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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구의 서울 진(眞)풍경 <10> 조계사와 그 주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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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조계사 전경. 진신사리탑 뒤로 수령 450년의 회화나무와 보천교 십일전을 옮겨 지은 대웅전이 보인다. 번잡한 서울 도심 속 성지이자 쉼터다. 파노라마 기능으로 사진 여러 장을 찍어 한데 이었다. [사진 구가도시건축]

나는 늘 사월 초파일을 기다린다. 조계사 회화나무 마당에 있는 색동구름처럼 펼쳐진 연등은 언제나 가슴을 울린다. 28일 가족들과 조계사를 찾았다. 갖가지 모양의 연등과 향연도 즐거웠지만, 무엇보다 이 길에 원래 주인이었던 사람들이 돌아온 것 같아 좋았다.

 예전에는 건물과 건물 사이 골목으로 들어갔던 곳에 이제는 커다란 문이 섰다. 조계사에는 사찰다운 공간구조가 없다고 말하기도 한다. 일주문을 지나 사천왕상을 지나고 다시 건물 밑을 지나 대웅전에 이르는 그런 공간의 배치가 없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빌딩이 우거진 도심 속에 이렇게 횡단보도 하나만 건너 찾을 수 있는 절이 있다는 건 축복이란 생각이 든다.

 조선의 숭유억불 정책에 따라 불교가 도성에 들어오기는 무척이나 어려웠다. 1897년 승려들의 도성 출입이 허가되고, 지금의 창신초등 자리에 있던 원흥사는 불교 총합소를 조직해 박동(수송동 82번지)에 각황사를 짓는다. 1910년의 일이다.

하지만 옛 사진에서 본 각황사는 일본식 사찰 외관을 하고 있었다. 외양도 외양이지만 비가 새는 등 건물이 낙후해, 건너편 보성학교가 이사 가고 난 지금의 자리에 대웅전을 짓고 삼각산 태고사의 이름을 빌려 사찰을 짓게 된다.

 조계사 대웅전은 전북 정읍시 입암면 대흥리에 있던 보천교 본당인 ‘십일전(十一殿)’을 옮겨 지은 것이다. 차천자라 불리던 교주 차경석은 2만여 평의 대지에 45동의 궁궐 같은 성전을 짓는다. 일제가 세운 조선신궁에 대응하는 공간을 만든다는 것이었지만, 일본 식민정부는 다 완성된 건물의 사용을 허락하지 않았다. 1936년 차경석은 십일전에 들어가지 못한 채 병을 얻어 사망하고, 십일전과 주변 건물은 헐값에 처분돼 보천교는 순식간에 해체된다.

 그 이전 공사의 규모는 대단했다, 연인원 기술자 7,500명, 인부 6만5000명이 동원됐다. 총책임을 맡은 도편수는 당대 최고 궁궐목수였던 최원식이었다. 1938년 10월 25일 낙성식을 하고 건물은 완성된다. 4개월간의 대공사였다. 세간에는 십일전이 근정전보다 크다고 알려졌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고종 4년(1867) 지어진 근정전은 정면 30m, 측면 21m로 대략 630㎡(약 190평)정도인 반면, 조계사 대웅전은 정면 30m, 측면 17m로 대략 510㎡(약 150평)이다. 더욱이 높이는 근정전이 2층 건물로 아래기단에서 21.3m, 조계사 대웅전은 단층으로 지상에서 18.8m로 차이가 난다.

 대웅전에 들어가 방석을 깔고 오랜만에 무릎을 꿇고 합장을 했다. 불교신자는 아니지만 부처님께 우리가족 모두 올 한 해 무탈하게 해달라고 기원했다.

눈을 뜨자 단청을 한 높고 화려한 천장이 보이고 주변 사람들이 눈에 들어온다. 어떤 사람은 온몸을 바닥에 엎드려 절하기를 반복하고, 어떤 사람은 가만히 손을 모으고 방석 위에 앉아 무언가 중얼거린다. 배낭을 맨 외국인들은 기념사진을 찍으며 이국의 풍경에 흥분을 감추지 못한다. 그야말로 ‘야단법석’이다. 이렇게 제각각의 사람들을 받아들이는 불교의 포용력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많은 사람들이 인사동을 찾지만 사실 좀 더 한적하고 깊은 곳은 이웃한 조계사 뒤쪽 길에 있다. 인사동 위쪽 횡단보도를 건너 한국치과와 마오즈(maoz) 가게 사이로 들어서면 아직도 2층 벽돌건물로 남아있는 레스토랑 ‘쟈콥’이 보이고, 좀 더 가면 식당과 인쇄소, 승복가게와 한옥골목이 있다. 골목 뒤에는 곱게 청기와로 지붕을 단장한 집이 보이는데, 외벽장식이나 대문 등이 예사롭지 않다.

 내려갈수록 길은 더 조용하고 차분해진다. 3·1 독립운동 선언서를 찍어낸 보성사터와 고려시대 문신 목은 이색선생의 영전이 모셔진 한옥 등이 안쪽에 자리한다. 다른 한 쪽엔 조계사 극락전이 콘크리트 구조 위에 2층 높이로 올라서 있다. 우거진 나무와 함께 무언가 깊고 편안한 느낌이 드는 ‘오래된 길’이다.

 회화나무 아래 펼쳐진 의자에 앉아 할머니 합창단의 ‘산사의 아침’을 듣는다. 450년 된 나무는 아무런 말이 없지만 굴곡진 근·현대의 시간을 거쳐 어렵게 찾은 안락함이 있었다. 위에 달린 수많은 연등은 모두 다른 소원이면서 동시에 모두가 간절한 소망이 있음을 알려준다.

우리는 이 도시에 같이 사는 사람들이라 느껴지고, 조상들과 우리도 하나의 흐름 속에 살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연등이 준 ‘깊은 울림’은 그런 것인지 모르겠다. 가난한 여인 난타의 정성이 밝힌 등불이 꺼지지 않고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번져, 색색의 희망으로 밝혀진 연등이란, 이제 우리에게 크리스마스만큼이나 의미 있는 축제란 생각이 들었다.

◆조정구(46)=건축가. 2000년 구가도시건축 설립. ‘우리 삶과 가까운 일상의 건축’을 화두로 삼고 있다. 대표작으로 서울 가회동 ‘선음재’, 경주 한옥호텔 ‘라궁’ 등이 있다. 2007년 대한민국 목조건축 대상을 받았고, 2010년 베니스 비엔날레 국제건축전 한국관 작가로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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