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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긴 적자 1000억, 이자 연 100억… 실무자 2명 징계로 끝낼 일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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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일규 대표는 “감사원에 적발된 천안시의 분식회계는 지방자치단체의 근간을 흔든 중요한 범죄 행위이자 행정적 조작으로 검찰이 이를 철저히 밝혀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말했다

천안 지역 9개 시민단체들이 14일 감사원의 천안시 분식회계 지적과 관련해 성무용 천안시장을 포함한 예산 관련 전·현직 공무원 10명(직권남용과 허위공문서작성 및 행사,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 혐의 등)을 검찰에 고발했다.<2012년 1월 20일 L2면 게재> 사건을 배당 받은 대전지검 천안지청 형사1부(부장검사 이완식)는 수사에 나섰다. 검찰은 조만간 고발인 조사와 함께 예산 관련 전·현직 공무원에 대한 소환 여부를 검토할 방침이다. 시민단체들은 고발장을 통해 “2006년부터 잘못된 재정정보를 의회에 제공해 의회의 예산 심의 및 결산 심사권을 방해했고 그 결과 막대한 재정적자를 발생시켰다”며 철저한 수사를 촉구했다. 천안아산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윤일규 공동대표를 만나 고발 취지와 문제점, 개선 방안에 대해 들어봤다.

-천안시 분식회계를 쉽게 설명해 달라.

“분식회계란 기업이 재정 상태나 경영 실적을 실제보다 좋게 보이게 할 목적으로 부당한 방법으로 자산이나 이익을 부풀려 계산하는 회계를 말한다. 천안시가 분식회계를 했다는 것은 회계를 정리하는 재무제표 수치를 인위적으로 조작했다는 말이다. 천안시가 예산을 편성·집행하는 과정에서 수치를 시민에게 정직하게 알리지 않고 자기들이 의도하는 목적을 위해 조작했다는 말과 같다.”

-무엇이 가장 문제인가.

“지방자치의 근간을 무너뜨린 점이 가장 큰 문제다. 시의 행정적 행위가 시민을 위해서 예산을 편성하고 집행하는 지방자치제도의 원래 목적에 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수년간 이런 일이 벌어졌는데도 의회 역시 아무런 기능도 하지 못한 것도 심각한 문제다. 시 행정의 견제와 균형, 감독이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시민을 위해서가 아닌 관료들에 의해 모든 것을 임의로 예산을 조작한 것은 지방자치제도가 아니다.”

-천안시의 분식회계가 어떻게 이뤄졌나.

“감사원은 지난 1월 천안시가 자금이 없는 상태에서 2006년 90억원, 2007년 259억원, 2008년 330억원, 2009년 290억원을 다음 회계연도로 이월한 사실을 밝혀내고 이를 분식회계로 판단, 시정을 지시했다. 감사원 발표에 따르면 천안시는 2007~2011년 세입예산을 편성하는 과정에서 공유재산 매각수입 470억원을 과다 책정하고 2008~2011년 세출예산을 편성할 때 국고보조금에 대한 지방비 배정액 655억원을 실제보다 줄이는 방법으로 가용재원을 부풀렸다. 방만한 예산 운용으로 5년(2006~2010년) 동안 1073억원의 누적 적자를 발생시켰고 이를 감추기 위해 매년 가공의 이월금을 계상하는 방식으로 결산을 분식해 14억원의 흑자가 난 것처럼 꾸몄다. 하지만 시의회에는 지방재정이 건전한 것처럼 결산서를 작성해 제출했다. 특정 목적에만 집행하도록 돼 있는 도시개발특별회계 예산 등을 부당하게 일반회계로 전출시켜 결손액을 채운 사실도 드러났다.”

-분식회계로 인한 피해가 있나.

“감사원은 ‘복합테마파크 조성사업’과 ‘대한민국 전통·민속주 전시 체험관’ 사업을 예산 낭비의 주원인으로 꼽았다. 감사원에 따르면 복합테마파크 조성사업(4280억원)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도시개발특별회계 예산을 사용할 수 없음에도 임의로 359억원을 토지매입비로 편성했고 이 중 355억원을 집행했다. 또 대한민국 전통·민속주 전시 체험관 건립사업을 추진하면서 세밀한 검토 없이 사업부지를 3차례나 변경하면서 불필요한 예산(1억1400만원)을 낭비했다. 5년간 1000억원이 넘는 적자로 인해 채무이자만 매년 100억대가 넘는다. 차라리 그 돈을 서민의 복지사업을 위해 썼다면 얼마나 좋았겠나. 1000억원이 넘는 축구장이나 500억원이 넘는 야구장 건립도 필요하지만 더 중요한 공공의료시설 확충 등 서민들을 위한 복지사업에 투자하지 못했다고 본다.”

-검찰에 고발할 정도로 심각한 사안인가.

“지방자치의 근간 무너뜨리는 행위이자 행정적 조작이 어떻게 심각하지 않나. 1000억원이 넘는 적자를 발생시킨 행정적 문제가 발생했는데도 책임을 지는 사람이 없다. 실무자 2명을 징계한 것이 고작이다. 허위 문서를 작성해 시민을 대표한 의회 기능을 못하게 만든 중대한 범죄행위를 볼 때 너무 가볍지 않은가. 시민들이 혹은 기업이 이런 위법행위를 했다면 어땠겠나. 차라리 관선 시장 때였다면 많은 공직자들이 책임을 졌을지도 모른다. 허위로 문서를 만든 것은 중대한 범죄행위다. 범죄행위는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 목적을 위해 수단 가리지 않고 문서를 위조해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면 파탄재정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검찰 고발 전 법적 검토를 했나. 결과를 어떻게 예상하나.

“시민단체들이 모여 토론도 하고 변호사에게 법률적 자문을 구한 결과 시민들의 권리로 국가 권력기관에서 형사적 처벌을 물을 수 있는 사안이라고 결론지었다. 조직에는 엄연히 지휘 감독에 대한 책임이 뒤따른다. 분식회계로 1000억원 대의 적자를 만든 것이 단순히 실무자들만이 한 일이었겠나. 상식적으로도 이해가 안가는 부분 아닌가. 꼬리자르기 식으로 면죄부를 줘서는 안 된다. 검찰이 공정한 수사를 하리라고 기대한다.”

-재발방지를 위해 무엇을 개선해야 하나.

“결재 라인에서는 적법성 여부를 파악하고 결재를 하는 순간 책임을 져야 한다. 잘못된 일이라면 실무자는 무리한 상관의 지시를 거부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선 책임있는 행정체계가 필요하다. 또 올바른 행정을 위해선 공무원 노조(천안시직장협의회)도 제기능을 해야 한다. 내부감시 기능이 없으니 이런 일이 벌어진다. 잘못된 일을 거부하면 누군가 그 직원을 보호해 줄 수 있는 사회적 구조도 마련돼야 한다. 의회도 바뀌어야 한다. 본래의 기능인 감시와 견제만 제대로 했어도 이런 일을 미연에 방지했을 것이다. 시민단체를 비롯한 시민들의 관심과 참여도 부족하다. 시민이라면 내가 지지하는 정당과 시민단체에 가입해 권리를 행사해야 한다.”

-천안시와 시민들에게 한 말씀.

“천안은 대한민국 발전의 지표가 되는 도시다. 경제력으로 보나 교육수준, 시민의 삶의 질을 보더라도 미래를 가늠할 수 있는 표준도시다. 이번을 계기로 잘못된 제도나 생각, 인식을 바꾸고 천안시는 투명하고 정직하게 시민을 위한 행정을 펼쳐야 한다. 의회는 시민 위해 무서운 눈으로 감시해야 한다. 부족한 부분은 시민단체가 연대해 견제해야 한다.”

윤일규 공동대표
순천향대병원 신경외과 교수로 2008년 12월 천안아산경실련 창립을 물심양면으로 도왔다. 2011년 2월 최장호(전 단국대 무역학과 교수)·김학민(순천향대 행정학과 교수) 공동대표와 함께 천안아산경실련을 이끌어가고 있다.

글=강태우 기자
사진=조영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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