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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삶의 향기

부처님이 입멸하신 쿠시나가라에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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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신승철
큰사랑노인병원장

인도의 바이샬리에서 전용버스에 몸을 실어 부처님이 입멸하신 땅, 쿠시나가라에 이르렀다. 드넓은 들판 한가운데 쓸쓸하게 위치한 이곳 유적지는 단아하게 정돈된 느낌을 준다. 2500여 년 전 부처님은 여기 두 그루의 사라나무 사이에서 몸을 버리셨다고 한다. 왜 하필 이곳이었을까. 팔십 세의 나이에 쇠잔해진 육신을 이끌고 당시 아주 보잘것없던 이곳까지 와 열반에 드신 것이다. 여기는 부처님이 태자 시절 카필라 왕궁을 떠나 고단한 수행을 위해 가는 그 노정에 있던 곳이다. 아마 다시 고향을 향해 되돌아가는 여정에 있지 않았나 유추하기도 한다. 더 깊은 뜻도 있겠으나 나로선 더는 헤아리기 어렵다.

 이곳에 오니 먼저 두 채의 큰 건축물이 눈에 띄었다. 하나는 열반당. 부처님의 거대한 열반상을 안치해 놓은 곳이다. 높은 천장에 양쪽으로 둥근 창문을 열어놓은 흰색 건물이다. 그리고 그 옆. 마치 원자력발전소 모양의 육중한 원형 탑이 세워져 있다. 위대한 아쇼카 왕이 5세기께 세웠다고 전해지는데 여기엔 부처님의 사리를 모셨다고 한다.

 우리 일행은 먼저 열반당에 들어갔다. 안에 들어오니 서늘한 기운이 감돈다. 좀 어둑하다. 촛불들이 제단에 여럿 켜져 있다. 입구에서 남루한 행색의 노인네가 음침한 눈빛으로 우리를 연신 흘겨보고 있다. 일행을 맞아 시줏돈을 챙기려는 데만 마음이 급급한 힌두교인 같다. 불교 유적지 어디를 가도 이러한 현상이니 그가 치근대며 뭐라 해도 이젠 괘념치 않고 모두들 덤덤히 반응한다.

 열반당 한가운데 황색 가사를 입은 채 옆으로 누워 계신, 6m 남짓의 장대한 부처님이 목전에 온전히 드러나자 모두 엄숙하고 숭고해진 분위기에 젖는다. 누구의 지시도 없건만 일행은 나란히 줄을 지어 합장을 한 채 열반상 주위를 일곱 바퀴 돈다. 다음, 빙 둘러 앉아선 함께 반야심경을 암송한다. 나는 반야심경을 암송하지 못해, 침묵한 채 경건한 그 분위기에만 동참하고 있었다. 반야심경이야 젊어서부터 그 뜻을 이리 재보기도 하고, 저리 미루어 나름대로 풀이도 해봤지만 늘 알 듯 모를 듯 감감하기만 했다. 그러나 지금은 단지 이 분위기가 좋다.

 일행 중 서암은 반야심경을 다 암송한 뒤, 가슴에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주체할 수 없어서인지, 눈물을 계속 흘리는 것이다. 살펴보니 곁의 반야수, 반야심 보살도 눈가에 눈물이 촉촉이 배어 있다. 매우 아름다운 일이었다. 더러는 마음 깊은 데서 우러나오는 참회의 눈물이겠고 우러러 존귀한 부처님의 설법을 아직 다 깨치지 못한, 제 미욱함을 붙들며 이에 연민하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눈물이기도 할 것이다. 일행은 마치 부처님께서 바로 지금 여기에서 열반하신 양 감정이입이 돼서, 마음 슬픈 ‘제자’로 남아 있는 것이다. 부처님께선 열반 무렵 제자 아난다를 불러 세우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난다야, 한탄하거나 슬퍼하지 마라. … 내가 입멸한 뒤엔 내가 지금까지 말하고, 제정한 교법과 계율이 곧 너희들의 스승이다.” 또 더욱 정진하여 미혹을 떨쳐버리고 성자의 경지에 이를 것을 당부하였다. 삶을 소중한 배움과 깨달음의 자리로 삼으라는 말씀이다.

 침잠하는 가운데 여러 상념이 스쳐갔다. 어릴 적 한때 나는 불교가 우상 숭배 아닌가 하는 그런 착시 현상을 겪기도 했다. 부처님은 일체의 우상 숭배를 배격하셨다. 부처님은 우리에게 번뇌의 뿌리인 모든 관념을 버리도록 도우셨고, 이 비어있음에 집착함도 크게 나무라셨다. 『금강경』에 “무릇 모든 상(相)은 다 허망하니, 만약 모든 상이, 상이 아님을 본다면 여래를 보리라”라는 말씀이 있다. 상(相)은 말 그대로 모습을 말한다. 이 ‘나’라고 하는 몸과 마음도 사실은 허물이며 허공 속 꽃과 같은 존재일 뿐이란 뜻도 내포돼 있다.

 일행은 밖으로 나와 들판을 배회하는 소처럼 따사로운 햇볕 속을 거닐었다. 주인 잃은 가난한 눈빛의 개가 두어 마리 우리 곁을 어슬렁거린다. 끈덕지게 동냥을 구하는 아이들에게 몇 푼을 쥐여준 뒤 우리는 소리 없는 그림자처럼 이곳을 떠났다. 서쪽 하늘이 온통 법열처럼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그 장엄한 죽음을 뒤로하고 우리는 광막한 어둠 속으로 각자 뿔뿔이 흩어졌다.

신승철 큰사랑노인병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