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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위기, 2008년 리먼 사태만큼 심각하지 않을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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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13일(현지시간) 스페인 말라가주의 론다에 위치한 국영은행 방키아 지점 앞에서 재정 긴축에 반대하는 시위대가 구호를 외치고 있다. 플래카드에는 ‘공공교육에 대한 삭감은 안 된다’라고 쓰여 있다. [로이터=뉴시스]
신현송

신현송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는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는 시간문제이고, 스페인과 아일랜드는 1~2년 내 대대적인 은행의 구조조정이 이뤄질 수 있다”고 진단했다. 14일 한국은행에서 열린 ‘2012 한국은행 국제 콘퍼런스’에서다.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적 경제학자인 그는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주택담보대출) 사태의 위험성을 사전에 경고하고 미국발(發) 금융위기를 예측해 세계 경제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신 교수는 4년 만에 다시 찾아온 이번 글로벌 금융위기에 대해 “과거 미국의 리먼브러더스 사태와 같은 초유의 유동성 위기를 배제할 수 없지만, 유럽중앙은행(ECB)이 이를 그냥 보고만 있지는 않을 것”이라며 “유럽이 과거 1990년대 일본처럼 자산 거품이 꺼지며 일본식 장기 불황을 겪을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현 유럽 재정위기에 대해 평가해달라.

 “‘재정위기’라는 표현을 쓰지만 정확히 말하면 ‘은행 부문을 통한 자본 유·출입 위기’가 정확한 표현이다. 과도한 국가 부채 때문에 위기를 맞았다는 주장은 그리스를 제외하면 타당성이 떨어진다. 그간 국가 간 자금 이동이 활발해지면서 유로존으로 몰렸던 자금이 빠져나가고 있는 중이다. 그 속도가 워낙 빠르다 보니 금융 부문이 흔들리고, 자산 가격이 떨어지며, 실물경제까지 유탄을 맞는 위기를 겪고 있는 것이다.”

 -유럽 위기 대책은 있나?

 “자본 유·출입 위기는 쉽게 해결할 수 없다. 오히려 지금까지 시행된 각종 은행 자본 확충 정책은 늦은 감이 있다. 결국 각국의 부채만 늘어나는 부작용을 키울 것이다. 다만 ‘뱅킹유니언’ 같은 일종의 은행연합체를 도입하는 것은 올바른 방향이라고 본다. 해결의 핵심 변수는 유로존 국가 간 정치적 합의가 어느 정도 이뤄지느냐다. 1∼2년 안에 구조조정 합의가 이뤄지기를 기대하고 있지만 앞으로 몇 년은 기다려봐야 할 것 같다.”

 -앞으로 유로존 위기는 어떻게 진행될까.

 “과거 미국의 리먼브러더스 사태와 같은 초유의 유동성 위기를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그런 위기가 발생하면 ECB가 충분한 유동성을 공급할 것이기 때문에 가능성은 낮게 본다. 현재라면 자산의 부실화가 진행되면서 일본식 장기 불황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 일본이 1990년에 주가와 부동산이 정점에 달했지만 98년까지 구조조정을 못했다는 점에서 현재 유럽 위기는 일본을 닮아가는 양상이다.”

 -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 이탈리아의 구제금융 가능성은.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는 시간문제다. 지금처럼 모순된 경제구조가 계속 유지되기는 힘들다. 하지만 다른 나라에 위기를 전염시키지 않는 정도의 지원이 이뤄지면 그리스 탈퇴로 인한 파장은 크지 않을 것 같다. 이탈리아는 은행들이 동유럽으로 많이 진출하는 과정에서 부실 자산이 크게 늘어나 문제가 생겼다. 그러나 자본 유·출입은 상대적으로 크지 않아 지금은 안정적으로 보인다. 다만 스페인이 위기를 맞으면 이탈리아도 장담할 수 없다. 스페인과 아일랜드는 1~2년 내 대대적인 은행의 구조조정이 이뤄질 수 있다.”

 -한국도 유로존 위기의 영향을 받을 것 같다.

 “2008년 금융위기 때 가장 많이 흔들린 국가가 한국이다. 비유하자면 가물었던 날씨에 불이 난 셈이다. 그래서 많이 태워먹었다. 하지만 지금 한국은 내성이 생겼다. 외채 건전성도 좋다. 불이 나더라도 그전에 많이 태워먹었기 때문에 피해는 제한적일 것이다. 불행 중 다행으로 최근 국제 원자재 가격이 많이 내려서 인플레이션 압박이 많이 줄어든 상태다. 가계부채 역시 유동성이 축소되는 과정에서 안정을 찾고 있다. 다만 금융위기가 실물경기로 전이된다면 문제다. 정책 당국에서 신경 써야 할 부분이다.”

 -한국은행이 금리인상 시기를 놓쳤다는 지적도 나오는데.

 “동의하기 힘들다. 지금처럼 자본 유입이 개방된 상태에서 금리를 올린다면 급격하게 유동성이 들어올 우려가 있다. (그럴 경우) 자산 버블이라는 부작용이 발생할 것이다. 금리정책 하나에 국한하기보다는 실물경제와 금융시장을 안정시킬 수 있는 포괄적 정책을 쓰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중국 경제는 어떻게 보나.

 “제도적으로는 폐쇄경제이지만 수출과 수입이 국내총생산(GDP)의 50%를 넘을 정도로 대외 의존도가 높은 나라가 중국이다. 최근 유로존 위기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중국은 계속 경기 부양 정책을 펼칠 것이고 단기적으로 효과를 보겠지만 장기적으로는 경제구조를 왜곡하는 후유증이 우려된다.”

신현송 교수 금융위기 이론과 금융시스템 안정성 분야에서 세계적인 권위자로 인정받고 있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를 정확히 예측하고 분석해 이름을 알렸다. 1959년 대구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때 부친을 따라 영국으로 건너갔다.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경제학 박사를 받았고, 런던 정경대(LSE) 교수 등을 거쳐 2006년부터 미 프린스턴대에서 연구하고 있다. 영국 중앙은행과 뉴욕 연방준비은행 등에서 자문역으로 일했고, 2010년엔 청와대 국제보좌관으로 한국 정부의 G20 정상회의 준비를 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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