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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벽 허물려면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276호 34면

국제통을 자처하는 그분은 비관적이고 소극적이었다. “나는 젊을 때부터 일본 제품을 사용해 왔지만 일본과의 외교, 역사의 벽은 두텁다. 문화·청소년 교류도 좋지만 간단치 않다. 100년 이상 걸릴 것이다. 내 아들은 나보다도 반일 감정이 강하다”고 말했다.

내가 하는 일이 교류를 통한 상호이해 촉진이란 것을 알면서도 내게 건넨 첫인사였다. 이런 말도 했다. “일본대사관은 내셔널 데이 리셉션에 한국 국회의원이 올 것을 기대하지 마라. 참석했다가 인터넷에 사진이 올라 비판받은 의원이 있다.”

교류 하나로 외교 현안이 금세 해결되진 않지만 일·중도 독·불도 뿌리 깊은 문제를 안고 있으면서 한 발짝씩 상호이해의 더딘 걸음을 내딛고 있다. 그런데 지도층이 교류를 주도하기는커녕 찬물을 끼얹어서 어떻게 하나. ‘일본과 어울리면 비판받고 표가 떨어진다’고 해서야 어떻게 제대로 역할을 할 수 있겠는가. 일본에도 한국·중국 등을 싫어하는 정치인은 있지만 이웃 나라가 중요시하는 내셔널 데이에 대한 이런 발언은 들은 적이 없다.

1986년, 나는 서울대의 한 강의실에 앉아 있었다. 노(老)교수께서는 “우리 한국인은 일본에 대해 잘 안다, 배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큰 잘못이다. 우린 일본을 잘 모른다. 여기서부터 시작하자”고 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전후 일본이 평화국가 건설, 개도국 지원 등 국제사회에 큰 공헌을 했음을 우리는 잘 모르고 있다”고 말했다.
요즘엔 이런 반성과 자기비판이 줄어든 느낌을 받는다. 하지만 한국의 젊은 세대에겐 희망도 있다. “지진을 계기로 일본도 이제 별것 아니라는 ‘일본 침몰론’이 일부에 있지 않으냐”라고 묻자 “이웃 나라를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고 감정으로 치닫는 사람은 늘 있다. 신경 쓸 거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한국 TV는 일본 드라마나 노래를 더 방영해야 된다. 일본보다도 한국을 위해, 일본에서의 한류 붐 지속을 위해서다. 문화 교류의 일방적인 흐름은 상대의 반발을 일으켜 한류 붐도 오래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참 현명한 학생이다.

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총리가 중국의 고위 간부들 앞에서 이렇게 강연했다. “권력은 무엇을 위해 있는가? 문화에 봉사하기 위해 존재한다. 문화란 민중의 행복한 생활을 말함이다”고. 미국 대통령도 하지 못할 근본적인 비판이다.

한·일 양국 사람들이 이른바 ‘국민 정서’에 편승하지 않고, 사실을 냉철히 바라보고, 문화와 교류에 적극 참여해 줬으면 한다. 나카소네, 김대중 같은 분들을 본받아서 말이다. 선인(先人)이 이르기를 ‘수개월의 짧은 안목으로 양국 관계를 보면 정치가 가장 큰 요소지만 수년에는 경제, 수십 년에는 문화가 최대’라고 했다. 맞는 말이다. 언론 보도만 보면 정치 현안으로 우왕좌왕하는 듯해도 길게는 생활 속의 제품, 기술, 무역, 투자가 양국 사이를 지탱한다. 더 장기적으로는 국가 간의 친근감, 존경심, 평가가 무게감을 갖는다.

일본 측도 80년대에는 한국에 대한 지식 부족 또는 편견이 있었지만 그동안 많이 개선돼 왔다. 이에 비해 한국 측의 일본관은 여전하다. ‘한반도의 분단 고착을 바라고 있다’ ‘역사의 사실을 외면하며 반성하지 않는다’ 등 일본인이 놀랄 만한 편견을 갖고 있는 게 아닐까.

문화도 인적 교류도 나라를 초월한 공감대를 형성해 준다. 이는 외국에 대한 양보가 아니라 상호이해, 자국의 문화력을 높이는 일이다. 이런 교류와 소통은 일본에도, 한국에도 갈수록 필요하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문화를, 상호이해를 짊어지고 한 걸음씩 꾸준히 전진하자. 이는 자국을 위해서나, 국제 시민사회를 위해서나 중요한 일이다.



미치가미 히사시(道上尙史) 도쿄대 법대 졸, 서울대, 하버드대 석사. 중국·한국에서 일본대사관 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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