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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 부러지기보다 휘어질 줄 알아야 진정한 알파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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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류혜정(左), 설금희(右)

“여자 후배들, 참 똑 부러지죠. 한데 때론 부러지기보다 휘어질 필요가 있어요. 전략적으로.”

 LG전자 여성 대졸 공채 1호 출신 임원, 그리고 LG전자 최초의 엔지니어 출신 여성 임원. LG그룹 우먼파워로 꼽히는 LG CNS 하이테크사업본부 설금희(51) 상무와 LG전자 MC(모바일커뮤니케이션즈)연구소 류혜정(47) 상무 얘기다.

이들에게 ‘여후배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물었더니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조직에서 살아남는 게 남자라고 쉬울 리 없다. 하지만 수적 열세에 놓인 여자라면 더욱 쉽지 않다. 이들이 “여자라 불리한 제도는 없다”면서도 “남성이 다수라 생기는 갈등이 있는데 그럴 땐 전략적으로 행동해야 한다”고 말했다.

 설 상무는 자신의 경험을 예로 들었다. 그는 1983년 ‘결혼하면 사직한다’는 계약서에 서명하고 입사했다. 그땐 그게 사규였다. 그리고 2년 뒤 결혼해 퇴사했다. 하지만 퇴사 한 달 만에 계약직으로 채용됐고 1년 뒤 재입사했다. 그 비결이 ‘부러지기보다 휘어지기’라는 것이다.

 “출근해 하는 첫 번째 업무가 뭐였는지 알아요? 청소예요. 고졸 여사원처럼 유니폼을 입고 일하고 말이죠. 첫 대졸 여사원이다 보니 무슨 일을 시키고 어떻게 대우해야 할지 몰랐던 겁니다.”

 함께 입사한 여자 동기들은 거세게 항의했다. 정당한 요구였지만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같이 일하기 힘든 후배’란 낙인만 따라왔을 뿐이다. 설 상무는 못마땅했지만 주어진 일을 열심히 했다. 그러면서 동료로 인정받기 시작하자 문제를 제기해 풀 수 있는 힘이 생겼다. 그는 “그땐 미처 생각지 못했지만 대단히 전략적인 방법이었다”며 “퇴사 후 재입사할 수 있었던 것도 그 덕분”이라고 말했다.

 류 상무도 같은 말을 했다. 각종 고시에서 여성 돌풍을 일으키는 알파걸들이 정작 사회생활을 시작하면 그만큼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게 ‘전략적으로 휘는 것을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공부하는 건 혼자 하면 돼요. 반면에 회사 일은 협업이죠. 다수의 습성을 이해하고 주류의 룰에 적절히 맞춰 가면서 원하는 걸 얻어내야 해요. 그게 전략이죠.”

 류 상무가 이 같은 생각을 갖게 된 건 관리자가 되면서다. 연구소 특성상 남자가 많았는데 리더로서 목표를 달성하려면 이들의 소통 방식에 맞출 필요가 있었다. 그는 “여자들은 상황을 A부터 Z까지 설명해 공감을 얻으면 잘 따라오지만 남자에게 그렇게 하면 무능하게 비칠 수 있다”며 “남자들은 경상도 식으로 용건만 말하는 걸 선호하더라”고 말했다. 류 상무는 책임자 직급으로 승진하는 여후배들을 불러 ‘경상도 식으로 말하는 법을 훈련하라’고 조언한다.

 결혼·육아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다. 올해 26세인 딸과 21세 아들을 둔 설 상무는 “일과 육아를 모두 잘할 순 없다. 주변의 도움을 청하고 받으라”고 했다. 아이를 키울 땐 좋은 습관을 갖게 하는 데 초점을 맞추라고도 했다. 그러면 아이가 엇나가는 일은 없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미혼인 류 상무는 “결혼하라”고 말했다. 한 가정을 이끄는 책임감과 생존력을 배울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리더란 오케스트라의 지휘자 같은 존재다. 갈등을 풀어가며 하나의 가치와 목표를 향해 간다는 점에서 가정에서의 경험은 인간으로서, 리더로서 유의미하다”고 덧붙였다.

 설 상무와 류 상무는 “시대와 시장이 여성을 원한다”고 말했다. 최근 각 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이 여성 임직원과의 스킨십을 늘리는 것도 이 같은 맥락이라고 했다. “고객의 요구는 다양해졌고 게다가 빠르게 변해요. 이런 시대에 기업이 살아남으려면 다양성이 중요하죠. 게다가 여성은 공감과 이해 능력을 가졌고요.” 이들은 “소프트파워에 대한 시대적 요구가 여성에게 날개를 달아 줄 것”이라며 “살아남아야 날개를 달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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