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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이서 본 김정일… 파격·기습 깜짝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북한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의 상하이(上海)방문은 시종 파격과 '기습' 의 연속이었다.

파격은 金위원장이 17일 오전 9시30분쯤 푸둥(浦東)지구 동쪽에 위치한 증권거래소를 방문할 때부터 시작됐다.

그가 불시에 이곳에 들이닥쳤기 때문이다. 물론 중국측 공안과 정보기관은 사전에 주변을 철저히 체크했지만 근무자들은 그저 당(黨)의 높은 사람이 찾을 줄 알았다고 한다.

金위원장은 이곳에서 한시간 가량 머물면서 증권시장이 어떻게 움직이는가를 유심히 관찰했다.

그는 이곳 관계자에게 "시세가 어떻게 결정되느냐" "하루 거래량은 얼마냐" "요즘은 어떤 종목이 인기 있느냐" 며 끊임없이 질문했다.

18일 오전 金위원장은 또 한번의 깜짝쇼를 연출했다.

오전 중 선전이나 쑤저우로 향할 것이라는 당초 예상을 깨고 10시쯤 다시 증권거래소에 나타난 것이다.

한 관계자는 "정말 놀랐다. 하루 전에 방문한 외국 귀빈이 다시 이곳을 찾아 이렇게 관심을 표명한 것은 증권거래소 사상 처음일 것" 이라고 말했다.

이날 金위원장은 전날에 이어 증권 시세판이 수시로 변하는 것을 유심히 살펴본 뒤 "상당히 복잡하구만" 이라며 감탄 섞인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17일 NEC와 GM을 방문했을 때도 金위원장의 열의는 생생하게 드러났다. 주룽지(朱鎔基)총리와 함께 NEC를 찾은 그는 방진복으로 갈아입었다. 朱총리도 물론 방진복으로 갈아입었다.

그러다 金위원장은 모자까지 착용해야 한다는 말에 "이렇게까지 조심해야 하느냐" 며 다소 짜증섞인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NEC 화훙(華虹)그룹 경영진으로부터 반도체 칩 가공이 얼마나 민감한지를 설명듣고 나서는 고개를 끄덕였다고 한다.

중국측은 이런 金위원장의 학습 열의에 감탄하고 그가 학습에 방해받지 않도록 매우 조심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가 취재진에 노출되더라도 적극적으로 보호막을 쳤다.

17일 오후 7시20분 상하이 대극원(大劇院)앞'에서의 일이다'. 혼잡하던 길이 돌연 텅 비고 1분 정도 침묵이 흘렀다.

극장 주변을 에워싸고 있던 공안들도, 金위원장을 기다리던 취재진도 텅빈 길을 뚫어지게 쏘아봤다.

7시21분 경호팀을 태운 승합차와 검은 세단 10여대를 앞세운 링컨 캐딜락 2대가 갑자기 어둠 속에서 나타났다. 일제히 카메라 플래시가 터졌다. 그러나 캐딜락 2대 안은 텅 비어 있었다. '허수아비 차량' 이었다.

그리고 정확히 2분 후인 7시23분, 金위원장을 태운 캐딜락과 약 30여대의 검은색 세단 행렬이 물밀듯이 극장 앞 광장으로 달려왔다.

마침내 金위원장이 차에서 내렸다. 먼 거리지만 金위원장 특유의 고수머리를 분명히 확인할 수 있었다. 중국으로 달려온 金위원장이 기자의 육안에 처음으로 잡힌 순간이었다.

金위원장은 50여명의 중국측 일행들에 둘러싸인 채 20여개의 계단을 걸어 올라갔다.

푸른색 원피스 차림의 안내원 14명이 7명씩 정문 양쪽에 줄지어 서서 90도 각도의 절로 金위원장을 맞았다.

朱총리가 동행할 것으로 예상됐지만 취재진 위치가 너무 떨어진 탓에 주변 인물은 확인할 수 없었다.

다시 그가 나오기를 기다리며 광장에서 버틴 지 1시간2분 만인 8시25분, 金위원장이 극장 정문에 모습을 드러냈다.

짙은 색깔의 테를 두른 안경을 끼고 평소 즐겨 입는 인민복 차림 그대로였다. 남북 정상회담 때보다 약간 몸무게가 늘어난 듯한 모습이었다.

金위원장의 첫 모습은 미소였다. 파안대소를 간간이 터뜨리며 계단을 걸어 내려왔다. 중국측 관계자들과 악수를 나누는가 하면 어깨를 두드리는 호기로운 모습도 보였다. 멀리 떨어진 인사들에게는 가볍게 오른손을 올려 답례를 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金위원장의 도착 순간 그를 목격했던 취재진은 단 3명에 불과했다. 추운 날씨를 피해 대다수의 취재진이 잠시 몸을 녹이러 간 사이에 불쑥 나타났기 때문이다. 멀리서나마 카메라를 들이대려는 기자에게 공안들은 몸을 들이댔다.

카메라를 높이 쳐들면 발돋움을 하면서까지 촬영을 방해했다. 사전에 철저하게 교육을 받은 흔적이 역력했다.

金위원장은 캐딜락 승용차 앞에 서서 약 10초간에 걸쳐 중국측 인사들과 악수를 나눴다.

역시 환한 표정으로 웃으며 덕담을 주고받는 모습도 보였다. 金위원장을 태운 차량은 순식간에 빠져나갔다. 상하이 대극원은 다시 평상시의 모습을 되찾았다. 金위원장이 다녀간 자취는 어디에도 없었다.

18일 오전 11시, 푸둥 지역 내 둥팡밍주(東方明珠)건물 내 전망대를 찾은 金위원장은 상하이의 웅장한 모습에 다소 압도된 듯 심각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金위원장은 금세 특유의 쾌활함을 되찾고 수행자들과 농담을 주고받는 여유를 보이기도 했다.

상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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