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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다 지운 무바라크 그늘 … 멀어진 ‘카이로의 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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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무바라크의 30년 철권통치에서 벗어나 이집트 첫 자유선거를 앞두고 선거 열기가 뜨겁다, 대선 결선투표일(16~17일)을 나흘 앞둔 12일 카이로 시내에서 한 여성이 이집트 최대 이슬람 단체인 ‘이슬람 형제단’의 무함마드 모르시 후보(왼쪽)와 무바라크 정권의 마지막 총리였던 아흐메드 샤피크 후보(오른쪽)의 선거 현수막을 응시하고 있다. [카이로 로이터=뉴시스]

지난해 2월 11일 30년간 이집트를 철권 통치한 호스니 무바라크(84) 대통령의 하야가 발표되자 수도 카이로 타흐리르(해방) 광장에 모여 있던 시위대는 춤을 췄다. 무바라크는 이미 바닷가 휴양지로 피신한 상태였다. 17일간 계속된 시위에서 850명의 희생을 치르고 얻은 시민혁명의 승리였다.

 그로부터 1년4개월이 지난 현재 이집트 국민들은 16~17일 대선에서 이슬람 단체가 내세운 후보와 무바라크 정권의 마지막 총리 중 한 명을 대통령으로 선택해야 한다. 시민혁명의 주동자들은 유권자들에게 투표 기권을 촉구하고 있다. 그들이 꿈꾼 ‘아랍의 봄’은 이런 모습은 아니었다.

 종교 단체와 과거 정권의 인사만이 대선 후보로 남게 된 것은 지난달 치러진 대선 1차 투표에서 이른바 ‘민주화 세력’이 단일 후보를 내세우지 못한 데서 비롯됐다. 12명의 후보가 난립한 선거에서 혁명 지지 유권자의 표는 보수 성향의 아무르 무사 전 아랍연맹 사무총장과 좌파 성향의 민족주의자 함딘 사바히 후보 등으로 분산됐다. 그 결과 이집트 최대의 이슬람 단체 ‘이슬람 형제단’의 후보 무함마드 모르시(61)와 공군 참모총장 출신의 전 총리 아흐메드 샤피크(71)가 1, 2위로 결선에 진출했다. 선거 전 여론조사에선 줄곧 무사가 압도적으로 1위를 달렸지만 투표함을 열자 의외의 결과가 나타났다. 이슬람 세력과 전 정권 지지 세력이 속내를 숨겨 왔던 것으로 풀이됐다. 선거 참관인 역할을 맡았던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은 “작은 문제들은 있었지만 이렇다 할 부정은 없었다”고 말했다.

 결선 투표에선 모르시나 샤피크가 인구 8500만 명의 아랍권 최대국 이집트를 이끄는 대통령이 된다. 모르시는 미국 대학에서 공학박사 학위를 받고 교수 생활을 하다 지난해 ‘이슬람 형제단’이 만든 자유정의당의 의장이 됐다. 무소속인 샤피크는 무바라크 정권 붕괴 11일 전에 총리가 됐다. 반정부 시위로 퇴진 압박을 받던 무바라크가 사태 수습용 개각을 하며 발탁한 군부 출신이다. 무바라크와 샤피크는 모두 공군 참모총장이었다.

 샤피크는 “모르시가 집권하면 이집트가 이란과 비슷한 이슬람 국가가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슬람 율법에 따라 시민들의 기본권이 제한될 것이라는 얘기다. 이슬람 세력은 이 나라 의회 의석의 70%를 장악하고 있다.

 영국의 BBC방송은 샤피크가 당선되면 다시 대규모 시위 사태가 일어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또 모르시가 집권하면 현재 임시로 정부를 이끌고 있는 군부가 순순히 정권을 내놓지 않을 수도 있다고 보도했다. 이집트 군사위원회는 14일부터 군인에게 민간인을 체포할 수 있는 권한을 다시 부여한다고 밝혔다. 지난 5월에 없앴던 것이다. 종교 세력인가, 군부 출신인가, 아니면 기권인가. 이집트 유권자의 상당수는 달갑지 않은 선택을 강요받고 있다.

한편 14일 이집트 헌법재판소는 지난 2월 총선을 통해 구성된 현 의회에 대해 “하원 의원의 3분의 1이 불법적으로 당선돼 전체 의회 구성도 불법”이라며 해산 명령을 내렸다. AP통신 등에 따르면 이에 따라 이집트는 다시 총선을 치러야 한다.

런던=이상언 특파원

◆이슬람 형제단=1928년 이집트 사회 개혁 운동가 하산 알반나가 만든 종교적 정치 조직. 이슬람 정신에 입각한 국가 건설을 목표로 삼고 있다. 48년 총리 암살의 배후로 지목돼 지난해까지 불법 단체로 규정돼 왔다. 정확한 규모는 베일에 가려져 있으나 약 60만 명의 조직원을 보유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대선에 후보를 내지 않겠다고 선언했다가 입장을 번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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