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바루기] 한국말이 서툴어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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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2면

어떤 일을 하면서 잘하지 못할 때 “스마트 폰이라 좀 서툴어요.” “방송에 출연한 사유리는 한국말이 서툴어 생긴 실수담을 이야기했다.” “다시 연기자 생활을 시작했을 때 혼란스러웠지만 서툴어 보이고 싶지는 않았다”처럼 ‘서툴어’라는 표현을 쓰는 경우가 많다.

 이 ‘서툴어’는 ‘서투르다’의 준말인 ‘서툴다’에서 온 것이다. ‘서툴다’를 활용하면 ‘서툴고, 서투니, 서툴면, 서툴어’가 된다. 그러나 이 가운데 ‘서툴어’는 인정되지 않는다. 표준어 규정 제16항에 따른 것이다. 이 항목은 준말과 본말이 다 같이 널리 쓰이면서 준말의 효용이 뚜렷이 인정되는 것은 두 가지를 다 표준어로 삼는다는 내용이다. 이 규정에 따라 ‘머무르다, 서두르다, 서투르다’와 ‘머물다, 서둘다, 서툴다’는 모두 표준어다.

 그런데 제16항은 이 세 단어의 활용형에 대해 제한을 두고 있다. 이 단어들에 모음 어미가 연결될 때는 준말의 활용형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서툴어, 서툴어서’ 같은 형태는 사용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머물다’ ‘서둘다’도 “이곳에 오래 머물어서 좋을 것이 없다” “그렇게 서둘어서는 될 일도 안 되겠다”처럼 쓰면 안 된다.

 어떤 사람들은 이 규정을 너무 폭넓게 해석해 모든 준말에는 모음 어미를 연결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렇지는 않다. ‘외우다’와 그 준말인 ‘외다’도 표준어 규정 제16항에 따라 복수 표준어이지만 ‘외우다’에서 활용한 ‘외워’와 ‘외다’에서 활용한 ‘외어’가 모두 인정된다. 규정에서 모음 어미가 뒤따를 수 없다고 한 것은 위 세 단어에 국한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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