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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셋톱박스 '전기 먹는 하마'…대기전력 무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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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가전 제품을 쓰지 않더라도 콘센트에 코드를 꽂아 놓으면 전기 계량기는 돌아간다. 전국 가정에서 이런 대기전력으로 새나가는 전기가 한 해 4200억원어치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14일 한국전기연구원(KERI)이 전국 105곳 가정을 대상으로 한 실측조사 결과를 분석해 내놓은 결과다.

 이번 조사에서 나타난 집 안의 대표적인 ‘전기 먹는 하마’는 위성·케이블 방송 등을 수신할 때 쓰는 셋톱박스였다. 대기상태에서 쓰는 전력이 12.3W에 달했다. 탁상형 인버터 스탠드를 켜놨을 때가 18W 정도니 상당한 양이다. 또 TV의 대기전력(1.3W)의 10배에 육박하는 수준이다. 셋톱박스에 이어 인터넷모뎀(6W), 스탠드형 에어컨·보일러(각 5.8W), 오디오스피커(5.6W) 등도 대기전력이 많이 드는 전기제품으로 꼽혔다. 반면에 인터넷전화기(0.2W), 휴대전화 충전기(0.3W) 등은 상대적으로 대기전력이 덜 들어갔다. 가정에서 많이 쓰는 전기밥솥은 3.5W, 컴퓨터는 2.6W 수준이었다.

 이런 전자기기를 통해 한 가구에서 쓰는 대기전력은 한 해 평균 209㎾h, 전체 소비전력의 6.1%다. 전기요금으로 따지면 연간 2만4000원가량이다. 이를 전국 가구로 넓히면 한 해 4200억원을 대기전력용으로 내고 있는 셈이 된다. 이번 조사를 총괄한 KERI 김남균 전력반도체연구센터장은 “전국 가정에서 가전기기의 플러그만 빼도 화력발전소(50만㎾) 1기를 덜 돌려도 된다”고 말했다.

 다만 2003년 첫 조사 때보다는 대기전력 소비가 크게 준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에는 가구당 306㎾h를 쓰는 것으로 조사됐으니 9년 사이 45%가 준 셈이다. 이 기간에 가구당 사용하는 전자기기가 평균 15.6대에서 18.5대로 늘었지만 대기전력을 덜 쓰도록 개발된 제품들이 보급되면서 나타난 효과다. 이렇게 줄인 대기전력량만도 1130기가와트h로 화력발전소 1기를 94일간 돌려야 만들 수 있는 양이다.

 김남균 센터장은 “가정 외에 사무실과 생산현장에서 새나가는 대기전력까지 합하면 전력난 속에서도 막대한 에너지가 허공으로 사라지고 있는 셈”이라며 “특히 최근 보급이 늘고 있는 네트워크 가전과 스마트 기기의 대기전력을 줄일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대기전력을 줄이기 위해선 ▶쓰지 않는 가전기기의 전기코드를 뽑고 ▶대기전력 차단 멀티탭을 사용하며 ▶에너지 절약 마크가 찍힌 제품을 구입하라는 게 KERI의 권고다.

 전력난 극복을 위해 대대적인 절전 홍보에 나선 정부도 대기전력 줄이기에 총력을 기울일 방침이다. 홍석우 지식경제부 장관은 이날 서울 상도동 청운종합복지원을 찾아 대기전력 차단기를 설치하는 등 ‘절전체험 봉사’를 했다. 그는 “대기전력 제로화를 목표로 자동차단장치 보급, 플러그 뽑기 캠페인을 적극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대기전력(standby power) 가전제품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전력을 공급하는 전원장치는 사용할 때와 동일하게 작동하면서 소비되는 전력이다. 자동차가 신호대기 상태에서도 엔진이 돌아가는 것과 유사하다. 지경부와 KERI는 전원장치의 대기전력을 1W 이하로 낮추도록 설계한 반도체를 개발하기도 했다. 이를 적용하면 연간 667억원어치의 전기를 아낄 수 있을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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