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적 거세', 단순히 못하게 하는게 아니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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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 처음으로 ‘화학적 거세(Chemical Castration)’ 대상자가 나왔다. 지난해 7월 ‘성폭력 범죄자의 성충동 약물치료에 관한 법률’이 시행된 지 1년 만이다.

 
법무부는 지난 21일 치료감호심의위원회(위원장 길태기 법무부 차관)를 열어 아동성폭력범인 박모(45)씨에 대해 만장일치로 성충동 약물치료명령을 내렸다. 현재 경북북부3교도소에 수감돼 보호감호 중인 박씨는 23일 공주치료감호소에서 첫 약물 치료를 받게 된다. 오는 8월 가출소 후엔 집에서 생활하면서 3개월마다 한 번씩 보호감호 기간(3년)동안 약물을 주사받는다. 현행법상 화학적 거세는 16세 미만 아동을 상대로 성범죄를 저질러 징역형이나 치료감호, 보호감호를 선고받은 19세 이상의 성도착증 범죄인으로, 재범의 위험이 있는 경우에 한해 적용된다. 단순히 발기를 못하게 만드는 게 아니라 남성호르몬(테스토스테론)의 메커니즘을 조절해 성욕 자체를 억제시키는 치료법이다. 물리적 거세와 달리 호르몬 조절을 통해 일정 시간 동안의 성충동을 억제시킨다. 성범죄자를 범법자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환자로 보고 치료까지 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심리 치료와 인지 치료 등 정신과 치료를 병행한다. 현재 미국과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 시행 중이다. 법무부에 따르면 박씨는 1984년부터 2002년 사이 서울·인천 등지에서 모두 네 차례에 걸쳐 13세 미만 여아 4명을 성폭행하거나 강제추행했다. 그는 출소하고 나온 지 2~3개월마다 다시 아동 성범죄를 저질렀고 20년가량을 복역했다. 정신감정 결과 성도착증(소아성기호증) 환자로 판명돼 화학적 거세 대상자로 결정됐다.

 박씨에게 투여되는 약물은 성선자극호르몬(황체호르몬) 길항제인 ‘루크린(leuprolide)’이다. 루크린을 주사로 인체에 투여하게 되면 약물이 뇌하수체에 작용해 성선자극호르몬을 분비하게 되고 해당 호르몬이 고환의 테스토스테론 분비를 억제시켜 성충동을 억제하게 된다.

 법무부는 “박씨는 3개월마다 지정 치료감호소에서 루크린을 투여받게 되고 6개월마다 호르몬 정기검사를 받는다”고 밝혔다. 만일 박씨가 화학적 거세 효과를 상쇄하는 약물을 복용할 경우 7년 이하의 징역이나 2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게 된다. 박씨는 보호관찰관의 집중관찰 속에 전자발찌도 부착하게 된다. 첫 화학적 거세 시행에 대한 우려도 만만치 않다. 의학계에서는 심폐질환이나 골다공증·근위축증 등의 부작용을 낳을 위험이 있다고 경고한다. 이에 대해 법무부 김형렬 보호법제과장은 “ 루크린은 전립선 암 치료제로 쓰이는 약물이라 부작용 우려는 거의 없다”고 밝혔다.

정원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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