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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초유의 대법원 마비, 여야가 책임질 건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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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오늘로 19대 국회 임기가 개시된 지 24일째를 맞았지만 여야는 개원(開院) 협상을 타결짓지 못하고 있다. 대법관 후보자 4명에 대한 임명동의안을 제때 처리하지 못하면 초유의 재판 마비가 빚어질 것이란 예상이 나오는 상황에서도 지루한 줄다리기만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개원 협상의 쟁점은 ▶민간인 불법 사찰 사건에 대한 국정조사·특검 도입 ▶언론사 파업 청문회 개최 ▶상임위원장 배분 등이다. 불법 사찰의 경우 새누리당은 특검 도입을, 민주통합당은 국정조사 도입을 각각 주장하고 있다. 민주당이 “MBC 등의 파업은 현 정부의 실정과 연관된 문제”라며 청문회 개최를 요구하는 반면, 새누리당은 “정치권이 개입해선 안 된다”는 입장이다. 특히 청문회 문제에 대해선 서로 “절대 양보할 수 없다”고 맞서고 있다. 대선을 겨냥한 전초전 성격이 짙다.

 이러한 교착상태가 계속돼 박일환 대법관 등이 퇴임하는 다음 달 10일까지 후임 대법관 임명동의안이 처리되지 못할 경우 대법관 4인의 공백 사태를 피할 수 없다. 대법관 13명 전원이 참여하는 전원합의체의 파행 운영이 예상될 뿐만 아니라 대법관 4명으로 구성되는 소부(小部) 재판도 어렵게 된다. 대법원은 지난 19일 보도자료를 통해 “사실상 대법원 기능이 마비될 것”이라며 임명동의안을 신속하게 처리해 줄 것을 요청했다. 임명동의안이 이달 15일 접수된 만큼 국회는 인사청문회법에 따라 다음 달 5일까지 동의 여부를 정해야 한다. 재판 마비의 피해는 결국 국민이 떠안을 수밖에 없다. 이에 새누리당과 민주당은 각각 대법관 인사청문회 특위 위원을 임명하고 자체적으로 인사검증에 나설 태세지만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비판 여론을 의식해 책임 회피에 급급한 모습이다.

 현재 국회엔 대법관 임명뿐 아니라 크고 작은 민생 현안이 줄줄이 대기 중이다. 개원 표류 상황은 19대 국회가 과연 국정을 정상적으로 이끌 수 있겠느냐는 우려감을 던져주고 있다. 지금이라도 국회 문을 열어 자신들을 여의도 의사당으로 보낸 국민의 뜻을 받드는 것이 선량(選良)의 도리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