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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다시 불어 닥치는 경기침체 공포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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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유럽발 쇼크가 국내외 경제를 강타했다. 미국과 유럽 증시가 폭락했고, 국내 증시도 어제 1800선이 붕괴됐다. 세계의 돈이 위험자산에서 빠져나가고 있다는 의미다. 이 돈은 미국 및 독일 국채 등의 안전자산으로 쏠리고 있다. 심지어 독일 국채(2년물) 금리는 마이너스일 정도다. 이자는커녕 웃돈을 주고라도 안전한 국채에 투자하고 있다는 얘기다. 사람들의 불안감이 얼마나 큰지 짐작하게 하는 방증이다. 국내외 실물경제도 큰 타격을 받고 있다. 회복 조짐을 보였던 미국마저 최근 실업률이 악화되면서 더블딥(2차 불황) 우려가 나오고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버팀목이 돼줬던 중국 등 신흥국들도 이번에는 같이 허우적대고 있다. 미국과 유럽, 중국의 세계 3대 경제권이 다 흔들리고 있다는 얘기다.

 이보다 더 불안한 건 세계경제의 리더십 실종이다. 2008년 위기는 세계 각국의 발 빠른 공조와 글로벌 리더십으로 충격이 덜했다. 하지만 지금은 문제가 무엇인지, 어떤 대책을 써야 하는지 뻔히 알면서도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 유로본드 문제를 둘러싼 대립이 단적인 사례다. 그러는 새 그리스와 스페인 등의 부실은 깊어가고, 유로존의 붕괴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로선 첩첩산중이다. 당장 우려되는 건 금융위기다. 국내에 들어와 있는 유럽계 주식 및 채권 투자액은 460조원이다. 자금 압박에 처한 유럽계 은행들이 본격적으로 자금 회수에 들어가면 주가 폭락과 환율 급등이 우려된다. 2008년의 경우 국내에서 빠져나간 외국인 자금은 45조원이었는데도 증시와 환율이 거의 반토막나지 않았던가.

 실물경제도 크게 흔들린다. 세계경기 위축에 따른 수출 타격 때문이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2009년 수출은 14% 감소했지만 중국 등 신흥국 경제가 빠르게 회복되면서 수출이 곧바로 호조세로 돌아섰다. 하지만 이번에는 3대 경제권이 다 흔들리고 있기 때문에 기댈 곳이 사라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부라도 튼튼하면 외부의 악재를 이겨낼 수 있지만, 이마저도 낙관할 상황이 아니다. 무엇보다 922조원이나 되는 가계부채가 걱정이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중(80%)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65%)보다 높은 수준이다. “유로존 위기가 가계부채로 불붙으면 해답이 없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올해가 선거의 해라는 점도 걱정이다. 위기일수록 단결된 리더십이 중요하지만 선거의 해는 그렇지 못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1997년 외환위기도 사실 리더십의 실종 탓이 컸다.

 무엇보다 아쉬운 건 위기가 온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정부가 선제적으로 대처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말로만 위기 운운할 게 아니라 저축은행 부실은 서둘러 정리하고, 가계부채 해결에도 적극적으로 나서야 했다. 또 재정건전성에만 목매달 게 아니라 경기 냉각을 완화하기 위한 경기 조절책도 필요했다. 정부는 노력한다고 했지만 미흡했다. 지금은 별 뾰족한 대책이 없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정부는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가장 중요한 건 위기의식의 공유다. 특히 정치권과의 협력이 절실하다. 정치권 역시 선거에만 매달리지 말고 초당적으로 협조해야 한다. 비상한 각오와 유연성 있는 정책도 필요하다. 두 번의 위기를 누구보다 훌륭하게 극복한 우리다. 이번 위기 역시 못 이겨낼 리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