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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우 배우생활 23년 '제2전성기'

중앙일보

입력

장진구, 이제 끝장 났다. 누구나 그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런데 장진구만 모른다.

이혼당한 것도 서러운데 조금 있으면 애인 한지원도 자기 친구 박재하에게 빼앗긴다. 살던 집도 위자료로 날리고 여동생 집을 전전하게 된다. 며칠 전에는 술에 취해 한지원의 아파트 복도에다 '큰 일' 까지 봤다.

드라마 얘기를 할 때, 사극이 아닌 한 주인공 이름은 잘 기억나지 않는데 MBC '아줌마' 의 장진구는 다르다.

"야! 이 장진구 같은 놈아" 라는 욕이 등장했을 정도다.

이쯤되면 장진구 역의 강석우가 제2의 절정기를 맞았다고 누구나 인정할 만하다.

"장진구는 허상의 인물이면서도 누구나 어디선가 본 듯한 모습이에요. 사람이 살면서 표현하지 말아야 할 것을 다 하고 다니니까 보는 재미가 있는 거죠. 여자들이 악악거리는 이유는 그런 모습에 당했기 때문이겠죠. 반면에 남자들은 묘한 느낌을 받을거예요, 자기도 그랬던 걸 떠올리면서... "

특히 장진구를 보며 '알량한' 지식을 자기 합리화에 사용하는 식자층을 조롱해 보는 것도 이 드라마의 재미다.

"뭐 꼭 교수들 얘기라기보다는 서민과 지도층의 갈등으로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장진구는 어려운 용어만 알고 있는 사람이고 오삼숙은 그런 용어만 모르고 있는 사람이죠. 정부가 숫자놀음으로 국민을 속이려고 하는데 국민들은 숫자만 모르지 경제가 어떤지는 다 알잖아요. "

그런데 장진구가 망가질 대로 망가지고 나니 그에게 강한 적개심을 품었던 여성들도 이제는 동정과 연민의 눈길을 보낸다.

한때 '일' 저질러 오삼숙과 결혼해 놓고 '기층민과 지식인의 결합' 이네, 한지원과의 갈등은 '변증법의 정.반.합 과정' 이네 하던 장진구였지 않던가.

그런데 한술 더 떠 강석우는 "장진구 좀 이해해줘야 되는 것 아니냐" 고 반문한다.

"따지고 보면 말도 안 통하는 오삼숙하고 살기가 오죽 힘들었겠어요. 오삼숙도 억지가 많아요. 이혼법정을 나서면서 허탈해 해야지 활짝 웃는 게 어딨어요. 잘 보면 장진구가 한지원과 잔 것도 아니고, 편법을 쓰긴 했지만 무능한 사람이 교수가 된 것도 아니거든요…. "

이 말에 "어, 이 사람 장진구에 완전히 동화된 거 아냐" 하는 의문이 들었는데 강석우가 자기고백을 시작했다.

"장진구에게 결여된 것은 모럴이거든요. 근데 이 모럴은 강요로 되는 게 아니에요. 서로가 서로를 배려하고 지켜줄 때 생기는 거죠. 요즘 저한테 페미니즘에 대한 입장을 묻는 사람이 많은데 전 그러죠. 여자들이 엎을려고 하는 거냐, 그러면 그 다음에 남자가 엎어야 되는데."

하지만 강석우 본인은 "집과 방송밖에 모르는, 장진구와는 정말 다른 사람" 이라고 강조했다. 드라마임을 명심해 달라는 부탁이었다.

"거리를 걷는데 어떤 아주머니가 '점잖게 생기신 분이 요새 왜 그러세요' 하는 거예요. 아내에게 주변 사람들이 '남편이 혹시 장진구 같은 사람 아니야?' 라며 궁금해 한대요. 그런데 어느 날 아내도 '진짜 장진구 아니야' 하고 묻더라고요. 나 참…. "

장진구가 꼭 한 박자 쉬며 곁눈질 한 뒤 말을 한다거나, 양말로 발가락을 후비던 장면처럼 장진구의 캐릭터를 살려주는 디테일한 연기를 그가 실감나게 잘 해냈기 때문이다.

"요즘 저는 골프로 얘기하자면 시니어 첫 해에 우승한 거나 마찬가지죠. 마흔 다섯 살에 연기생활 23년차. 배우로 보면 후반기인데, 그 후반기가 매우 행복하리라는 예감이에요. "

장진구 역으로 히트한 강석우에게는 벌써 드라마 2~3개의 주연급 캐스팅 제의가 들어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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