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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지식] 갈등의 시대 원효의 해법, 화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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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 2556년 전 석가가 태어나며 외쳤다는 말입니다. ‘나 혼자 잘났다’가 아니라 ‘참된 나를 찾자’는 뜻입니다. 28일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불교 관련 책을 특집으로 꾸몄습니다. 조계종 승려 도박사건으로 어지러운 요즘, 나와 너의 한세상을 설파했던 부처의 깨우침을 되새겨봅니다. 특정 종교를 뛰어넘는 일상의 지혜를 찾아봅니다.

원효-
하나로 만나는 길을 열다
박태원 지음, 한길사
283쪽, 1만7000원

오늘 우리는 부처에게서 무엇을 배울 수 있는까. 숱한 반목과 갈등을 풀어가는 실마리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한국 불교의 태두 원효(元曉·617~686) 스님을 다룬 책을 주목한 이유다. 1400년 전 원효가 던져놓은 ‘화쟁(和諍)’이라는 질문으로 돌아갔다. 박태원 울산대 교수가 펴낸 신간 『원효-하나로 만나는 길을 열다』. 불교의 기본 원리를 원효 사상을 중심으로 해설하면서, 왜 원효가 한국 불교사에 우뚝 솟은 산맥인지를 부각시키고 있다.

 팔만대장경 속 부처님 가르침의 핵심은 대개 ‘무아(無我)’, 혹은 ‘무자성(無自性)’으로 요약된다. 인간을 포함한 세상 만물은 홀로 서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것과의 관계 속에 존재함을 깨닫는 것이 불교적 사고의 핵심인데, 이를 무아·무자성 등으로 표현한 것이다. 무아의 사유방식을 ‘관계적 사고’라고 한다면, 홀로 존재할 수 있다는 생각은 ‘실체적 사고’로 불린다.

 저자에 따르면 원효는 무아의 사유, 관계적 사고를 가장 정연하게 밝혀놓은 한국 불교 최고의 사상가이자 실천가였다. 단수가 높은 고수는 자기가 좋아하는 용어를 사용한다. 불교의 고수들이 펼치는 ‘무아의 변주곡’ 위에 원효는 당당히 자신의 표현을 올려놓았다. 그가 즐겨 쓴 말은 ‘일심(一心)’ ‘불이(不二)’ ‘화쟁’ 등이다.

일본 교토(京都)의 고잔지(高山寺)에 소장된 원효대사 진영(眞影). 15세기에 그려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잔지는 일본 가마쿠라 시대에 화엄종을 재건한 묘에(明惠·1173~1232) 스님이 창건한 사찰이다. 묘에 스님은 원효대사를 흠모해 원효의 저술을 강의했다고 한다. [중앙포토]

  ‘화쟁’은 무엇인가. ‘하나가 된 마음’을 뜻하는 ‘일심’과 ‘둘로 갈라지지 않음’을 가리키는 ‘불이’는 다른 선사들도 사용하는 표현이지만 ‘화쟁’은 좀 다르다. 원효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그 점은 고려시대 대각국사 의천(1055~1101)이 원효를 평가하며 “백가(百家)의 이쟁(異諍)의 실마리를 화해시켰다”고 한 바 있고, 또 원효에게 ‘화쟁국사’라는 시호가 추증되었을 뿐 아니라 경주 분황사에 화쟁국사비가 건립된 데서도 확인할 수 있다.

 원효는 화쟁을 통해 무엇을 말하려 했을까. 저자는 『대승기신론소』 『금강삼매경론』 『십문화쟁론』 등 한문으로 된 원효의 저술을 가능한 한글로 풀어 설명하고 있다. 화쟁은 ‘배타적 견해 다툼의 화해’로 풀이된다. 다른 이들과의 의견 차이를 배타적인 차별과 대결로 연결시키지 않고 화해로 돌려놓는 지혜가 곧 화쟁인 것이다.

 저자는 불교를 잘 모르는 이들이 원효의 화쟁 사상에서 만능 열쇠 같은 것을 찾으려는 경향이 있다고 경계한다. 원효가 제시한 화쟁의 방법을 굳이 찾는다면 “각 주장의 부분적 타당성을 변별하여 수용하라”는 식으로 정리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역시 세상 만물을 절대적 선과 악으로 파악하지 않고 관계적으로 사고하는 불교 기본의 무아·일심 사상을 벗어나지 않으며, 결국 화쟁이나 일심·무아 사상 모두 마음의 문제로 귀결되는 것이다.

 원효의 화쟁 사상은 불교 교리 논쟁에서 출발했으나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당대의 사회 문제를 푸는 시대정신과 연관된 것이며, 그 점은 오늘 다시 원효가 읽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원효는 골품제도와 전쟁의 시대를 살았다. 6두품 출신의 원효는 신분제의 폐해를 체험했고, 삼국간 전쟁이 계속되던 통일의 과도기를 산 인물이다. 원효의 화쟁·일심 사상은 그 같은 시대의 부조리를 풀며 삼국 통일을 예비한 철학적 해법이기도 하였던 것이다.

 요즘 한국사회에서 유행하는 ‘통섭(統攝)’이란 용어의 사상적 출처가 원효의 ‘통섭(通攝)’이란 점을 기억할 만 하다. 다만 수직적 의미의 ‘거느릴 통(統)’ 대신에 원효는 수평적 의미의 ‘통할 통(通)’자를 썼다는 점을 유념해서 보아야 한다.

 저자는 원효의 통섭(通攝)을 “서로를 향해 열려 서로를 받아들임”으로 풀이한다. 화쟁과 일심·통섭은 모두 무아의 원효적 버전이었던 것이며, 저자는 이를 ‘하나로 만나는 길을 열다’는 부제로 표현하고 있다. 사회를 통합해야 할 종교마저 각기 이익에 따라 갈라진 지금, 이보다 더 날카로운 죽비소리가 있을까.

 ◆불교 관련 책 잇따라=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불교 신간이 다수 나왔다. 선불교 고전 『임제록』을 조계종 5대 종정을 지낸 서옹(1912~2003) 스님이 해설한 『임제록 연의』(아침단청), 초기 불교 시대의 ‘위빠사나 수행법’을 소개한 『나라고 불리어지는 것에 대한 알아차림』(도현스님 지음, 웅진뜰), 티베트 불교 안내서인 『티베트 스님의 노 프라블럼』(아남 툽텐 린포체 지음, 임희근 옮김, 문학의숲) 등은 주로 수행 쪽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윤회』(지나 서미나라 지음, 강태헌 옮김, 파피에), 『붓다 테라피』(토머스 비엔 지음, 송명희 옮김, 지와사랑), 『부처를 만나 부처처럼 살다』(차장섭 지음, 역사공간) 등은 일상과 깨달음의 관계를 주목한다.

불교를 더 알고 싶다면…
5인이 강추한 다섯 권

이도흠(한양대 교수)
왕초보 불교교리 박사 되다
고명석 지음, 민족사, 320쪽, 9500원

쉬우면서 깊이가 있다. 부처님의 생애부터 연기법과 사성제(四聖諦), 공·화엄 등의 교리, 계율과 불교의 역사에 이르기까지 불교 전반을 총망라해 다루는 넓이를 지녔다. 그럼에도 핵심을 놓치지 않았다. 교리를 논리적으로 이해시키는 데 그치지 않고 마음속에서 감응이 일도록 맛깔스럽게 풀어냈다. 다 읽고 나면 이해만이 아니라 신심도 절로 솟는다.

정목 스님(불교방송 진행자)
선방일기
지허 스님 지음, 불광출판사, 120쪽, 9800원

쉽게 들여다 볼 수 없는 출가 수행자의 일상을 때로는 담백하게 때로는 치열하게 묘사하고 있다. 한문체 문장이지만 읽는 데 큰 방해가 안 될 만큼 내용이 깊이 있고 문체 또한 수려하다. 마지막 책장을 덮는 순간 누구나 내면에 숨어 있던 깊은 성소를 만나게 될 것이다. 지은이 지허 스님의 행적은 전해지지 않는다.

한강(소설가)
무문관 혹은 “너는 누구냐”
한형조 지음, 여시아문, 334쪽, 8000원

조금 큰 외투 주머니에는 들어갈 만큼 작고 얇은 문고본이지만, 명료하고 박진감 있는 문장으로 써 내려간 단단한 책이다. ‘봄이 오면 꽃이 피고 새가 운다’는 사실의 기적을 역설하던 대목을 잊지 못한다. 출판사에서는 ‘한글 세대를 위한 선불교 해설서’라는 소개글을 붙여 놓았다.

혜민 스님(미국 햄프셔 대학 종교학과 교수)
붓다의 가르침과 팔정도
월폴라 라훌라 지음, 전재성 번역, 한국빠알리성전협회,
232쪽, 1만원

미국 대학의 종교학 개론 시간에 소개하는 책이다. 학생들에게 가장 많이 읽히는 교과서 같은 책이다. 부처님 가르침의 뿌리가 되는 사성제를 심도 있게 다루지만 그리 어렵지 않다. 불교 신자 생활을 오랫동안 했지만 부처님의 가르침이 정확히 정리되지 않았거나, 불교도가 아니지만 부처님의 가르침에 관심이 있는 분들에게 추천한다.

흥선 스님(불교중앙박물관 관장)
깨달음과 역사
현응 스님 지음, 불광출판사, 336쪽, 1만3800원

20세기 불교계의 가장 중요한 저작물 중 하나다. 현대 한국 불교가 당면한 핵심적인 문제를 논의하고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에서 깨달음과 역사(현실)가 분리된 것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삶의 현장을 떠난 깨달음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심각한 문제를 논의함에도 형식상으로 사제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을 빌어서 읽기도 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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