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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물도 있고, 토기도 있고 … 독산동서 신라 주거지 나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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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신라인이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우물 흔적(사진 위)과 토기. [사진 겨레문화유산연구원]

서울 금천구 독산동에서 삼국시대 신라의 한강 유역 진출을 보여주는 집터와 도로터가 발견됐다. 서울 아차산 인근이나 경기 성남 일대에서 신라 유물이 다수 나왔으나 대규모 주거지 유적이 수도권에서 발굴된 것은 처음이다.

 문화재 발굴기관인 겨레문화유산연구원(원장 신창수)은 안양천에 인접한 독산동 도시개발사업구역에서 6세기 후반에서 7세기 초 신라인이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도로와 굴립주건물지(掘立柱建物址) 58동, 수혈건물지(竪穴建物址) 6동, 우물, 집수시설 등을 확인했다고 18일 밝혔다. 굴립주건물은 땅을 파고 기둥을 박아 세운 집을 뜻하며, 수혈건물은 구덩이 위에 지은 움집을 말한다.

 이 유적은 신라 24대왕인 진흥왕(재위 540~576)이 한강 유역으로 진출하던 시기에 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삼국시대 각국은 한강 유역을 차지하기 위해 치열한 전쟁을 벌였으며, 백제가 475년 고구려의 침략을 받아 수도를 한성에서 웅진으로 옮긴 뒤, 오랜 기간 한강 유역은 고구려의 지배하에 있었다.

 그러나 진흥왕은 551년 백제 성왕과 힘을 합쳐 고구려를 공격해 한강상류 지역을 차지했으며, 553년에는 고구려와 동맹을 맺어 백제가 차지한 한강 하류 지역까지 점령하게 된다.

이번에 주거지가 발견된 서울 남부는 신라의 한강 유역 진출을 위한 교두보였으며, 대규모 망루의 흔적이 발견된 것으로 보아 군사시설로 이용됐을 가능성이 크다.

 이번 유적에선 신라 토기와 기와 등도 다수 출토됐다. 하지만 조사구역 남쪽에서 확인된 총 115m 길이의 도로 흔적은 자갈을 깔아 다지는 신라의 도로 조성법과는 달리 자갈을 깔지 않는 백제의 방식을 따르고 있다.

조사단은 “뒤늦게 한강유역을 차지한 신라인이 백제가 깔아놓은 도로를 그대로 사용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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