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女3명 몹쓸짓 20대 신학생 "고3때 충격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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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지난 18일 경북의 A교도소. 두꺼운 철문이 열리고 좁은 면회실로 들어가자 굵은 뿔테 안경을 쓴 그가 기다리고 있었다. 특수강도강간 등 혐의로 8년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인 하모(27)씨. 파란색 죄수복 오른쪽 가슴에는 선명하게 ‘0067’이라는 수인번호가 적혀 있었다.

그는 전도유망한 신학생이었다. 1000여 명의 신도 앞에서 기타를 치고 노래하던 찬양인도자. 교회 내에선 선망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2009년 말 그는 생면부지였던 여성 3명을 강제로 성추행하고 금품을 빼앗은 죄로 이곳에 수감됐다. 어떤 삶의 과정이 그를 범죄자의 길로 내몰았을까. 부모 이야기부터 꺼냈다.

 -어린 시절은 어땠나.

 “아버지는 주장이 굉장히 강한 분이셨다. 말이 나왔으면 그대로 돼야 했다. 안 되면 그냥 모든 걸 뒤집어엎어 버리셨다. 어머니를 때리는 일도 잦았다. 떠올리고 싶진 않지만 집에 가면 온갖 세간이 다 부서져 있었다. 그래서 집에 아버지가 계시면 아예 말을 안 했다. 어차피 혼날 것이 뻔하니까. 지금은 아버지로도 생각 안 한다. 친부(親父)라기보다는 나를 있게 해준 생물학적 남성,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학창 시절은.

 “초등학교 때까지는 어머니가 어린이집을 크게 하면서 윤택하게 살았다. 성적도 상위권이었고 어린이집 원장님 아들이니 어른들도 인정해 줬다. 또 아버지가 목사라 주변에선 목사님 아들인 나를 따르던 친구도 많았다. 하지만 개척교회가 잘 안 되면서 경제적으로 어려워졌고, 힘든 시기를 보냈다. 고3 때 우연히 어머니가 방에서 아버지에게 사정하는 얘기를 들었다.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제발 이혼만은 참아달라는 얘기였다. 큰 충격이었고 가슴이 아팠다.”

 - 왜 범행을 저질렀나.

 “그분들에게 정말 죄송한 일이다. 범행 기억은 있는데 나도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노래를 해야 하는데 성대결절로 갑자기 목소리가 나오지 않게 됐다. 음악이 내 인생의 전부라고 생각했는데 그렇게 되고 보니 자포자기 하는 심정이 됐다. 병원이란 병원은 다 찾아다녔지만 원인을 알지 못했다. 그러면서 한순간 패닉 상태에 빠졌던 것 같다.”

 - 자라면서 가장 아쉬웠던 것은.

 “돌이켜 보면 항상 말할 대상이 필요했다. 하지만 폭력적인 아버지, 부모님의 불화 등으로 내가 고통받는 얘기는 누구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었다. 스트레스를 받는 순간마다 누군가에게 얘기하고 풀 수 있었다면 이렇게까지 되지는 않았을 것 같다.”

탐사팀=최준호·고성표·박민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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