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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내 재래시장 현대화사업 지지부진

중앙일보

입력

서울 성북구의 돈암시장.

4천2백㎡의 대지에 1백30여개의 점포가 빼곡히 들어서 있다. 조성된지 50년이 넘어 대부분 건물이 노후한 재래시장이다. 구청에서 실시한 안전 진단에선 보수가 시급하다는 D등급 판정을 받았다. 비가 오는 날이면 천장에서 물이 새기 일쑤고, 통로가 좁아 다니기도 불편하기 그지없다.

19일 장을 보러 나온 이정임(38.주부.성북구 돈암동)씨는 "지난 번에는 화장실을 찾지 못해 곤욕을 치렀다" 며 "가까워서 간단한 야채 종류만 살 뿐, 다른 물품은 백화점이나 대형 할인점을 주로 이용한다" 고 말했다.

상인들의 고충도 크다. 상인 대표를 맡고 있는 김영근(62)씨는 "1960~70년대만 해도 돈암시장은 서울시내에서 가장 커 지나가는 사람들이 엉덩이가 부딪혀 못다닐 정도였다" 며 "요즘은 옷가게 손님은 백화점에, 잡화는 대형 할인점에, 식품은 슈퍼마켓에 다 뺏겨 먹고 살기조차 힘든다" 고 하소연했다.

서울시는 재래시장의 이같은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4년전부터 각 구별로 재개발 등을 촉진하는 현대화계획을 추진해 왔다. 시는 올들어 구별로 1개 이상의 재래시장을 중점적으로 육성하는 '1구 1시범시장' 대책까지 선보였다. 하지만 관련법규나 지원책이 미비한데다 상인들의 이해관계도 엇갈려 이같은 대책들이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 실태〓서울의 재래 시장은 모두 1백91개. 이중 건축된지 20년이 지난 노후건물은 80%(1백51개)에 달한다. 또 건물안전진단결과 C등급 이하를 받은 시장이 무려 42%(81개)로 드러나 시설 보수와 재개발이 시급한 실정이다. 사정이 이러니 자연히 경쟁력도 떨어지기 마련. 비어있는 점포 수가 절반에 달하는 재래시장이 12.5%(24개)나 된다.

◇ 재개발 현황〓각 구별로 4년전부터 재래시장 현대화를 추진해 왔다. 강북구는 미아1동 동북시장과 수유3동 쌍문시장을 대상으로 지정했다. 동북시장의 경우는 기존 50여개의 점포를 허물고, 지하 1층.지상 3층인 주상 복합 건물을 오는 6월 선보인다.

점포 수가 2백개가 넘는 쌍문시장은 현재 재건축에 대한 80% 가량의 상인들 동의를 구해놓은 상태다. 이외에도 노원구는 상계시장, 성북구는 돈암.종암.월곡 시장, 송파구는 마천시장 등을 지정해 놓고 있지만 진척 속도는 '거북이 걸음' 이다.

◇ 문제점〓재건축 후 분양 점포의 위치 등에 대한 상인들의 이해관계가 달라 재개발 동의를 구하기가 쉽지 않다. 정부는 96년 '중소기업 구조개선 및 경영안정지원을 위한 특별조치법' 을 통해 재래시장 재개발.재건축에 관한 각종 특례규정을 마련했다.

하지만 돈암시장의 경우 조합원 1백8명 중 이해관계가 다른 상인 2명의 동의를 얻지 못해 건축허가 신청도 못내고 있다. 토지 매도와 관련해 소송이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또 재개발 지역의 용도변경 문제도 특별법에 빠져있어 상인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송파구 마천시장의 한 상인은 "특별법이 있어도 무용지물" 이라며 "용도변경 부분은 특별법이 아닌 도시계획법과 건축조례의 적용을 받아 민원인들만 갈팡질팡한다" 고 불만을 털어 놓았다.

마천시장은 도시계획법상 시장 시설로 지정돼 용도변경을 하지 않고선 주상 복합건물을 지을 수가 없다. 상당수 영세 상인들이 점포와 주거공간을 겸한 주상복합 건물로 재개발하기를 원하지만 용도변경 문제로 애를 먹고 있는 형편이다. 월곡과 미아시장 등 대부분 재래시장이 비슷한 처지다.

서울시 관계자는 "재래시장 재개발 촉진에 필요한 용도변경 문제를 풀어줄 관련법규가 없어 중소기업청.건설교통부 등과 협의 중" 이라고만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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