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전국 여고 SKY대 진학률 1위 … 비결은 ‘수능형 내신 시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10면

“숙명여고의 높은 진학률은 이 시험지에서 시작됩니다.” 숙명여고 1학년 학생들이 지난달 치른 중간고사 국어과목 시험지를 보여주고 있다.

숙명여고는 2012학년도 대학입시에서 서울대에 20명을 합격시켰다. 고려대·연세대를 포함한 SKY대 합격자 수는 80명이다. SKY대 진학률만 보면 강남지역은 물론 전국 여고 중에서 1위다. 자율형사립고도 아닌 일반고가 이처럼 좋은 진학실적을 올릴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학교 측은 수능형 내신시험과 사례중심 수업으로 ‘기본에 충실한 교육’을 꾸준히 실시한 결과라고 밝혔다.

“지금도 그때만 생각하면 등에서 식은땀이 나요. 당황 그 자체였습니다.” 1학년 김성주양이 고교 입학 후 지난달 처음 치른 중간고사를 떠올리며 말했다.

시험 첫날인 지난달 19일 영어시험 시간. 문제지를 받은 김양은 그때의 느낌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문제지가 A3용지 7쪽이었다. 중학교 때 내신시험 문제지는 2쪽을 넘지 않았다. 숙명여고 영어시험 문제지가 많은 이유는 지문이 길기 때문이다. 수능 외국어영역 문제지처럼 장문이 많다. 따라서 교과서 본문만 달달 외워서는 문제를 풀기가 어렵다. “‘숙명여고 시험문제가 어렵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그 정도일 줄은 몰랐습니다.” ‘제대로 알고 푼 문제가 얼마 없다’는 생각에 좌절감이 들었다. 그러나 ‘이런 시험에 3년간 익숙해지면 나도 모르게 실력이 늘겠지’하는 자신감도 생겼다. 중간고사를 끝낸 그는 요즘 안일했던 수업태도를 고쳐나가고 있다. 수업시간에 교사의 설명을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고 집중한다. 교사가 하는 모든 말을 공책에 적고 궁금한 게 있으면 바로 교무실을 찾아간다.

교사 5명이 20개씩 출제해 문제 엄선

어려운(?) 내신시험 문제는 숙명여고가 자랑하는 ‘기본에 충실한 교육’ 중 하나다. 배은선 2학년 부장은 “내신과 수능은 별개의 시험이 아니다”며 “숙명여고에서 3년 동안 공부한 학생들은 내신 준비과정부터 수능에 자주 출제되는 사고력 문제에 익숙해지기 때문에 실제 수능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두는 것”이라고 말했다.

변별력 있는 시험문제는 교사들의 땀과 열정이 일궈낸 결과물이다. 국어·영어·수학교과의 경우 한 학년에 보통 교사 5명이 수업을 진행한다. 이들은 내신시험 1개월 전 각자 20개 정도의 문제를 만들어 한자리에 모인다. 모두 합하면 100문제다. 5년치 기출문제를 공유한 뒤 겹치는 문제가 없는지를 확인하고 이후 한 달간 10차례 넘게 만나면서 좋은 문제를 가려낸다. 교사 5명이 만장일치로 “좋다”고 해야 출제가 가능하다. 배 부장은 “시험 때마다 다른 문제를 낸다는 게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며 “그 과정에서 사고력을 요구하고 함정이 있는 문제가 개발된다”고 말했다.

고난도 시험문제는 실제 수능에서 효과를 발휘했다. 손희준(19·아주대 의예과 1학년)씨는 “내신 수학시험을 통해 평소 수능 수리영역 고난도 문제에 대비하는 훈련을 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내신시험 문제가 주로 수리영역 4점 배점의 문제로 구성됐기 때문이다. 시험시간은 수능의 절반 정도인 50~60분이었다. 개념을 충실히 이해·암기하고 문제풀이에 응용하는 능력을 기르는 것은 물론 그 과정에서 자연스레 시간관리 훈련까지 가능했다. 마침내 그는 지난해 수능 수리영역에서 1등급을 받아 의대 합격의 꿈을 이뤘다.

사례중심 수업으로 집중도·이해력 높여

1학년 이연재양은 초등학교 3학년부터 중학교 2학년 때까지 6년 동안 미국에서 학교를 다녔다. 미국 학교에선 학생들이 어렵게 느낄 수 있는 교과개념이 있으면 예를 들어 설명하고 토론·토의수업을 통해 학습효율을 높였다. 이런 방식은 혼자 교과서를 암기하는 것보다 이해하기 쉬웠고 재미도 있었다. 하지만 한국에 돌아오니 수업시간이 지루했다. 교사들은 교과서에 나와 있는 내용을 설명할 뿐 그와 관련된 예를 들거나 학생들과의 토론학습은 하지 않았다.

‘다시 미국 학교로 돌아가야 하나’ 고민하다 결국 숙명여고에 입학한 이양은 깜짝 놀랐다. ‘정치와 법’ 수업시간이었다. 즉결심판에 관한 내용을 배우는데 ‘흉기 소지 이스라엘 대사관 난입 20대의 즉결심판’이라는 신문기사를 활용했다. 이양은 “실제 일어났던 일을 토대로 개념설명을 들으니 이해가 훨씬 빨랐다”고 말했다.

숙명여고의 사례중심 수업은 학생들의 수업 집중도를 높이는데 큰 역할을 한다. 수업시간에 조는 학생이 반에서 1~2명에 불과할 정도다. 학생 대부분은 교사의 말을 한 자라도 더 받아 적으려고 애쓴다. 교사가 던지는 가벼운 농담도 교과개념과 관련된 내용일 뿐 아니라 실제 내신시험에도 출제되기 때문이다. 차세일 교감은 “교사들은 50분 수업을 위해 적어도 5시간을 준비하고, 과목별 교사들끼리 모여 스터디를 하면서 어떻게 하면 좀 더 쉽고 재미있게 가르칠지를 항상 고민한다”고 말했다.

이 학교 교사들의 평균연령은 42세. 10년 근속이 넘은 교사가 전체 교사 73명 중 54명에 달하는 것도 수업 질 향상에 한몫 한다. 차 교감은 “교직생활을 시작한 지 10~20년 되는 시기가 교사로서의 경험과 열정을 함께 갖추고 있을 때”라며 “노(老)교사와 젊은 교사가 섞여 있으면서 연륜과 패기를 서로 배우며 함께 성장한다”고 강조했다.

교사들의 열정은 학생들의 대한 사랑으로 이어졌다. 러시아에서 7년을 살다 온 뒤 숙명여고로 전학한 김규리(19·서울대 건축학과 1년)씨는 고1 때 본 6월 모의고사에서 언어와 외국어 3등급, 수리 5등급을 받았다. “공부는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할지 모르겠다”며 울먹이던 그에게 언어·수리·외국어 교사들은 “우리가 도와주겠다”고 손을 내밀었다. “모르는 게 있으면 언제든지 교무실을 찾아오라”고 했고,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김씨를 교무실로 불러 자세히 알려줬다. 그는 하루 평균 5~6차례는 교무실을 찾았다. 교사들은 한 가지 개념이라도 김씨가 쉽게 이해할 때까지 다양한 방법으로 원리를 설명했다. “선생님들의 헌신이 아니었다면 서울대는 꿈도 못 꿨을 거예요. 숙명여고 선생님들은 제 인생의 은인입니다.”

글=전민희 기자
사진=장진영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