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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다가, 욕하다가 … 폐비 윤씨 연기하며 스트레스 풀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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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JTBC ‘인수대비’에서 폐비 윤씨 역을 맡은 전혜빈이 중전에서 폐위된 후 사가에 나와 성종을 그리며 오열하는 장면. ‘인수대비’는 지난 26일 방송에서 평균 시청률 3.87%(AGB닐슨 수도권 유료가구)를 기록해 자체 최고 시청률을 경신했다. [사진 JTBC]

그동안 수많은 ‘폐비 윤씨’가 있었다. 조선의 몰락한 양반가문에서 태어나 중전의 자리까지 올랐다가 사약을 받은 윤씨의 일생은 드라마가 사랑하기에 충분히 비극적이다. 윤씨는 때론 아들을 지키려고 혈안이 된 어머니였고, 권력욕에 사로잡힌 정치인이었으며 궐내의 권력 다툼에 휘말린 희생자이기도 했다.

 전혜빈(29)이 JTBC ‘인수대비(토·일 오후 8시 50분)’에서 연기하는 윤씨는 권력욕이나 모성애보다 그저 사랑에 갈급한 여인일 뿐이다. 그가 행하는 모든 악행은 성종에 대한 지극한 사랑으로부터 시작된다.

“체통이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겠다. 전하가 없인 살 수가 없는 걸 어떻게 하느냐”며 울부짖는 윤씨는 이 통속적인 드라마에서 꽤나 그로테스크한 존재다. 착하게 살아야겠다며 눈물을 보이다가도 갑자기 큰 눈을 희번덕거리며 후궁들에게 증오의 말을 퍼붓는 병적인 인물은 전혜빈에 의해 현실에 발을 딛을 수 있었다.

채시라·김미숙 등 ‘연기 달인’들과 호연을 펼치며 시청률 3%를 견인하고 있는 그를 25일 전화로 만났다.

 -감정 기복이 정말 심한 캐릭터다.

 “보통 이런 성격을 가진 사람이 있나? 정하연 작가님이 ‘악녀와 선녀의 두 가지 얼굴을 지녀야 한다’고 했다. 저는 무던한 성격이라 처음엔 감정이 확확 바뀌는 게 이해가 안됐다. 대사도 잘 안외워지고 감정 몰입도 힘들었다. 그러다가 ‘아, 윤씨는 보이는 것이 전부인 사람이구나. 감정을 직설적으로 드러내는 단순한 인간이구나’ 생각하니 실마리가 풀렸던 것 같다. 이제는 분노 연기를 하면서 스트레스를 푸는 정도까지 됐다.(웃음)”

 -성종에 대한 집착이 병적이다.

 “윤씨가 어릴 때부터 업어 키우고 품안에서 잠을 쟤우던 사람이다. 평생 내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자신은 점점 늙어가고, 후궁들 침소에 드는 것을 보면 울화통이 터질 것 같다. 시청자들도 그런 점을 측은해하는 것 같다.”

 -채시라와 연기 호흡은 어떤가.

 “극에선 대립해도 카메라 밖에선 대사 뿐만 아니라 절하는 법까지 하나하나 다 조언해주신다. 본인이 카메라에 잡히지 않더라도 제 연기를 위해 일일이 대사를 받아주신다. 솔직히 제 인생의 드라마를 꼽자면 ‘인수대비’가 일순위가 될 정도로 고마운 작품이다.”

 전혜빈은 2002년 LUV란 아이돌 그룹으로 데뷔했다. 예능 프로그램인 ‘천생연분(MBC)’에 출연해 ‘이사돈(24시간 쉬지않고 돌 정도로 춤을 잘춘다는 뜻)’이란 별명을 얻으며 이름을 알렸다. 원래 배우 지망생이었던 그는 2003년 시트콤 ‘논스톱’으로 연기를 시작했다. 예능인의 이미지가 강했던 터라, 연기자로 인정하지 않는 세간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그는 “드라마를 10편 넘게 찍었는데 사람들은 여전히 ‘이사돈’으로 기억하니, 연예인에게 처음 이미지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겠더라”고 했다.

 2년 간 공백기를 가지며 절치부심하다가 2010년 사극 ‘야차(OCN)’에서 비극적 운명의 기생역을 맡으면서 연기자로서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줬다. 그는 “연기를 하면 마음 깊숙한 곳에 감정들이 올라와 몸이 뜨거워진다. 예능으로 웃음을 드리는 것도 좋지만, 연기를 할 때가 더 행복하다”고 했다. 그는 연기에 집중하기 위해 음반 제의도 거절하고 있다고 했다.

 “요즘 아이돌이 가수와 연기를 병행하는 모습을 보면 세월이 많이 변한 것 같아요. 저는 그 이미지를 벗기 위해 정말 힘들었는데 말이죠. ‘인수대비’가 제게는 연기자로서 인정받는 시작점이 됐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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