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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32명 학살에 국제사회 분노 … 시리아 사태 변곡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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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한 시리아 소녀가 26일(현지시간) 레바논 북부 도시 트리폴리에서 열린 시위에서 시리아 친정부 민병대에 의해 처참하게 살해된 시리아 어린이들의 시신 사진과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의 얼굴에 X표를 한 사진을 들어 보이고 있다. [트리폴리 로이터=뉴시스]

시리아의 친정부 용병들이 어린이 32명 등 하루 사이 90여 명을 학살하는 참사가 일어났다. 이에 직접적인 개입을 자제하며 유엔과 아랍연맹 뒤에서 시리아 사태를 지켜보던 세계 주요 국가들이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 축출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설지 주목된다.

 참사가 벌어진 곳은 반정부 시위의 거점인 시리아 중서부 도시 홈스에서 북서쪽으로 40㎞ 정도 떨어진 훌라 마을이다. 시리아에 파견된 유엔감시단의 로버트 무드 단장은 26일(현지시간) 현장방문 뒤 “기관총, 대포와 탱크 포탄이 발사된 흔적을 확인했다”고 말했다고 AP통신 등이 보도했다. 감시단은 사망자를 92명으로 파악했으며, 이 가운데 열 살도 안 된 어린이가 32명이었다고 밝혔다. 인권단체가 집계한 사망자 수는 109명이다.

 현지 활동가들은 25일 금요기도회를 마치고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열리자 친정부 민병대 ‘샤비하’가 훌라 마을에 박격포 공격을 퍼붓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훌라에 거주하는 활동가 아부 야잔은 AP통신에 “샤비하 대원들이 길거리에서 주민들을 쏜 뒤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여성과 어린이를 찾아내 흉기로 찔렀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들은 어린이를 노렸고, 일가족을 몰살하기도 했다”고 증언했다.

 AP통신은 학살 이틀 뒤인 27일(현지시간) 수도 다마스쿠스에서 정부 보안군 차량에 설치된 폭탄이 폭발하고, 중부 도시 하마와 다마스쿠스 교외에서 정부군과 시민군 사이에 교전이 벌어지는 등 시리아 곳곳에서 충돌이 이어졌다고 보도했다.

 국제사회는 알아사드 대통령에 대해 이제껏 한 것 가운데 가장 강도 높은 비판을 쏟아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이는 끔찍하고 잔학한 범죄로, 명백한 국제법 위반”이라고 강조했다. 아랍연맹(AL) 의장국을 맡고 있는 쿠웨이트는 “시리아 국민에 대한 억압을 끝낼 조치를 취하기 위해 곧 장관 회의를 소집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금까지 국제사회는 시리아가 이란의 지원을 받으며 이스라엘과 대치하고 있는 중동의 ‘세력 균형자’라는 점을 우려해 적극적인 개입을 망설여왔다. 특히 시아파와 수니파의 종파 분쟁 등까지 겹쳐 내전이 발생할 경우 영향이 중동권 전체로 확산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린이를 노린 이번 훌라 참변은 국제사회로서도 지켜보고만 있기 힘든 상황을 만들었다. 특히 재선 도전을 앞두고 있는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으로서는 인권과 소수자 보호라는 가치를 중시하는 지지층의 기대를 저버릴 수 없는 상황이다. 인권단체들과 시리아 반정부 세력은 “당신들의 침묵이 어린이 학살로 이어졌다”며 국제사회를 비난하기 시작했다.

 시리아의 우군 역할을 해왔던 러시아의 기류 변화도 주목된다. 3기 체제를 시작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역시 민주화와 보편적 가치를 추구하는 현대 국가를 향해 가자는 국민의 요구에 답을 내놔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뉴욕 타임스(NYT)는 “오바마 미 대통령이 최근 캠프 데이비드에서 열린 주요 8개국(G8) 정상회의에서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총리에게 예멘과 같이 정권을 이양하는 방식으로 알아사드 정권을 제거하자는 제안을 했고 메드베데프 총리가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보도했다.

유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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