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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view] 자신의 매력을 몰라보는 대한민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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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2면

강성욱
GE코리아 사장

기업이나 국가의 역량은 평상시보다 위기가 닥쳤을 때 제대로 드러난다. 자신의 역량을 과대평가하거나 과소평가하는 리더십은 위기를 이겨내는 데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과대평가형 리더십은 상황을 근거 없이 낙관하는 경향이 있어 적시에 위기에 대처하지 못한다. 과소평가형은 조직과 국가의 강점에 대한 확신이 부족한 나머지 위기를 새로운 도약으로 전환시키는 동력을 만들어 내지 못하고 다음 단계의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과대평가형 리더십의 문제점과 크게 다르지 않다.

 유럽 재정위기에서 비롯된 글로벌 경기 침체와 중국시장의 수요 감소 등으로 무역 의존형 경제구조인 한국호는 더 큰 위기의 암초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형국이다. 이런 위기를 돌파해 낼 리더십의 중요한 자질 중 하나는 무엇보다 대한민국의 강점과 경쟁력을 정확하고 균형 있게 파악하는 능력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각종 비리와 폭로전으로 인해 대한민국의 총체적 역량에 대한 비관적 여론이 대세를 이루고 있어 과소평가형 리더십의 단계를 넘어 자기비하형으로 변질되는 경우를 목도하게 된다. 심지어 미국의 한 기업인은 글로벌 경제에서 차지하는 대한민국의 위치와 역량을 평가절하하는 일부 한국 사람들의 불균형적인 자기 인식에 대해 이렇게 말한 바 있다. “한국인들은 신기하게도 자신의 나라가 아직도 이머징(emerging·신흥) 국가라고 여기는 것 같다. 이미 선진국 대열에 합류했는데도 말이다.”

 한국은 다방면에서 강점을 보유한, 세계적으로 높은 혁신 역량을 갖춘 나라다. 2011년 말, 전 세계 22개 국가 주요 기업의 고위 임원 3000여 명을 대상으로 해당 국가의 혁신성을 조사한 GE의 글로벌 혁신 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국은 미국·독일·일본·중국에 이어 5위에 올랐다. 한국은 세계적 수준의 제조업 기지로서 세계시장의 절반을 차지하는 고부가가치 조선산업과 중동 등 신흥시장을 선도하는 세계적 건설플랜트 기업을 보유하고 있다. 또한 한국은 글로벌 무역의 허브국가다. 미국·유럽연합(EU)과의 자유무역협정(FTA) 발효에 이어 한·중·일 FTA가 진행 중이며,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 지역에서도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다. 광역인터넷, 반도체, 정보기술 인프라 역량, 스마트폰 등 정보통신기술 산업에서는 세계를 선도하고 있다.

 전 세계 160개국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 GE는 선진국·신흥국 같은 기존의 시장 분류 방식에서 벗어나 국가의 부를 만들어 내는 동력을 기준으로 ‘자원시장’ ‘인구시장’ ‘기술과 역량시장’으로 분류 기준을 바꿨다. 한국은 기술과 역량시장에 속한다. 즉, 한국을 세계를 선도하는 탁월한 기술과 인적·제도적·문화적 역량에 의해 국가의 부를 만들어 내는 국가로 분류한 셈이다.

 이러한 한국의 기술과 역량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사례로 경기도 성남에 위치한 GE의 초음파 영상 진단기기 연구개발(R&D) 및 생산기지를 들 수 있다. 이곳에서는 전 세계 시장을 대상으로 독자적인 신제품을 개발하는 한편으로 생산 물량의 90% 이상을 해외로 수출하고 있다. 세계 최저 불량률과 가장 빠른 생산 납기일에 힘입어 일본의 초음파 연구개발 및 생산 업무까지 넘겨 받았다. 한국 인적 자원의 우수한 기술력과 더불어 각종 인프라까지 잘 갖춰져 있기 때문에 다른 나라의 투자 유혹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사업을 확장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방한한 제프리 이멀트 GE 회장은 이명박 대통령을 만나 조선·바이오기술 산업 등에서 한국이 보유한 세계적 경쟁력과 성장 가능성을 언급한 바 있다. 아울러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부주석과의 면담에서는 중국 국영기업의 경쟁력 제고를 위해 한국 기업을 연구할 것을 직접 권고한 사실을 이 대통령에게 전했다.

 이처럼 세계는 한국의 강점을 주목하고 있다. 어떻게 하면 한국의 강점을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활용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있다. 그런데 정작 대한민국 내부에서는 이러한 강점 활용을 극대화하는 데 신경 쓰기보다는 애써 외면하고 깎아내리는 데 몰두하고 있는 것 같아 매우 안타깝다. 아시아 지역 곳곳을 누비며 각국의 매력과 강점을 찾아 사업 성장으로 연결시킨 지난 20여 년의 글로벌 비즈니스 경험을 통해 내가 확인한 점은 한국이 그 어떤 국가보다 많은 강점과 매력을 지닌 강한 국가라는 점이다. 지금처럼 스스로의 강점을 깎아내리고 평가절하하는 분위기에서 리더의 책무는 무엇보다 대한민국이 우리 내부에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강점을 보유한 훌륭한 국가라는 점을 재인식하고 다음 단계의 성장과 발전으로 나아가는 노력을 본격적으로 전개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강성욱 GE코리아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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