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전사자 귀환 외면한 공영방송 KBS·MBC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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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주리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62년 만에 맞은 ‘고향의 봄’이었다. 진혼곡이 울려 퍼졌고, 국가원수급 예우로 조포 21발이 발사됐다. 차가운 북녘 땅에 묻혀 있다 이제야 돌아온 이들의 영정은 후배들의 가슴에 안겼다. 아무도 말하지 않았지만, 모두 말하고 있었다. 우리는 당신들을 잊지 않았노라고.

 25일, 북한에서 발굴된 국군 전사자 유해 12구가 고국의 품으로 돌아왔다. 북한 땅에 묻혀 있는 전사자의 유해를 모셔 오는 일은 종전 후 처음이었다. 최고의 예우로 맞아야 했다. 군 최고통수권자인 이명박 대통령이 직접 공항에 나가 귀환신고를 받았다. 그리고 거수경례를 했다.

 하지만 우리는 지상파 방송 어느 곳에서도 이 장면을 생중계로 볼 수 없었다. KBS와 MBC의 장기파업 여파 때문이다. 서울공항에 진혼곡이 숙연하게 깔렸던 오전 8시30분쯤 지상파 방송에서는 ‘아침마당’(KBS), ‘생방송 오늘 아침’(MBC), ‘내 인생의 단비’(SBS) 등 토크쇼·드라마가 방송됐다.

 트위터에는 공영방송인 KBS·MBC가 이 현장을 생중계하지 않은 것을 비판하는 글이 올라왔다. “적어도 공영방송사는 이런 역사적 순간을 중계해야 할 의무가 있다” “6·25 이후 북한 땅에 묻힌 국군 전사자로는 최초라는데…. 이게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영방송인가.” “귀환한 이들의 영혼이 이들(공영방송)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현재의) 행복은 공짜로 얻어진 게 아니다.” 그러나 두 방송국 노사 어느 쪽도 이에 대한 대답은 없었다. JTBC 등 종합편성 채널과 YTN이 당일 생중계를 했는데도 말이다.

 MBC 노조가 파업에 들어간 지 넉 달이 다 돼 간다. 노조는 김재철 사장이 부임한 이후 방송의 공정·공영성이 심각하게 훼손됐다며 김 사장의 퇴임과 공정방송 복귀를 주장했다. 김 사장의 법인카드 사용내역 등 각종 의혹이 제기됐다. 노사 갈등은 극한으로 치달았다. 사측의 노조원 해고와 고소가 잇따랐고, 노조는 김 사장을 배임 혐의 등으로 고소했다.

 3월 6일 공정방송을 주장하며 파업에 들어간 KBS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노사 모두 ‘공정’과 ‘공영’을 외치는 동안 시청자는 25일의 역사적 현장을 놓쳐야 했다. ‘무한도전’ 같은 예능 프로그램은 기존 방송분을 편집해 재방송할 수 있다. 하지만 62년 만의 ‘사건’을 보도하는 일은 다르다. 편집할 수 없고, 녹화방송은 의미가 떨어진다. 공영성이란, 이런 현장의 누적에서 나오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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