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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 만에 첫 승 합작, 뚝심의 ‘골프장 부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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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5호 19면

정혜진이 지난 10일 제주 서귀포 롯데스카이힐제주 골프장에서 열린 제2회 롯데 칸타타 여자오픈 최종일 경기 도중 벙커샷을 하고 있다. [제주=연합뉴스]

신지애(24·미래에셋)가 고등학생 티를 벗지 못한 채 하이마트 모자를 쓰고 KLPGA 신인으로 매섭게 클럽을 휘두르던 2006년 9월. KLPGA 투어 PAVV 인비테이셔널 최종 라운드에서 또 다른 신인 정혜진(25·우리투자증권)과 엎치락뒤치락 우승 경쟁을 펼쳤다. 정혜진은 최종 라운드의 여왕으로 불리던 ‘지존’ 신지애를 상대로 전반 홀인원을 하더니 15, 16번 홀 연속 버디로 압박했다. 하지만 신지애는 16번 홀에서 2.5m 버디 퍼트를 떨어뜨리며 한 타 차 우승을 차지했다.

KLPGA 늦깎이 우승, 정혜진과 ‘코스 관리’ 아빠

이후 신지애는 세계랭킹 1위까지 올랐지만 당시 한 타가 모자랐던 정혜진은 6년 가까이 숨을 죽여야 했다. 지난해에는 성적이 나빠 시드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할 정도로 부진했다. 그러다 늦가을 하이트 챔피언십에서 우승 기회를 잡았다. 그러나 첫 우승 꿈은 16번 홀 트리플 보기로 물거품이 됐다. 그때 영원히 우승을 하지 못할 거라는 불안감도 들었다고 한다. 대회가 열린 경기도 여주 블루헤런 골프장이 정혜진에게는 가족의 땀과 눈물과 추억이 어린 곳이었기 때문이다.

정혜진의 아버지 정종철(50)씨는 이 골프장에서 코스 관리를 했다. 정씨는 “코스에서 일하면서 장정·이선화 등 당시 잘나가는 여자 프로들이 와서 운동하는 걸 많이 봤다. 그들을 보니 우리 혜진이가 이걸 해봐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혜진이는 체격조건이 좋았고 운동신경도 있었다”고 말했다.

중학교에 들어가던 2000년 정혜진은 골프를 시작했고 2005년 8월에야 KLPGA 정회원으로 이름을 올렸다. 다른 선수들보다 늦게 출발했기 때문에 따라잡으려고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했다.

아버지가 코스에서 풀을 뽑은 것은 아니다. 관리팀장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다른 선수들 아버지처럼 외제차를 끌지 않았고 국산 소형차를 타고 다니는 수준이었다. 정혜진은 “부유하지는 않았지만 아버지가 코스에서 일하기 때문에 운동하기에는 제일 좋은 조건이었다고 생각한다”면서 “무엇보다 아버지가 마음으로 응원하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아버지가 어떤 일을 하는 건 중요하지 않았다”고 했다.

정씨는 딸과 함께 출근했다. 연습장에 데려다 주고 일을 했다. 드라이브샷 몇 번, 퍼트 몇 시간 등 연습 스케줄을 아버지가 정해줬다. 딸은 아침 8시부터 저녁 6시까지 아버지가 짜준 스케줄대로 연습만 했다. 아버지가 프로 출신이 아니었기 때문에 효율성에서는 좀 부족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정혜진은 중학교 3학년 때부터 4년 정도 하루도 빠짐없이 아버지의 스케줄을 따라갔다.

정씨는 “혜진이는 평소에는 온화한 아이지만 골프채를 잡으면 독종이었다. 굳은살이 박여 여자 손 같지 않다. 박세리 프로가 ‘난 놀 줄도 모른다’라고 했는데 딱 혜진이에게 맞는 말이다. 오로지 골프밖에 없었고 또래들처럼 다른 데 관심을 둔 적이 없다. 골프 하는 친구들 말고는 다른 친구도 없었다”고 했다. 정혜진은 “하루 종일 혼자 연습하는 것이 돌이켜 보면 외롭고 쓸쓸하다는 생각도 들긴 했지만 그 시간 동안 혼자 이렇게 저렇게 샷을 시도하고 혼자 생각을 많이 할 수 있어서 멘털 면에서 큰 도움이 됐던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이른바 족집게 레슨 같은 비싼 레슨을 많이 받지 못했다. 정혜진은 “비싼 레슨 받는 선수들이 부럽기는 했다. 2008년에 처음 프로 레슨을 받았다. 그런데 막상 레슨을 받고 보니 레슨 자체보다 혼자 연습해서 내 것으로 만드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됐다. 난 이미 혼자 연습하는 습관이 있었기 때문에 그동안 잘해왔다는 확신이 들었다. 레슨을 못 받았던 시절에는 다른 선수들보다 처지는 건 아닌지 불안감도 있었지만 스스로 ‘잘하고 있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했다.

전지훈련도 매년 가지는 못했다. 정혜진은 “전지훈련을 못 가면 아버지께서 일하시는 골프장에서 연습했는데, 한겨울 딱딱한 그린이나 악조건에서 연습할 수 있어서 또 다른 경험이 됐다. 골프 선수들이 죄다 전지훈련을 간다고 해서 그것이 최상의 길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당당하게 말했다.

정혜진은 국가대표 상비군을 거쳐 2006년 1부 투어 신인이 됐다. 아버지가 일하던 블루헤런 골프장의 모회사인 하이트와 스폰서 계약을 맺었다. 신지애와 우승을 다투고, 상금 랭킹 17위에 오르는 등 신인으로 꽤 좋은 성적을 냈지만 이후 우승이 없어 조바심이 났다. 홍란의 챔피언 재킷을 빌려 입은 서희경이 첫 우승을 차지해 화제가 됐던 2008년도 일이다. 정혜진은 “희경이 언니가 ‘너도 빨리 우승하라’며 자신의 재킷을 가장 먼저 나에게 입혀줬어요. 기대를 많이 했는데 나에겐 그런 행운이 빨리 오지 않더라고요.”
그 재킷을 입은 지 4년이 흘렀다. 지난해 추억이 깃든 블루헤런에서의 역전패 충격 때문에 그에게 행운은 결코 오지 못할 거라는 불안감도 들었다. 그러나 정혜진은 아버지와 함께 보낸 추억과 믿음을 잃지 않았다. 2008년 행운의 재킷을 입었을 때 그는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는 사실, 행운은 준비된 자에게만 온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그래서 정혜진은 지난겨울 어릴 때 아버지가 일하던 골프장에서 그랬던 것처럼 초심으로 돌아갔고 누구보다 열심히 땀을 흘렸으며 지난 10일 롯데 칸타타 여자오픈에서 진짜 우승 재킷을 입을 수 있었다.

정혜진은 기쁨을 모든 사람과 나누고 싶어 한다. 그는 “우승 재킷을 빌려달라고 하면 전부 다 빌려줄 거예요”라며 환하게 웃었다.

아버지 정씨는 “이제 우승도 했으니 혜진이가 인생을 즐겼으면 좋겠다. 특히 좋은 가정의 아내가 됐으면 한다. 가정을 꾸려서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는 모습을 꼭 보고 싶다. 요리도 배우고 이것저것 좀 했으면 좋겠다”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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