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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얏고 청아한 12줄 풍류 어찌 나만 즐기겠는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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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면

천안·아산 지역에 가야금의 청아한 소리를 무료로 들려주는 천사들이 있다. 아산을 대표하는 유일한 전통가야금 동호회 ‘온주가야소리’ 회원들이 그 주인공. 요즘 이들은 행사철을 맞아 그 어느 때보다 분주하다. 지역에서 열리는 웬만한 공연에 모두 초대받기 때문이다. 이들은 바쁜 와중에도 노인 병원과 보육원 등을 한 달에 1회 이상 방문하는 정성을 쏟고 있다. 박선환 지도 강사(29·여)는 “회원들이 무대 위에서 즐거워하는 모습이 너무 뿌듯하다”고 말했다. 경력 4년차 박덕심 회원은 “모두 가야금 자체가 좋아 모였기 때문에 힘들다고 생각하진 않는다”며 “가끔 공연을 하면 가야금 소리에 심취해 눈물을 보이는 관객도 있다. 앞으로 문화적으로 소외된 이들에게 가야금의 매력을 계속해서 느끼게 해주고 싶다”고 소감을 밝혔다.

지난달 30일 오후 2시. 가야금의 청아한 소리가 2층 국악교실 문틈 사이로 흘러나왔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온주가야소리 회원 10여 명이 외국노래인 ‘첨밀밀’을 연주하며 호흡을 맞추고 있었다.

“회원님들 지금 음색이 조금씩 불안해요. 무대에서는 소리가 더 멀리 퍼지기 때문에 회원님 모두에게 간결한 호흡이 필요해요.”

연주를 옆에서 지켜보던 박 강사가 부족한 부분을 지적하자 회원들은 하던 연주를 멈췄다.

“그럼 이번 곡은 좀 어려우니까 밀양아리랑으로 맞춰보고 다시 시작하자.”

맨 앞줄에 앉아서 호흡을 주도했던 경력 4년 차 배테랑 박덕심(54·여) 회원이 다른 회원들을 다독였다. 그러자 회원들은 박 회원의 지시에 따라 가야금을 다시 튕겼다.

온주가야소리 동호회는 2008년부터 운영됐다. 아산평생학습관에서 시민들을 대상으로 국악교실을 열었는데 회원 간 화합이 잘 돼 동호회까지 결성됐다.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에 정규수업이 있지만 매일 개방되기 때문에 시간이 날 때마다 회원들이 모여 연습을 하곤 한다.

온주라는 이름은 온양의 옛 명칭이다. 회원들의 연령대는 20대부터 고령의 70대까지 다양하다. 이날 연습에 참가하진 못했지만 남성 회원도 있다. 전공과 직장도 다르다. 하지만 이들의 공통사는 오직 ‘가야금’이다. 우리나라 국악기 중 대표적인 가야금은 거문고의 2배인 12줄의 현악기로 음역이 넓다. 가야금은 민요는 물론 동요·가요·클래식 등 다양한 곡의 연주가 가능하다. 김경희 회원은 “가야금 연주를 하다 보면 청아한 소리에 취해 시간 가는 줄 모른다”고 자랑했다.

“가야금으로 건강을 되찾았어요. 마음이 평온해지니 자연스럽게 몸도 좋아지더군요. 요즘은 가야금 연주와 무대에 올라 음악봉사를 하는 재미로 산답니다.”

온주가야소리 김인숙 회장의 얘기다. 김 회장에게 가야금은 특별한 존재다. 그는 지난 2007년 구강암에 걸려 3번에 걸쳐 대수술을 받았다. 병원에서는 생명이 위태롭다고 할 정도였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병 때문에 김 회장은 하루하루를 걱정으로 보냈다. 취미를 갖기 위해 요리학원에 다니고 웃음치료를 하는 등 노력했지만 성과가 없었다.

“요리는 ‘자격증을 따면 끝’이라는 생각이 들었죠. 웃음치료도 수업을 받을 때뿐 집에서는 걱정이 많아서인지 웃질 못했어요. 한마디로 목표의식이 없던 거죠.”

그러던 어느 날 김 회장은 남편의 권유로 아산시민회관에서 열리는 국악교실에 참여하게 됐다. 처음 배울 당시에는 손톱도 부러지고 굳은 살도 생겨 ‘이걸 뭐 하러 배우나’하며 후회하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가야금 연주에 푹 빠진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됐고 점차 흥미를 느끼게 됐다. 또 마음 맞는 수강생끼리 동호회를 결성하고 무료 봉사까지 하다 보니 몸은 피곤했지만 마음만은 편안해졌다.

“어느새 저도 모르게 가야금이 제 인생의 일부가 됐어요. 또 제 상황보다 어려운분들에게 가야금 소리의 아름다움을 들려 드릴 수 있어 좋아요.”

김 회장은 현재 5년째 암이 재발하지 않으면서 건강을 완전히 회복했다. 남편의 적극 후원으로 자신의 집에 지역 노인들을 불러 자선공연을 펼치기도 한다.

동호회 회원 중에는 가야금 이외에도 꽹과리와 징 등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회원이 있다. 조충남 회원이 주인공이다. 그는 노래실력까지 수준급이다. 그 덕분에 전문 공연단 못지 않은 팀이 구성됐다. “전 원래 사물놀이를 취미로 했었어요. 예전에는 가수를 꿈꾸기도 했죠. 가야금을 배우면서부터 욕심이 생겼어요. 무대에 올라 제가 할 수 있는 건 다 보여주고 싶었죠. 앞으로 더 열심히 노력해 저희 회원들과 전국 국악동호회 대회에도 참가하고 싶네요.”

글=조영민 기자
사진=조영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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