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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이후 中 공략해 고급차 시장 1위 고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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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0호 24면

아우디는 2005년 콰트로 출시 25주년을 기념해 상시 4륜 구동인 콰트로의 성능을 시연하는 무대를 마련했다. 4.2L 터보 가솔린 엔진을 단 A6 콰트로 모델이 핀란드 피카보리 스키장의 37.5도 눈 덮힌 급경사 활강로를 거슬러 올라가고 있다. 콰트로는 일반 도로에서 앞ㆍ뒷바퀴에 4대 6으로 힘을 분산하지만 미끄러운 도로에서는 뒷바퀴에 최대 85%까지 힘을 몰아 준다. 작은 사진은 아우디의 디자인 아이콘 TT.

자동차 매니어들한테 프리미엄 자동차, 고급 승용차 브랜드가 뭐냐고 물으면 절반 이상이 벤츠ㆍBMWㆍ아우디를 꼽는다. 과거의 영광을 쳐 줘서 재규어ㆍ캐딜락을 꼽는 이들이 있을 것이고, 마음을 넉넉하게 먹으면 렉서스ㆍ볼보까지 넣을지 모르겠다.

김태진 기자의 Car Talk 브랜드 이야기 ⑧ 아우디

2011년 8월에 출시된 중형세단 7세대 A6. 2.0L 터보가솔린 엔진은 최고 211마력을 낸다. 중앙일보가 선정한 ‘2012 올해의 차’에 뽑혔다.

기자는 고급차 기준으로 크게 세 가지를 따진다. 우선 이름과 함께 금세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어야 한다. 벤츠 하면 ‘고급차의 대명사’, BMW 하면 ‘드라이빙 머신’ 하는 식이다. 둘째는 기존 것을 답습하지 않고 업계를 선도하는 기술과 혁신성이다. 마지막으로 디자인이다. 멀리서 봐도 ‘아, 저 차는 ***구나’ 알아볼 정도가 돼야 한다.

그렇다면 근래 대중차 브랜드가 쏟아내는 1억원대 대형차는 어떻게 봐야 할까. 모두 고급스러운 소재를 사용하고 첨단장치를 달고 있다는 점에서, 또 디자인도 꽤 훌륭하다는 점에서 고급차와 비슷하다. 하지만 대중차 브랜드 이미지는 쉽사리 지워지지 않는다. 이런 차들은 아직은 고가(高價)차로 분류돼야 한다. 고급차 디자인을 부분적으로 베끼기 일쑤다. 물론 벤치마킹이라는 표현을 쓰지만…. 남들이 먼저 개발한 신기술을 뒤늦게 장착해 비싼 가격을 받는 차라고 볼 수 있다. 고가차는 어딘지 모르게 경쟁 모델 디자인과 흡사하다. 새로 적용한 기술 대부분도 프리미엄 브랜드에서 먼저 개발해 쓴 것들을 준용한다.

고급차는 비슷한 크기와 성능의 대중차보다 통상 30∼50% 비싸다. 그런데도 부자들은 고급차에 선뜻 지갑을 연다. 단지 돈이 넉넉해서만은 아니다. 엔진 출력처럼 눈에 보이는 수치 이외에 어딘가 녹아들어 있는 프리미엄 브랜드만의 가치를 느끼기 때문이다.

아우디(Audi)는 고급차 시장에 가장 늦게 진입한 후발주자다. 70년대까지 유럽의 대중차였다. 그러다가 80년대에 세계 첫 사륜구동(콰트로) 승용차를 내놓으면서 고급차 시장에 본격 도전해 성공을 거뒀다. 올해로 103년인 아우디 역사는 여러 차례 합병과 좌절을 맞본 시련의 연속이었다.

1899년 독일 쾰른에서 호르히자동차를 설립한 어거스트 호르히 박사는 1909년 자신의 성 호르히를 따 아우디를 세웠다. 아우디는 듣다는 뜻의 호르히를 라틴어로 바꾼 것이다. 4개의 원을 이어 붙인 아우디의 유명한 로고는 합병 과정에서 생겨났다. 1932년 독일 작센 지방의 자동차 회사였던 아우디ㆍ반더러ㆍ호르히ㆍ데카베는 규모의 경제를 살리기 위해 합병을 하면서 회사명을 아우토 유니언으로 정했다. 기술력 면에서 고만고만했던 네 회사는 상호 협력이 가장 큰 과제였다. ‘서로 사이 좋게 일하자’는 뜻에서 원 넷을 고리처럼 연결해 의기투합했다. 요즘에는 이 로고가 부의 상징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링(ring)을 결혼반지에 비유해 아우디는 네 번 결혼할 정도의 여유가 있는 사람이 탈 수 있는 차라는 우스갯소리를 낳았다. 공교롭게 아우디 회장을 지낸 페르디난트 피에히 현 폴크스바겐그룹 이사회 의장은 네 번 결혼했다.

하지만 네 개의 링 결합을 완성하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신차 개발을 놓고 내분이 이어지면서 58년 아우디는 다임러-벤츠로 넘어갔다. 벤츠는 아우디를 한 단계 아래 급의 고급차로 키우려 했지만 정체성이 애매해지자 아우디는 64년 폴크스바겐그룹에 인수됐다. 아우디는 폴크스바겐과 대동소이한 대중차였다. 폴크스바겐처럼 전륜구동이었다. 고급차는 후륜구동이 대세다. 벤츠ㆍBMW뿐 아니라 미국 캐딜락, 영국 재규어도 그렇다. 후륜구동은 자동차의 앞뒤 무게 배분을 이상적인 50:50에 근접시키면서 안정된 코너링과 승차감을 모두 만족시킬 수 있었다.

80년 아우디는 전륜구동의 한계를 뛰어넘는 모험을 한다. 제네바 모터쇼에 4륜구동 콰트로를 내놓아 세상을 놀라게 했다. 콰트로는 전륜구동을 유지하면서 차대를 가로지르는 축(프로펠러 샤프트)을 통해 뒷바퀴에도 동력을 전달했다. 4륜구동으로 핸들링과 승차감의 한계를 극복한 것이다.

70년대 들어서는 미국에서 뼈아픈 실패도 맞봤다. 한 방송사에서 ‘아우디는 급발진 위험이 있다’는 충격적인 보도를 내놓았다. 기술적으로 검증이 충분히 되지 않은 다소 자극적인 급발진 동영상이 미 전역에 전파를 탔다. 2010년 초 도요타 리콜 사태와 비슷했다. 판매는 곤두박질쳤고 결국 미국에서 눈물을 머금고 철수해야 했다. 아우디는 80년대 중반 다시 미국에 진출했다.

아우디는 중국 시장에서 발 빠르게 움직였다. 89년 어떤 고급차 브랜드보다 먼저 중국에 입성했다. 벤츠ㆍBMWㆍ렉서스가 미국에 집중하는 동안 아우디는 90년대 이후 지금까지 중국에서 고급차 1위를 고수하고 있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여파로 미국 자동차 시장이 얼어붙자 판세는 뒤집어졌다. 미국 의존도가 30%에 달하는 벤츠ㆍBMW가 2차대전 이후 처음으로 적자를 냈다. 미 판매 비중이 10% 이하인 아우디는 중국 약진을 바탕으로 그해 처음 연간 판매 100만 대를 넘어서면서(100만3400대) 흑자를 지켰다. 아우디는 2015년 연 150만 대 판매를 돌파해 세계 고급차 시장 1위를 하겠다고 내심 벼른다. 요즘에는 미국에서도 호조라 불가능한 욕심만도 아니다. 품질은 고질적 약점으로 꼽힌다. 신기술을 다양하게 적용하다 보니 그런 소리를 듣는다. 미 JD파워 조사에서 아우디의 초기 품질은 중위권에 자주 머문다.

아우디는 폴크스바겐그룹의 우산 아래 있다는 덕을 톡톡히 봤다. 개발비를 줄이면서 다양한 차종을 단시간에 내놓을 수 있는 폴크스바겐-아우디의 차체·엔진(플랫폼) 공유 전략이다. 소형 세단 A4와 A4아반트(왜건)ㆍA4컨버터블ㆍA3해치백ㆍA5쿠페, 그리고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인 Q5는 모두 A4와 동일한 차체와 엔진을 쓴다. 물론 폴크스바겐 골프도 A4와 이들을 공유한다. 다양한 차종에 같은 차체와 엔진을 사용하면서 생산단가를 낮추는 규모의 경제를 톡톡히 누렸다. 물론 플랫폼은 같아도 차종마다 확실하게 차별화를 기한 디자인 경쟁력이 뒷받침하지 못했다면 불가능한 성공이었다.

아우디는 한국에서도 잘나간다. 2004년 진출 첫해에 807대를 팔기 시작해 지난해 1만 대를 돌파했다. 올해는 1만5000대가 목표다. 아우디는 ‘기술을 통한 진보(Vorsprung durch Technik)’를 표방한다. 요즘에는 기술뿐 아니라 디자인을 통한 진보에도 두드러진 성과를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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