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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민중운동 기록한 '1968'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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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밝은 독자라면 제목만 봐도 무슨 책인지 쉽게 알 것 같다.

책은 흔히 '68운동' '68세대' 라는 말로 입에 자주 오르내리는 '1968년' 에 관한 이야기다. 당시 세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분출했던 격변의 정치적 사건을 집중적으로 다뤘다.

대표 저자인 타리크 알리(58) 는 파키스탄 출신으로 현재 영국의 좌파계열 잡지인 뉴 레프트 리뷰의 편집자다. 당시 영국 68운동의 지도자 중 한 사람으로 활동했다.

따라서 이 책에는 33년 전 그가 청춘을 걸고 매진했던 '혁명적 정치운동' 에 대한 경험담과 그 이상을 실현하지 못한 아쉬움이 짙게 깔려 있다.

물론 이 책에서 그 '아쉬움' 은 현실에 대한 신랄한 비판의 실마리가 된다. 저자들은 지금 세계의 현실(책은 98년에 나왔다) 을 지극히 비관적으로 본다.

요원의 불길같았던 68운동의 숭고한 이상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채 '유토피아가 실종된 시대' '뻔뻔스런 기회주의가 억압하는 문화' 에 우리는 살고 있다. 저자들은 이런 문제의식에서 출발해 68운동의 의미와 가치를 오늘에 되살리려 애쓴다.

◇ 정치적 달력〓책은 68년 세계 각국에서 일어난 주요 사건을 날짜별로 정리했다. 마치 달력 넘기듯이 보는 '역사신문' 같다.

이런 체계와 짜임새는 이 특정한 연도가 세계적으로 어떤 공통분모로 엮이는 지 연관성을 살피는데 아주 효과적이다.

덕분에 우리는 68운동이 '하나의 우연한 사건' 이거나 '계획없는 반란' 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알리는 "68년 실제로 일어났던 사건을 설명하고 보고함으로써 망각의 심연으로 수장된 '그 시기의 정치학' 을 건져내려고 했다" (3백66쪽) 고 밝혔다.

단순한 사건의 일람표, 혹은 연대기가 아닌 '정치적 달력' 으로서 이 책이 갖는 소중한 가치가 여기서 비롯된다.

응당 68운동하면 떠오르는 성(性) 과 마약.로큰롤 등 자유분방한 '환각적 이미지' 는 이 책에서 찾아볼 수 없다.

◇ 연대(連帶) 가 가능했던 사회〓알리는 68년을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려는 시도였으며, 정치와 문화, 그리고 개인간의 관계에서도 새로운 출발점이었다" (20쪽) 고 정의했다.

바로 일체의 권위에 의문을 제기할 때라는 믿음, 그게 여기서 말하는 '새로운 출발점' 이었으며 국제적 연대가 작동할 수 있었던 힘이라고 보았다.

권위의 붕괴는 여러가지 형태로 드러났다. 그 중 베트남전 반전(反戰) 운동은 68운동의 상징이다.

'골리앗' 미국의 콧대를 꺾는 '다윗' 베트남에 세계의 민중들은 박수를 보내며 자연스레 연대했다.

68년이 도래하기 석달 전 볼리비아의 계곡에서 미국 CIA에 살해된 아르헨티나 출신 혁명운동가 체 게바라는 "제2, 제3의 베트남을 창조하자" 며 미국을 압박했다.

더불어 세계의 박해받는 민중을 위한 그의 투쟁은 '어떤 다른 세계' 에 대한 열망을 부추겼다.

그러나 세계의 기성 정치가들은 이런 민중의 열망에 부응하지 못했다.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 를 꿈꾸었던 체코 '프라하의 봄' 은 68년 8월 소련군의 침공으로 압살됐다.

그리스.스페인.멕시코 등에서 일어난 반독재 투쟁도 성공하지 못했다. 프랑스 파리의 5월, 미국 버클리의 7월도 역사 속으로 묻혔다. 68운동은 패자의 역사로 감춰졌다.

◇ '차이의 문화' 를 넘어서〓정치를 흔히 '가능성의 예술' 이라고 한다.

그러나 알리는 "이제 정치는 가능성의 예술이기는커녕 어떻게 해서든지 권력을 손에 쥐는 것이 되었을 뿐" (3백41쪽) 이라고 한탄한다.

알리는 그 정치적 몰락의 원인을 두가지로 든다. 하나는 레이건과 대처 등 80년대 공격적 지도자들이 전파한 신자유주의의 물결이며 다른 하나는 '현실 사회주의' 의 와해다.

이것이 참여 정치의 포기를 촉진해 "절망의 씨앗을 뿌리고 '차이의 문화' 에 뿌리를 둔 증오가 무성하게 자라는 토양" (3백43쪽) 을 만들어 냈다.

인종주의를 표방한 독일의 신(新) 나치주의자들과 프랑스의 국민전선 등의 발호를 보라. 저자들은 바로 이 대목에서 68운동의 현재성과 가치를 되살리며 중요한 경고를 잊지 않는다.

"끊임없이 비타협적인 질문을 던져대는 이단자와 가차없는 비판과 들떠 있는 낭만이 결여된 문화는 조만간 쇠퇴하고 말 것이다." (3백46쪽) .

▶1968년 한반도에선…

1968년 한국에선 무슨 일이 있었나. 이 책은 1월 23일 기록으로 '북한의 전쟁놀이' 를 소개했다.

한국과 관련한 유일한 대목이다. 미국의 정보 수집선 푸에블로호가 북한 해군에 의해 나포됐다는 소식.

미 하원 외무위원회가 북한 영해에서 불법적인 군사 행동을 하도록 허용한 미 행정부를 맹렬히 비난했다는 내용을 실었다.

그해 우리의 역사에는 이것말고도 기억할 사건이 많았다. 1월 21일 무장공비 김신조 일당이 청와대를 기습한 사건과 '통일혁명당' 사건도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당시는 박정희 정권이 제2차 경제개발계획(67~71년) 을 실행 중이었던, 소위 '개발독재' 의 시절이었다.

월남전 파병도 그런 맥락에서 이뤄졌다. 미국내 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에서 반전운동이 거셌지만, 우리는 미국의 우산 아래 월남전 특수(特需) 에 대한 기대로 들떠 있었다.

33년이 지난 오늘, 우리는 그때보다 얼마만큼 달라졌을까. 민주화는 과연 얼마만큼 진전됐으며, 미국의 영향력은 감소했는가. 큰 소리로 'Yes' 를 외치긴 영 껄끄럽다.

국민을 무시하는 권위주의 정치는 정치적 냉소주의를 불러왔고 경제는 세계화의 '덫' 에 걸려 맥을 못추고 있다.

세계의 민중들이 연대를 모색했던 33년 전 우리가 그 대열에서 비켜있었듯이 지금도 한가롭게 세계화의 격랑에 그저 몸을 맡겨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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