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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 변형 작물, 농가선 "재배"·정부선 "없다"

중앙일보

입력

"국내에서 재배하고 있는 농산물에는 유전자를 변형시킨 품종이 전혀 섞여 있지 않다."

한갑수(韓甲洙) 농림부장관이 지난해 10월 국회 국정감사에서 한 말이다.

그러나 고려대 박원목 교수팀의 검사를 통해 우리 밭에도 유전자 변형 콩이 섞여 있는 것으로 밝혀져 韓장관은 이 발언을 취소해야 할 판이다.

더욱이 그동안 벼.보리.콩.옥수수.감자 등 5대 식량작물의 종자는 정부가 개발과 보급을 독점해 왔기 때문에 국내에서 재배 중인 콩 가운데 유전자 변형이 있다는 사실은 정부의 종자 관리에 구멍이 뚫렸음을 보여준다.

◇ 원시적인 종자 관리〓5대 작물의 종자를 만드는 곳은 농촌진흥청 산하 작물시험장이다. 세계 각국과 국내에서 모은 1만5천여종의 종자를 이리저리 조합해 우수 종자를 만든다.

그러나 정작 외국에서 들여온 종자에 유전자 변형이 포함돼 있는지를 검사할 장비가 없다.
이 때문에 검사는 원시적이다.

작물시험장 관계자는 "유전자 변형 식물은 제초제를 뿌려도 죽지 않도록 만든 것이기 때문에 제초제를 뿌려봐서 죽지 않는 개체는 폐기하는 방법으로 유전자 변형 여부를 가려낸다" 고 설명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제초제의 농도에 따라 제초제를 뿌렸을 경우 죽는 유전자 변형 개체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따라서 최소한 종자를 만드는 작물시험장에는 유전자 변형을 가려낼 장비와 인력이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현재 정부에서는 국립 농산물품질관리원이 검사장비와 인력을 확보하고 있지만 이곳은 오는 3월 유전자 변형 농산물 표시제도 시행 후 불법유통을 단속하기 위한 업무만으로도 포화상태다.

◇ 농민들의 인식 부족〓현재 정부가 보급하고 있는 콩.옥수수 종자는 전체 수요량의 25% 안팎이다. 나머지는 농민들이 자급하거나 이웃에서 빌려 쓴다. 이 과정에서 불법 수입된 외국산 종자가 섞일 가능성이 있다.

경기도 농업기술센터 관계자는 "일부 농민들이 외국에서 불법 수입된 종자를 작황이 좋다는 말만 믿고 사다 심는 경우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며 "이럴 경우 탈곡하는 과정에서 국산과 섞일 수밖에 없다" 고 설명했다.

朴교수팀이 콩잎을 채취한 충남의 한 농가는 "정부 보급종을 주로 쓰지만 종자가 모자라거나 작황이 좋다는 소문이 나면 종자를 빌려다 심는다" 며 "빌려온 종자가 어디서 난 것인지는 잘 모른다" 고 말했다.

◇ 불법 종자 유통〓5대 작물의 종자 판매는 법으로 금지돼 있다. 그러나 서울 종로5가 종묘상에 가면 어렵지 않게 콩.옥수수 종자를 살 수 있다.

A종묘상 관계자는 "콩이나 옥수수 종자는 못팔게 돼 있지만 종로에서 못구하는 게 어디 있느냐" 며 "수입산도 있고 국산도 있다" 고 말했다.

소비자 문제를 연구하는 시민의 모임이 지난해 12월 종로5가 종묘상 네 곳에서 종자용 콩 일곱 종과 옥수수 세 종을 구입해 한국유전자검사센터에 검사를 맡긴 결과 콩 두 종류에서 유전자 변형이 발견된 바 있다.

이 모임의 박해경 기획실장은 "종자용을 달라고 해 구입한 콩에서 유전자 변형이 나왔다" 며 "두 종류 중 하나는 수입산이었지만 다른 하나는 국산이었다" 고 말했다.

이에 대해 농림부 농산과 관계자는 "종묘상에 확인해 보니 식용 콩을 판 것으로 확인됐다" 며 "종로5가 종묘상들을 대상으로 불법 종자 판매를 단속하고 있다" 고 해명했다.

그러나 취재팀은 지난 11일에도 종로5가에서 콩 종자를 구할 수 있었다.

◇ 전국적인 조사 시급〓오는 3월부터 모든 농산물에 유전자 변형 여부를 표시하도록 의무화된다.

그러나 그동안 국산 농작물에는 유전자 변형 품종이 섞여 있지 않다는 게 정부의 입장이었기 때문에 국내 재배 중인 농작물은 유전자 변형 여부를 단 한 번도 조사하지 않았다.

하지만 朴교수팀의 조사 결과 경기도와 충남 양쪽에서 유전자 변형 콩이 발견된 만큼 전국적인 조사가 시급하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朴교수는 "콩 이외의 작물도 전국적으로 재배 현장인 밭에서 시료를 채취해 유전자 변형 여부를 지속적으로 감시해야 한다" 며 "판매 단계의 단속보다 생산 단계에서 유전자 변형과 정상 작물이 가려져야 한다" 고 지적했다.

특히 옥수수는 꽃가루를 통해 교배되기 때문에 유전자 변형 옥수수가 재배되고 있을 경우 유전자 변형 형질이 인근 옥수수 밭 전체로 확산할 수 있어 생산단계에서 철저한 감시가 뒤따라야 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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