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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곡초, 승부차기서 황금골...역삼중은 후반 1골 지켜 우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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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열린 ‘제15회 강남구청장기 소년축구대회’ 중등부 결승전. 봉은중학교 선수(붉은색 유니폼)가 드리블하는 공을 역삼중학교 선수(노란색 조끼)가 뺏으려 하고 있다. 이 날 경기는 역삼중이 1대 0으로 이겼다.

‘제15회 강남구청장기 소년축구대회’에는 관내 21개 초등학교와 18개 중학교가 참가했다. 토너먼트 방식으로 진행된 이번 대회에서 초등부 결승에 대곡초등학교와 포이초등학교가, 중등부 결승에 봉은중학교와 역삼중학교가 올랐다. 우승팀에게는 겨울 방학 때 강남구와 자매결연을 맺은 중국 대련시 중산구로 해외 역사탐방 기회가 주어진다. 지난 8일 대치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열린 초·중등 결승전 현장을 찾았다.

오후 3시, 휘슬 소리와 함께 대곡초등학교와 포이초등학교 경기가 시작됐다. 두 팀은 앞선 3개 경기를 모두 승리로 장식한 만큼 경기 내내 막상막하의 실력을 보였다. 감각적인 패스로 수비진을 따돌리는가 하면 오프사이드 깃발이 올라갔고, 단독 드리블하는 선수를 상대팀 수비수가 몸을 날리는 태클로 막아냈다. 전·후반 각 20분 경기는 공방전만 펼치다 끝나고 말았다. 이어 연장전에 돌입했으나
양팀 모두 득점하지 못했다.

승부차기에 돌입했다. 대곡초 첫 번째 키커의 공이 골대를 맞고 튕겨 나왔다. 포이초 첫 번째 키커의 공은 대곡초 골키퍼가 선방했다. 대곡초 두 번째 키커 공은 골대를 빗나갔고 포이초는 골망을 흔들었다. 승리의 여신이 포이초의 손을 들어주는 듯 했다. 그러나 대곡초 세 번째 키커가 골대 왼쪽 모서리로 날린 공이 골대로 빨려 들어가자 분위기는 다시 바뀌었다. 이어 대곡초는 네 번째, 다섯 번째 선수 마저 골인 시키는 집중력을 보여 우승기를 휘날릴 수 있었다.

초·중등부 최우수상을 받은 장혁진(역삼중3·왼쪽) 선수와 김지호(대곡초 6) 선수.

이용찬(13·대곡초6) 선수는 “지난주 금요일 경기 때 발뒤꿈치에 부상을 입었는데 참고 경기를 뛰었다”며 “생애 첫 번째 우승이라 정말 기분이 좋다. 가족에게 가장 먼저 자랑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초등부 최우수상을 받은 김지호(13·대곡초6) 주장은 “우승한 것도 기쁜데 생각지도 못했던 상까지 받아 너무 놀랍고 즐겁다. 골 넣는 역할은 아니지만 공격과 수비를 넘나들며 열심히 뛰다보니 좋은 결과를 얻었다”고 말했다.

전왕건(55) 대곡초 체육교사는 “매주 금요일 연습과 함께 아침에 20분간 하는 ‘아침건강 달리기’를 꾸준히 한 결과 후반전에도 체력을 유지해 승리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전 교사는 이어 “처음엔 학부모들이 학원 수업에 지장이 있다며 반대하기도 했지만 달라진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 마음을 돌렸다”며 “운동을 즐길 줄 아는 미래 과학자·교수·전문가로 성장시키는 일이 교내 축구단의 목표”라고 밝혔다.

초등부 결승전이 연장전과 승부차기로 이어진 탓에 중등부 경기는 계획된 오후 4시보다 40분 가량 늦게 시작됐다. 중학생들의 경기는 초등학생에 비해 더욱 빠르고 치열했다. 양 팀 모두 문전까지 쇄도해 들어가는 기회는 많았으나 골로 연결시키진 못했다. 소강 상태를 보이던 경기는 후반전 역삼중 스트라이커의 발끝에서 깨졌다. 역삼중의 한 골은 소중했다. 이어지는 봉은중의 공격은 매서웠으나 경기가 끝날 때까지 골로 연결 짓지는 못했다. 종료 휘슬이 울리자 봉은중 선수들은 운동장에 주저앉아 망연자실한 표정이었다. 반면 역삼중 선수들은 기쁨을 마음껏 즐겼다. 승패의 명암이 갈리는 순간이었다.

야신상을 받은 강태훈(16·역삼중3) 선수는“승리가 믿기지 않는다. 대회를 준비하며 협동심과 이해심을 키울 수 있었다”고 말했다.

양진혁(16·역삼중3) 선수는 “나 스스로가 대견하고 친구들에게도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팀원들과 갈등이 있을 때도 있었지만 잘 극복해 우승도 하고 우정도 다질 수 있었다”며 즐거워했다.

중등부 최우수상은 장혁진(16·역삼중3)선수에게 돌아갔다. 장 선수는“주장으로서 경기 시작 전 긴장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며 “앞으로도 꾸준히 축구를 하겠다”고 다짐했다. 이날 경기장을 찾은 장 선수의 부모인 장전웅(53)·강금석(53) 부부는 “아들이 공부와 함께 운동을 하는 데 찬성한다”며 “하고 싶은 일을 하게 하니 아이와 큰 갈등도 없는 편”이라고 밝혔다. 역삼중 강선옥(61) 교장은 “학생들이 공부하면서 쌓이는 스트레스를 운동을 통해 해소할 수 있도록 여러 활동을 권장하고 있다. 매주 토요일에는‘스포츠 데이’를 운영하고 점심시간에는 남·녀 축구대회를 연다. 덕분에 학습 집중도도 높아졌다?고 밝혔다.

응원석에선 “그래, 들어간다!” “한 골 넣자!” 힘찬 함성에 입술 말라”

“파이팅! 한 골 넣자!” “적극적으로~!”

본부석 양 옆으로 대곡초와 포이초의 학부모·학생·교사들이 응원을 펼쳤다. 선수가 공을 몰고 상대팀 골대로 쇄도해 들어가자 모두 일어나 환호와 박수를 보냈다. 대곡초 선수가 포이초 골대 앞에서 헛발질을 하자 대곡초 응원석에선 안타까운 함성이, 반대편 포이초에서는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

“정신이 하나도 없네요. 입술이 바짝바짝 말라요.” 포이초 박종찬(13) 선수의 어머니 이희정(45)씨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이씨를 포함해 학부모들은 두 주먹을 쥐고 팔을 들어올리며 선수와 함께 경기에 몰입했다. 이씨는 “학원 수업도 빠져가며 운동을 하기에 반신반의 했었다. 경기장에서 열심히 뛰는 모습을 보니 기특해 보인다”고 전했다.

“바로 때려!” “그래, 들어간다!” 응원석 반대편에선 포이초 정해인 선수의 아버지 정택진(50)씨가 아들에게 기운을 전하고 있었다. 정씨는 “소중한 추억으로 남을 순간이라 일부러 시간을 내 이곳을 찾았다”며 응원을 멈추지 않았다. 친구들이 뛰는 모습을 보기 위해 경기장을 찾은 대곡초 6학년 박민경(13)·이윤진(13)양은 “학원도 안 가고 응원하러 왔다. 우리 학교가 꼭 이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승부차기로 승패가 갈리는 상황이 오자 응원을 하던 사람들이 모두 터치라인까지 나와 기도했다. 승리가 대곡초에게 돌아가자 대곡초 응원단은 환호성을 질렀다.

학부모 백은하(45)씨는 “아이들 경기를 보고 이렇게 감동할 줄은 몰랐다”며 눈물을 글썽이기도 했다. 반대편 포이초 학부모·교사들은 패배로 풀이 죽은 선수들을 위로했다. 중등부 결승전이 시작되자 응원석은 교복을 입은 남녀 중학생들로 채워졌다. 두 학교의 응원 열기는 뜨거웠다. 학교 이름을 부르는 응원에서부터 교가 대결까지 다양했다. 응원의 포문은 봉은중에서 열었다. 봉은중 전교회장 이승준(16)군은 준비해 온 페트병 두 개를 부딪히며 응원을 이끌었다. 이군은 “봉은중은 우승할 운명”이라며 승리를 자신했다. 봉은중 여학생들도 적극적으로 응원에 동참했다. 종이나팔을 만들어 소리를 질렀다.

박다영(16)양은 “경기가 펼쳐지는 모습을 보면 떨리지만 분명 봉은중이 이긴다”고 말했다. 옆에 있던 서경미(16)양도 “지금은 0대 0 상황이지만 분명 큰 점수차로 이길 것”이라고 예상했다. 역삼중 응원단인 이시훈(16)군은“학원 숙제를 해야하는데, 눈을 뗄수가 없어 경기를 보며 숙제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은지(16)양은 “평소 개구쟁이 같기만 하던 친구들이 진지하게 경기에 임하니 멋있어 보인다”며 웃었다. 학생들과 함께 경기장을 찾은 양은정(40) 교사는 “선수와 응원하는 학생들이 하나가 되는 모습이 감동스럽다”고 말했다.

두 학교 학생들이 열띤 응원을 펼쳤지만 승패는 정해져 있는 법. 후반전 역삼중이 한 골을 넣은 상황에서 종료 휘슬이 울렸다. 역삼중학생들이 경기장으로 들어와 선수들과 부둥켜 안으며 기뻐했다. 봉은중은 준우승으로 아쉬움을 달래야 했다. 그러나 그들 모두에게 경기가 펼쳐졌던 한 시간은 모든 걸 잊고 하나가 열띤 응원을 펼치고 있는 여학생들. 됐던 즐거운 순간이었다.

글=조한대 기자
사진=김경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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