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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성복 공세 아무리 거세도 … 37년째 맞춤 양복 자부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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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년째 온양에서 청자양복점을 운영하고 신 대표가 자신이 직접 만든 옷 옆에서 기념촬영을 했다. 그는 늘 고객에게 최고의 옷을 선물해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옷을 판매하는 사람은 옷에 대한 애정과 정보가 누구보다 많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고객에게 편안한 옷을 만들어주고 후회가 없도록 해야 한다는 투철한 사명감도 필요 하죠.” 18살 때부터 양복을 배웠다. 1975년에는 전국에서 단 6명만이 합격할 수 있었던 국가자격 1급 ‘재단사’에 합격했다. 힘든 시기도 있었지만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는 한번도 후회한 적이 없다. 다른 직업은 생각해보지도 않았다. 오로지 고객에게 최고의 ‘옷’을 만들어주려고 노력했다.

온양에서 37년째 ‘청자양복점’을 운영하는 신요섭(60)대표. 신 대표에게는 ‘강소상인’보다 ‘장인’ 또는 ‘디자이너’라는 표현이 어울린다. 이곳에서 만들어지는 모든 옷은 신 대표가 직접 재단하고 디자인한다. 그 뒤 서울에 있는 자체 공장에서 베테랑 기술자들이 한 땀 한 땀 수제작으로 완성한다. 주문에서 완성까지 걸리는 시간은 아무리 빨라야 2주. 그 만큼 그가 만든 옷에는 정성이 깃들여져 있다.

“기성복은 특정한 사람을 위해 맞춘 것이 아니라, 일정한 기준 치수에 따라 미리 여러 벌을 지어 놓고 파는 옷이죠. 현재 우리는 기성품들에 둘러싸여 살고 있어요. 때문에 유행하는 제품의 경우는 한 공간에서 같은 제품을 착용한 사람을 여럿 만날 수도 있죠. 맞춤양복은 세상에 단 한 벌뿐인 소중한 옷이기 때문에 정성을 쏟고 시간을 투자하지 않으면 안돼요.”

신 대표가 맞춤양복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건 지난 1970년 초부터다.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신 대표는 어느 날 의상 디자인에 대해 막연히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만들어보고 싶다’라는 호기심이 생겼다. 하지만 그가 디자인을 배우고 싶어도 배울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지금이야 전문계 고등학교에서 디자인을 배울 수 있고 대학에 진학해서 디자이너를 꿈꿀 수 있지만 당시만 해도 정상적인 루트가 없었다. 그래서 신 대표는 부모님을 설득해 서울에 있는 디자인 학원을 다니게 됐다. 학원에서도 줄곧 의상 디자인 쪽에서 두각을 보인 신 대표는 1975년 재단사 1급 자격증을 취득 후 이듬해 경기도 안양에서 자신만의 작은 맞춤 양복점을 운영하게 됐다. 하지만 그에게는 ‘고향인 아산에서 최고로 유명한 맞춤 양복점을 운영하자’라는 포부가 있었다. 그리고 그 포부는 1977년 현실이 됐다. 결혼과 동시에 아산으로 내려와 가정을 꾸리고‘ 청자양복점’을 차리게 된 것. ‘청자’라는 가게 상호는 도자기 ‘청자’처럼 옷에도 곡선을 살려야 한다는 그의 생각이 반영됐다.

“다시 고향으로 내려왔을 때는 맞춤양복점이 몇 개 있었어요. 1970년대 후반 기능올림픽 붐과 함께 맞춤양복이 전성기를 이뤘기 때문이죠. 하지만 1980년대 대형브랜드가 등장하면서 기성양복 붐에 가려 쇠퇴기를 맞았어요. 그리고 이곳에 남아있던 맞춤양복점이 하나 둘씩 없어지고 결국 저희 가게만 남게 됐죠.”

신 대표가 이런 어려움 속에도 ‘청자양복점’을 운영할 수 있었던 것은 기성복에 맞서도 뒤지지 않는다는 확고한 신념이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고객에게 기성복보다 더 큰 만족을 줄 수 있다는 생각도 한 몫 했다. 하지만 몇몇 사람들이 맞춤 양복은 무조건 ‘비싸다’ ‘중·장년층만 입을 수 있다’는 잘못된 인식을 갖고 있는 것은 아직도 안타까운 부분이라고 한다.

“물론 대량생산하는 기성복들보다 조금은 비싸죠. 또 기성복들은 해가 지나면 남은 옷들을 이월 상품으로 더 싼 가격에 다시 팔기도 하잖아요. 하지만 맞춤양복이 무조건 한 벌에 수 백 만원을 호가한다는 건 잘못된 생각이에요. 조금 싸게 맞추면 50만원 정도도 가능하죠. 또 유행에 뒤쳐지지도 않아요. 개개인의 체형에 맞게 재단, 디자인해 단점은 가려주고 장점은 살려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죠. 오히려 입으면 입을수록 몸에 꼭 맞아 활동성이 좋습니다.”

젊은 트렌드에 뒤쳐지지 않으려고 최근 업계 잡지나 패션쇼는 물론 최신 유행을 반영하는 TV 방송인들의 옷차림도 유심히 살핀다는 신 대표. 그에게 있어 ‘단골’이란 한 번이라도 자신의 가게를 찾은 고객이 다시 방문하면 ‘단골’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그는 37년 동안 자신의 가게를 찾은 고객들의 정보를 하나도 빠짐없이 간직하고 있다. 체형은 물론 선호하는 스타일과 옷을 맞춰 입을 당시 사용했던 재단까지 모두 수기로 작성해놓고 있다.

“예전에는 다른 업체에서도 컴퓨터 사용은 거의 없었죠. 고객의 정보는 곧 나의 재산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아직도 고객카드를 수기로 작성해 놓죠. 최근 들어서는 컴퓨터에도 함께 저장하고 있어요.”

그의 고객관리 방식 때문인지 한번 방문했던 고객이 이곳을 다시 왔을 때에는 더 없는 친근감을 느끼기도 한다. 지난해에는 25년 만에 다시 찾은 고객이 신대표에게 감동을 받아 ‘평생 잊지 않겠다’며 3벌의 옷을 맞춰 입었다고 한다.

“지금은 수원에 살고 계신 한 고객님이 25년 만에 저희 집에 다시 방문했죠. 고객카드를 보니 결혼을 앞두고 상견례 때문에 옷을 잘 만들어 달라는 부탁이 있었어요. 오시자마자 안부를 묻고 웃는 얼굴로 맞이하니 반가워 하셨죠. 그리고는 ‘25년 전 내 생애 가장 큰 선물을 받은 것 같아 다시 옷을 사러 왔는데 뜻밖에 기억을 해주니 너무 감사하다’고 말하시더군요. 앞으로도 저희 가게를 찾아오시는 분들께는 가족처럼 대하고 싶네요.”

글=조영민 기자
사진=조영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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