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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사마' 정만호 "이문식씨같은 캐릭터 배우가 꿈"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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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집 주방에서 면 반죽치면서, 흥얼거리던 노래가 막무가내 보이즈의 밑거름이 된 것같습니다."

SBS TV '웃음을 찾는 사람들(웃찾사)'에 '막무가내 보이즈'.'만사마'등으로 출연 중인 개그맨 정만호(29)씨는 23일 여의도의 한 호텔에서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된 배경을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특유의 춤과 노래 솜씨로 인기몰이 중인 정씨는 지난 21일 "중학교 졸업 후 동거, 12살된 아들이 있다"고 밝혀 세간의 화제가 됐다.

그는 "너무 일찍 아빠가 됐지만 아이를 키우기 위해 오토바이센터 직원.공장 노동자.중국 음식점 운영 등 안 해본 일이 없다"며 말문을 열었다.

어려운 가정 형편 탓에 이렇다할 부모의 지원을 받을 수도 없었다.

정씨는 "사춘기인 아들에게 생모가 따로 있다고 알리기 쉽지 않았지만, 사실을 알린 다음에도 친엄마처럼 잘 지내고 있어 기쁘다"고 말했다.

아이 딸린 남자에게 시집와 묵묵히 가정을 꾸려온 아내에 대한 감사도 잊지 않았다.

정씨는 "집사람은 학력.돈.인물.기술, 아무 것도 없는 내게 시집와서 고생만 했다"며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다음에는 그간 미뤄온 결혼식을 치뤄주고 싶다"고 덧붙였다.

이야기는 정씨가 6년간이나 운영했던 중국 음식점을 정리하고 개그맨에 입문하게 된 사연으로 이어졌다.

"먹고살기 위해 중국집을 꾸려 제법 장사가 됐었다"는 그는 "집사람과 장사에 매달리다 젖먹이였던 둘째 아이가 한 달 넘게 대변을 보지 못해 응급실까지 실려가는 지경에 이르렀었다"는 가슴아픈 사연을 공개했다.

정씨는 이어 "중국집 덕에 겨우 식구들이 살만큼 돈을 벌었지만, '자식들을 젖혀두고 돈을 버는게 무슨 소용이 있나'하는 생각이 들어 가게를 정리했다"며 "둘째가 아팠던 탓에 개그맨까지 하게됐으니 오히려 잘된 것같다"고 덧붙였다.

정씨는 사실 개그맨이 아닌 '로버트 드니로'같은 성격파 배우를 꿈꾸며 단역배우로 연예계 생활을 시작했다.

'아라한 장풍 대작전'이나 '올드보이'등의 영화에도 출연했지만, 정씨를 영화배우로 기억해 주는 팬은 거의 없다.

"두 작품 모두 찍고 편집되어서 짤려버렸거든요. 편집된 사실도 모르고 친구들과 극장에 갔다가 두 번이나 쓴웃음만 짓고 나왔습니다."

노래 솜씨를 살려 트로트 앨범을 낼 계획이라는 그는 "가족과 팬들을 위해 더 많이 노력하겠다"는 말로 인터뷰를 마쳤다.

강승민 기자

다음은 정씨와 인터뷰 전문.

- 어린 시절부터 끼가 있었나.

"어린시절에는 개구쟁이였다. 몰려다니면서 장난도 심했고…. 반장은 못해봤는데, 소풍만가면 오락반장 역할을 독차지했다. 친구들도 그때 끼가 나오는 것같다고 하더라. (웃음)"

- 친엄마 아닌 것은 언제 얘기했나.

"1년 전에 얘기했다. 가슴 아프더라. 얘기를 하기 전에도 몇 달전부터 집사람과 상의했다. '차라리 더 큰 다음에 얘기하는게 낫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은 매도 먼저 맞는게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얘기 해놓고, 새롭게 정을 쌓는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아들의 반응은.

"울고 싶어하는 표정이 보였다. 자기는 울고 싶은데, 아빠를 생각해 울지 못하는 그런 느낌이었다. 당시 초등학교 5학년이었는데…. 서글퍼도 꾹 참아주는 것같더라. 잘해주지 못해 안타까웠다."

- 지금 엄마와 사이는 어떤가.

"친엄마보다 더 잘지내 흐뭇하다.(웃음)"

- 부인과 결혼식을 치르지 못했다는데.

"먹고 살기 바빠서 혼인 신고만 했다. 당장 결혼식을 올리고 싶은데, 올해 말이나 내년 초에 할 생각이다. 지금은 개그에 전념할 때니까. 집사람이 다 이해해 주니까 급히 서두르지는 않겠다."

- 연애결혼이라고 들었다.

"아는 선배 소개로 만났다. 6개월 정도 사귀었고, 5개월이 지난 다음에 아이가 있다고 말했다. 태연하게 받아들여줘, 천사라고 생각했다."

- 처가의 반대는 없었나.

"진짜 어려움 많았다. 학력도 돈도 인물.기술, 아무 것도 없는 나를 반대하는 것은 상식적으로도 이해가 갔다. 열심히 일하는 모습 보이고 하니 나중에는 받아들여 주시더라."

- 결혼 당시 직업은.

"혼인신고 직후 중국 음식점을 차렸다."

- 중국 음식점하면서 돈은 많이 벌었나.

"먹고 살 정도는 됐다. 애들 둘 키우고, 부모님 모시고…."

- 중국 음식은 어떻게 배웠나.

"중국 음식점에서 생활하면서 어깨 넘어로 많이 배웠다. 첨엔 잘 안가르쳐줘서 주방장 안마도 해주고, 직접 음식을 해먹기도 하고 그렇게 연습했다. 음식점을 차린 직후 IMF가 터져 하루에 4 ̄5시간 밖에 자지 못했다. 신선한 식재료를 구하기 위해 매일 새벽에 일어나 장도 손수 봤다. 전단도 직접 돌리고…. 그렇게 한6개월을 뛰니까 슬슬 좋아지더라."

- 장기자랑 프로그램에 출연한 것이 연예계 데뷔계기가 됐다는데.

"중국음식점 그만 두고 단역 생활하던 2002년쯤엔가, 도전 60초라는 프로그램에 나가 김건모 모창을 했던 것이 계기가 됐다."

- 개그맨이 된 것은.

"장기자랑 프로그램에 출연한 것을 계기로 개그맨 박승대씨 밑에서 개그를 배웠다. 처음 6개월간은 적응이 안돼더라. 미숙하고하니까 자꾸 기운이 떨어지더라. 악을 품고 트레이닝을 계속하다보니 조금씩 좋아졌다."

- 원래 배우를 꿈꿨다고 들었다.

"이문식씨같은 캐릭터 배우가 되고 싶었다. 그런데 주변 사람들이 재밌으니 개그맨 하라고 자꾸 그러더라. 박승대씨가 내 인생을 완전히 바꿔주셨다. 그때 박승대씨를 만나지 못했다면 다른 일을 하던지, 아니면 계속 엑스트라에 도전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 단역은 어떤 것에 나갔나.

"'아라한 장풍 대작전'.'올드보이'두 작품에 출연했다. 그런데 두 작품 모두 편집됐더라. 당연히 (영화에)나올줄 알고 극장에 가서 영화를 봤는데, 영화가 끝나도록 나오지 않더라."

- 아이의 생모에게선 연락이 오나.

"아이를 낳고 헤어졌다. 소식은 궁금하지 않으나 잘 살고 있길 바란다."

- 학창시절은 어땠나.

"솔직히 공부 쪽엔 재능이 없었고, 큰 흥미도 없었다. 좋아하는 과목은 음악과 체육 정도. 노래를 좋아해 누구보다 열심히 불렀다."

- 오토바이센터 직원.공장 근로자 등 다양한 경험이 있는데, 개그에 도움이 되는가.

"도움이 되는 것은 인내심이다. 단체생활을 해보지 못해 처음엔 힘들었다. 동료와 같이 연구해야 개그가 느는데…. 또 어려서 고생만 하다 보니, 요즘 젊은이들의 취향을 맞추기 위해 많이 노력했다.

- 고생했던 얘기 좀 해달라.

"식당 경영할때다. 장사가 제법 되는 편이었다. 배달 3명 두고, 집사람이 홀에 있었고, 난 주방에서 주방보조와 함께 일을 했다. 돈 벌 욕심에 뛰어다니다 보니 아이들한테 신경을 쓰지 못했다. 작은애가 두 살정도 됐을땐데, 가게 안에 방에 눕혀 놓고 젖병만 물려놓고 그랬다. 그런데, 아이가 한 달 동안 분유 한 통을 제대로 못먹더라. 나중에 대장이 쪼그라 들어서 그렇다는 설명을 들었다. 그러다보니, 아이가 한 달 동안 변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아랫배는 불러오고…. 응급실에 가니 의사가 아이의 엉덩이에 손을 넣어 강제로 변을 보게 했다. 변과함께 피가 쏟아져 나오는데, 눈물이 흘러 도저히 볼 수 없었다. 돈도 좋지만, 이건 아니다 싶어 가게를 접었다."

- 지금도 요리하나.

"6년간 팔던 실력이다. 음식 맛은 자신한다. 손은 녹슬었겠지만, 맛은 있을 것이다."

-인기를 실감하나.

"어느 날인가 전철을 탔는데,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예전엔 '웃찾사다. 만사마다'하면서 몰리더니 이제는 이름도 불러주는 사람이 많다."

- 아이가 있다는 사실에 팬들의 반응이 갈리는데.

"상식 밖의 행동이니 선뜻 받아들이긴 힘들 것이다. 속된 말로 '너무 까지지 않았나'하는 생각이 드는건 당연하다. 솔직히 그런 면이 있었다. 그러나 실수보다, 책임지는게 중요하다는 비판에 동감한다. 비판도 있지만, 요즘 너무 기분이 좋다. 실망감을 드린만큼 더 열심히 하겠다."

- 스스로의 약점이 있다면.

"지식이 부족한 탓에 언변도 약하고, 부족한 것이 많다. 틈틈이 공부하고 싶다."

- 대학 진학 계획이 있나.

"시간이 되면 검정고시는 꼭 보고 싶다. 그러나 대학이 아니더라도, 공부할 수 있을 기회는 많다고 생각한다."

- 앞으로 계획은.

"구체적인 일정을 잡은 것은 아니지만, 트로트 앨범을 내고 싶다."

강승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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