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고하기 눌렀다가 '헉'…新보이스피싱 수법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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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지난 3일 회사원 이모(42)씨는 한 친구로부터 스마트폰 메신저 애플리케이션(앱) ‘마이피플’을 통해 “갑작스러운 일이 생겼으니 돈을 빌려 달라”는 메시지를 받았다. 이씨는 보이스 피싱 사기단이 메신저에서 친구를 사칭해 돈을 받는다는 기사를 읽었기 때문에 사기로 의심했다. 그래서 대화창 아래의 ‘보이스 피싱이 의심되니 버튼을 눌러 신고하라’는 문구를 클릭했다. 그러자 ‘보이스 피싱 범죄 신고 사이트’로 자동으로 연결됐다. 그는 범죄신고를 위해 개인정보를 입력했다. 그러나 몇 시간도 안 돼 그의 계좌에서 280만원이 빠져나겠다.

 최근 보이스 피싱 조직의 사기 수법이 날로 진화하고 있다.

 수사기관을 사칭하거나 가족을 납치했다고 속여 돈을 받아내는 등 ‘고전적 수법’이 널리 알려지면서 보이스 피싱은 2009년 잠시 주춤했다. 하지만 인터넷·e-메일·스마트폰 등을 이용한 수법이 새로 나오면서 2010년부터 다시 기승을 부리는 추세다. 이 때문에 ‘뛰는 수사기관 위에 나는 보이스 피싱’이란 말이 나오고 있다.

 서울 송파경찰서는 24일 보이스 피싱으로 10억여원을 편취한 혐의(사기 등)로 보이스 피싱 조직 3곳 14명을 붙잡아 이 중 양모(41)씨 등 7명을 구속했다.

 이번에 밝혀진 최신 수법은 스마트폰 메신저 앱을 이용한 ‘이중트릭’이다. 메신저로 지인을 사칭해 이를 의심한 피해자가 신고하게끔 해 개인정보를 빼낸 뒤 공인인증서를 재발급받아 계좌에서 돈을 이체시키는 방식이다. 두 가지 수법을 교묘하게 섞은 데다, 허를 찌르는 심리 전술까지 덧붙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번에 검거된 조직들은 기업처럼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투자를 하거나 정보 수집에 노력을 기울였다. 한 조직은 중국 현지에서 현금을 직접 인출했다. 노숙자나 신용불량자 명의로 만든 대포 현금카드의 카드 정보를 카드 리더기를 통해 빼낸 뒤 e-메일로 중국에 보냈다. 중국의 공범들은 카드 정보를 빈 카드에 넣어 현금카드를 복제했다. 복제 현금카드로 보이스 피싱 피해자로부터 받은 6억8000만원을 중국에서 찾을 수 있었던 것이다. 국내에서 인출할 경우 수사기관 추적의 위험이 따르고, 이 돈을 중국으로 보내는 비용도 만만찮기 때문에 나온 신종 수법이다.

 또 다른 조직은 이달 초 경찰에 변호사를 사칭한 전화를 걸어 수사 상황을 염탐했다. 송파에서 활동하는 변호사 사무실의 전화번호로 조작한 뒤 담당 형사에게 “변호사인데 XXX(조직원 이름)가 거기 있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형사가 대답을 얼버무리자 이들은 조직원이 잡혔다는 것을 눈치채고 활동을 중단해 수사가 난항을 겪기도 했다.

 조직원들을 중국으로 불러 피해자를 속이는 법부터 경찰의 급습 때 도망치는 법 등을 2주간 교육한 조직도 있었다. 경찰 관계자는 “우리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기발한 수법들이 자꾸 나온다”며 “보이스 피싱 조직이 기업처럼 혁신을 거듭하며 발전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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