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노트북을 열며

스웨덴 패러독스의 한국적 조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0면

김동호
내셔널팀장

서울 강남은 부(富)의 상징으로 통한다. 지하철이 속속 거미줄처럼 연결되고 고층 스카이라인도 계속 확장 중이다. 밤이 되면 뉴욕·도쿄·홍콩 못지않은 야경을 뽐낸다. 주택경기 침체에도 고급 주택과 오피스텔이 꾸준히 들어선다. 숲과 나무가 무성해져 자연환경은 날로 좋아지고 있다.

 겉과 달리 속사정은 예전 같지 않다. 강남구의 형편을 보자. 부자 구청이라는 질시를 받아온 강남구는 만성적인 돈 가뭄을 겪고 있다. 최대 원인은 재산세 수입 감소다. 강남구의 재산세 수입은 2007년 2524억원에서 계속 감소해 지난해 1900억원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2008년부터 강남북 균형 발전 명목으로 재산세가 서울시 공동과세로 전환되면서 강남에서 걷힌 재산세의 상당 부분이 강북 지역에 배분된 여파다. 주택 거래 둔화는 재산세 수입 감소를 더욱 재촉한다.

 반면에 갈수록 무상보육·무상급식 등 갖가지 복지 서비스가 신설되면서 지출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강남구의 사회복지예산은 2008년 1176억원에서 올해 1675억원으로 늘어났다. 같은 기간 일반예산 가운데 복지예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20.4%에서 33.2%로 껑충 뛰었다.

 이 같은 복지 지출 증가는 불가피하다. 국민소득 증가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이자 추세일 뿐만 아니라 고령화·양극화에 따른 사회안전망 차원에서도 피할 수 없다. 강남구에는 거주 환경이 열악한 판자촌이 지금도 존재한다. 개포동 근처의 구룡·재건·달터·수정마을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한국에서 최고 부자동네라는 강남구도 솟구치는 복지 지출에 부담을 느끼는 게 현실이다. 구청 강좌를 유료화하고 축제를 폐지하는 등 긴축 살림에 나서고 있는 이유다.

 재정자립도가 낮은 자치단체의 사정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이런 고충을 표면화시킨 결정적 계기는 올해 본격화한 0~2세 무상보육 확대다. 16개 광역단체가 참여하는 전국시·도지사협의회는 최근 자치단체 부담분의 무상보육 재원을 마련할 능력이 없다고 선언했다. 강남구와 부자동네 1, 2위를 다투는 서초구는 다음 달 이후 무상보육 재원이 고갈돼 추경예산을 짜야 할 판이다. 여야가 4·11총선에서 쏟아낸 향후 5년간 268조원 규모의 복지공약이 본격화하면 정부와 지자체 재정은 직격탄을 맞을 공산이 크다.

 이러다간 그리스처럼 되지 말란 보장이 없다. 그런 사태를 피하려면 대비가 필요하다. 실마리는 요람에서 무덤까지 복지 체제가 구축돼 있는 스웨덴 벤치마킹에 있다. 그러나 꼭 알아둬야 할 전제조건이 있다. 일시적 실업자를 빼면 대다수 경제활동인구가 일을 한다는 점이다. 그 결과 세금도 많이 내고 복지 혜택도 많이 누린다. 이같이 복지 수준이 높은데도 번영하는 스웨덴 패러독스의 원동력은 꾸준한 성장이다. 스웨덴은 선순환 구조를 유지하기 위해 일회성 복지를 줄이고 성장의 전제조건인 일하는 복지 구축에 힘을 쏟고 있다. 이런 전제조건을 충족한다면 우리도 코리안 패러독스를 즐길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