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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상처만 남기고 끝내기 들어간 아프간 전쟁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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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아프가니스탄 전쟁의 끝이 보이고 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등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회원국 정상들은 2014년까지 아프간에서 전투병력을 완전 철수하고, 2014년 중반까지 치안권 이양 절차를 완료키로 합의했다. 전투병력 철수 이후에도 소규모 지원병력은 남겨 아프간군 훈련을 돕기로 했다. 2001년 9·11 테러 이후 11년째 계속되고 있는 아프간 전쟁이 끝내기 수순에 들어간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그제 시카고에서 열린 나토 정상회의 폐막 기자회견에서 “아프간 전쟁을 책임 있게 끝내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책임 있는 종전’과는 거리가 멀다. 아프간의 현실을 고려하면 사실상의 포기에 가깝다. 미군 9만 명 등 총 13만 명에 달하는 나토 연합군 철수 이후 아프간 정세는 예측불허다. 하미드 카르자이 대통령이 이끄는 부패한 아프간 정부는 극도로 취약하고 불안정하다. 미군이 무너뜨린 탈레반 정권이 9·11 테러를 자행한 테러 조직 알카에다와 손잡고 정권 재탈환을 시도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카르자이 정부의 공권력은 아프간 일부 지역에 국한돼 있다. 남부와 파키스탄 접경 지역에서는 탈레반이 여전히 세력을 떨치고 있다.

 그럼에도 오바마 행정부가 철군을 서두르고 있는 이유는 승산 없는 전쟁을 지속하기에는 미국의 재정 상태가 너무나 안 좋기 때문이다. 미국은 아프간 파병 비용으로 연간 900억 달러를 쓰고 있다. ‘테러와의 전쟁’으로 포장된 이라크 전쟁과 아프간 전쟁에 지금까지 미국이 쏟아 부은 돈만 약 1조 달러다. 심각한 재정위기를 겪고 있는 유럽국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9·11 테러의 충격을 감안하면 미국의 아프간 침공에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아프간의 역사적, 지정학적, 정치적, 문화적 특수성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검토 없이 성급히 전쟁을 일으킨 책임과 대가는 고스란히 미국의 몫으로 남는다. 19세기 영국과 20세기 소련도 아프간에서 상처만 입고 철수했다. 미군의 어정쩡한 철군은 ‘제국의 무덤’이라는 꼬리표 하나를 아프간에 추가할 것이다. 아프간 전쟁은 미국의 한계를 보여주는 ‘미완의 전쟁’으로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