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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서신’ 필자 … 1991년 김일성 만난 뒤 주체사상과 북 현실에 괴리 느껴 전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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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김영환(49)은 1980년대 북한의 주체사상을 학생운동권의 핵심 이념으로 만든 인물이다. 그는 86년 서울대에서 구국학생연맹을 결성하고 ‘강철’이라는 필명으로 ‘한 노동운동가가 청년학생들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부제의 서신을 통해 주체사상을 운동권 내에 널리 퍼뜨렸다. 이때부터 그는 ‘강철서신’으로 불리며 주사파의 핵심으로 떠올랐다.

 그는 89년 7월 북한 공작원에게 포섭돼 노동당에 입당한 뒤 ‘관악산 1호’라는 암호명으로 활동했다. 91년 5월엔 북한 공작원의 안내로 서해상에서 잠수정을 타고 밀입북했다. 북에 다녀온 직후 서울대 법대 동기(82학번) 하영옥 등과 함께 지하운동 조직인 민족민주혁명당(민혁당)을 조직했다. 주체사상을 지도사상으로 한다는 게 핵심 강령이었다. 그 뒤 서울대를 중심으로 한 자주파(NL)가 학생운동의 주류로 떠오른다.

 하지만 정작 김씨는 묘향산 별장에서 김일성을 만난 후 자신이 생각한 주체사상과 북한의 현실에 큰 괴리가 있음을 알고 혼란에 빠진다. 이후 그는 북한과 거리를 두면서 민혁당 내부에서 기관지 기고를 통해 수령론, 한국식민지론, 프롤레타리아 독재론 등에 대해 단계적으로 문제 제기를 해나갔다. 민혁당 내부에서 북한체제에 대한 태도를 둘러싸고 노선투쟁이 격화되자 그는 97년 7월 하영옥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민혁당을 해체했다.

 그는 90년대 후반 언론 인터뷰에서 “북한 주체사상이 새로운 미래상을 가지고 있을 것으로 기대했지만 현실은 전혀 기대와 달랐다”며 “진정한 주체사상(인간중심 철학) 외에 김일성·김정일 부자, 계획경제, 국유화 등은 버려야 했다”고 고백했다.

 그는 99년 민혁당 사건으로 구속된 후 사상전향문을 쓰고 공소 보류로 석방됐다. 이후 전향한 자신의 조직원들과 함께 계간지 ‘시대정신’을 만들어 북한 민주화를 위한 활동을 해 왔다. 김씨는 “북한은 지구상 어떤 나라에서 볼 수 없는 독재를 하고 있으며 인민을 굶어 죽이고 인권을 억압하고 있다”며 “인민의 적이 된 북한정권에 맞서 투쟁하는 데 남은 인생을 바치려고 한다”는 소신을 밝히기도 했다. 김씨의 한 지인은 “그가 전향 이후 최근까지 탈북자와 북한 인권문제에 깊이 고민해 온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고성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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