 뛰어난 타격 재질을 알아본 우용득 감독과 박승호 타격코치에 의해 그는 타자로 전향하게 된다.

입단 첫 해 김성래,양준혁 등이 버티고 있었던 1루수 자리를 차지하며(양준혁은 우익수로 전향) 공,수에서 상당히 안정된 활약을 선보이며 0.285의 타율에 104안타 13홈런 73타점의 좋은 성적을 거둔다. 장차 '라이언 킹'으로 크게 될 '리틀 라이언'이 조용히 태동하는 순간이었다.

-- 아쉬움을 남긴 두명의 대형타자

신일고 시절 조성민,강혁,김재현과 더불어 팀을 고교야구의 지존에 올려다 놓은 대형 슬러거 조현은 심재학과 더불어 팀에 차세대 거포로 큰 기대를 받으면서 LG에 입단한다.

김재현에 이어 '제 2의 고졸 신인 돌풍'을 가져다 줄 것이라던 팀의 기대와는 달리 그는 0.257의 타율에 9홈런 39타점을 기록하는데 그치고 만다. 심재학과 더불어 팀내 공격력 강화에 크게 한 몫을 해줄 것이라 믿었던 조현의 부진은 LG로선 안타까운 일이었다.

시즌 내내 선두를 달리다 막판에 힘이 달리면서 OB에 페넌트 레이스 1위자리를 빼앗기고 플레이오프에서 마저 롯데에 2승 4패로 무너지며 결국 2연패의 꿈을 아쉽게 접어야만 했기 때문이었다. 만일 심재학과 조현이 아마 때의 명성에 걸맞는 활약을 펼쳤더라면 LG는 90년대 중반 최강의 팀으로 도약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조현은 96시즌이 끝난 후 해태로 트레이드 되고 그 후에도 별다른 활약을 펼치지 못한채 결국은 은퇴하고 만다.

롯데의 김종석(부산고 졸), OB의 박형렬(서울고 졸)에 이어 아마 시절의 화려했던 명성에 비해 자신의 기량을 펼쳐보지도 못한채 너무나도 초라하게 프로생활을 마감했던 선수로 기억될 것이다.

대구상고 시절 팀의 중심타자로 활약하며 이승엽과 더불어 대구야구의 신중흥기를 열어 젖혔던 김승관은 입단 당시 팀의 차세대 거포로서 이승엽 보다 오히려 더 많은 기대를 모았었다.

당시만 해도 이승엽은 장타자 보다는 교타자의 이미지에 가까웠고 김승관은 삼성에서 차세대 4번타자로 지목받았을 만큼 훌륭한 장타력을 지녔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입단 첫 해 그는 단 한개의 안타도 쳐내지 못하는 초라한 성적을 기록하고 만다.

그 후 2군리그 에서 홈런왕에 오르는 등 많은 기대를 모았지만 여전히 '미완의 대기'에 그치고 있는 실정이다. 명승부사 김응용 감독 밑에서 과연 그가 그의 잠재력을 이끌어 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

만일 그가 고교 시절의 화려했던 기량을 펼치면서 삼성의 중심타자로 도약한다면 '좌 승엽 우 승관'이라는 공포의 타선이 탄생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작년 프로야구 최대의 히트상품 이었던 두산의 '우동수 트리오' 보다 훨씬 더 위력적인 마케팅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대구,경북 지역에 연고를 두면서도 오히려 주전 선수들 중 타지역 선수들이 더많은 삼성의 실정에서 순수 대구 혈통의 이승엽과 김승관이 중심타자 듀오를 이룬다면 홈관중 동원에도 상당한 효과를 거둘 수 있기 때문이다.

-- '날쌘돌이' 정수근

덕수상고를 졸업하고 곧바로 OB에 입단한 정수근은 공격력 보다는 빠른 발과 폭넓은 수비력을 인정받아 입단 첫 해에는 주로 대수비 요원이나 대주자 요원으로 투입되었다.

비록 117경기 출장에 0.214의 타율에 그쳤지만 빠른 발을 이용한 재치있는 플레이로 25개의 도루를 기록하며 차세대 톱타자로 도약하는 기반을 마련하게 된다.

시즌을 거듭할 수록 그는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루며 이종범이 일본으로 진출한 이후 도루왕 타이틀에서 독보적인 존재로 군림하게 되며 팀내 타자중 최고 연봉(1억 3500만원)을 받는 지위에 오르게 된다.

3. 예상밖의 활약을 펼친 신인들

대구고를 졸업하고 92년 삼성에 입단한 이동수는 95시즌 전까지 1군무대 성적이 6경기 출장에 타율 0.214 홈런 1 안타 3개에 불과할 정도로 철저한 무명이었다.

아무도 신인왕 타이틀 후보로 점찍어 두지 않았던 그는 95시즌 호화 멤버를 자랑하는 삼성 타선에서 일약 4번타자로 자리잡으며 0.288의 타율에 22홈런 81타점을 기록하는 깜짝 활약을 펼친다.

하루 아침에 스타로 탄생한 '중고 신인' 이동수는 결국 강력한 경쟁자였던 마해영을 제치고 신인왕을 거머쥐는 기쁨을 누리게 된다. 그러나 고질적인 수비불안으로 인해 그는 더이상의 성장을 이루지 못한채 반쪽선수로 전락하며 롯데로 트레이드 되고 이후 다시 쌍방울로 팀을 옮긴 후 지금은 SK에서 제2의 도약을 노리고 있다.

휘문고-중앙대를 졸업하고 OB에 계약금 4,200만원의 헐값에 입단한 진필중은 선발과 중간계투를 오가며 109 1/3이닝을 던지면서 6승 2패 2세이브 방어율 3.21을 기록하며 예상외로 좋은 성적을 거둔다.

그러나 그의 존재를 팬들에게 확실하게 인식시킨 경기는 다름아닌 롯데와의 한국시리즈 6차전이었다. 전날 5차전에서 치열한 대접전 끝에 8-7로 패하면서 2승 3패로 벼랑끝에 몰렸던 OB는 6차전에서 선발로 등판한 진필중의 눈부신 호투에 힘입어 승부를 원점으로 돌리면서 극적인 역전우승을 차지할 수 있었다.

이후 진필중은 96시즌부터 팀의 확실한 제1선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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