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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칼럼] 일그러진 몸…일그러진 맘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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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에 내가 제일 좋아하는 영화감독 팀 버튼의 '크리스마스 전야의 악몽' 을 다시 보았다.

다시 보아도 정말 재미있었다.
누구도 그만큼 그로테스크한 것과 슬픔을 깊이 뒤섞어 칵테일을 만들 수 있는 바텐더는 없을 것이다.

이 칵테일의 핵심 테마는 외면과 내면의 분리, 내면의 현현을 허락지 않은 일그러진 신체다.

'배트맨' 을 보자. 그 작품의 진정한 주인공은 누구나 알 수 있듯이 배트맨이 아니라 조커다.
조커는 영화에서 "나는 겉으로는 언제나 웃고 있지만 나의 웃음은 단지 피부 깊숙이 색인된 것일 뿐이다.

만약 당신이 나의 내부로 들어와서 정말로 울고 있는 모습을 본다면 나와 함께 기꺼이 울 것이다" 고 말한다.

이것은 내면과 외면의 배리 상태가 야기하는 우울증을 보여주는데 바로 그 우울증으로부터 예술적인 범죄, 악이 탄생한다.

'배트맨 2' 에서 우리는 박쥐와 팽귄, 그리고 도둑고양이라는 세 마리의 검은 짐승을 보게 되는데 이들은 모두 결점을 가진 동물이다.

박쥐는 낮에 날 수 없고, 도둑고양이는 집이 없고, 펭귄은 날지 못하는 새다.

이 결핍으로 인해 그들은 증오와 사랑으로 뒤범벅된 관계 속에 휘말려 들어가거니와 모두 자신의 내면이 이해되는 것을 미리 포기한다.

그들은 검은 표면만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주인공들이 이렇게 곤혹스럽게 내면과 외면의 분리 상태 속에서 울부짖는 '배트맨' 이나 '배트맨 2' 와 달리 '크리스마스 전야의 악몽' 과 '에드워드 가위손' 은 그 분리의 발견순간의 고통을 슬프게 포착한다.

'크리스마스 전야의 악몽' 에서 해골 잭은 산타클로스를 대신해 아이들에게 선물을 배달하려 하지만 그의 등장은 아이들을 질겁하게 만들 뿐이다.

눈의 기원에 대한 가장 아름다운 동화라고 할 만한 작품인 '에드워드 가위손' 에서 에드워드는 사랑하는 사람을 만질 수 없다.

그의 사랑의 손길은 대상을 상처 입게 할 뿐이다. 그러니 그는 사랑하기도 전에 이미 사랑으로부터 거절된 존재다.

이런 팀 버튼의 작품 세계를 흐르는 고독, 슬픔, 기괴한 신체 이미지, 우울로부터 출현하는 악이라는 테마의 기원은 무엇일까?

팀 버튼이 쓰고 그림을 그린 단행본 '굴 소년의 우울한 죽음' (새터, 2000) 은 그 기원을 엿볼 수 있게 해준다.

23개의 아주 짧은 이야기들로 돼 있는 이 책은 모두 기이한 신체를 가진 어린이들에 대한 이야기다.

어머니가 주방기구와의 불륜으로 낳은 로봇 소년, 기형적으로 눈이 크고 매사를 노려보아야 하는 소녀, 눈에 못이 박힌 소년, 여러 개의 눈을 가진 소녀, 검댕 소년, 신체의 절반이 굴인 굴 소년, 암모니아와 담배연기를 좋아하는 유독 소년, 미라 소년, 쓰레기 소녀 등이 주인공들이다.

그들은 모두 사랑받을 수 없는 존재들이며, 어쩌다가 사랑을 받게 된다면, 그것은 그들의 존재를 파괴하는 치명적인 것이 된다.

예컨대 '제임스' 라는 제목 이야기. "안타깝게도 산타클로스는 제임스에게 장난감 곰을 선물했습니다.

그 해의 1월에 제임스가 회색 곰으로부터 공격을 받아 다쳤던 일을 모르고…. " 또 하나 '마른 가지 소년과 성냥 소녀의 사랑' . "마른 가지 소년이 성냥 소녀를 사랑했습니다.

너무나 큰 사랑이었습니다.
소년은 소녀의 어여쁜 모습에 넋을 잃었습니다.

그 뜨거운 열정이 좋았습니다.

마른 가지와 성냥의 사랑에도 과연 불꽃이 타오를 수 있었을까요□ 마침내 불꽃이 튀어 오르자 그 순간 소년의 온 몸은 불타버리고 말았습니다.
"
이런 으스스한 이야기들의 심리적 기원을 드러내주는 것은 부모가 나오는 이야기인 '로봇 소년' '굴 소년의 우울한 죽음' '닻 아기' 에서다.

여기에 나오는 세 어린이는 모두 부모의 욕망의 대상이 아니다.
그들은 모두 코블폿 부부가 내버린 기형아 아들 오스왈드(팽귄맨) 처럼 부모가 원치 않았던 아이들이다.

이런 이야기들의 서사의 전후를 뒤집어 보면 그 안에 흐르는 심리적 진실이 드러난다.
그것은 아이들이 기이한 신체를 가졌기 때문에 부모의 욕망의 대상이 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의 욕망의 대상이 되지 못한 아이는 자신의 신체를 기이한 것으로 체험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일그러진 자아의 이미지가 신체 위에 투사되며, 마음의 결핍이 신체의 결핍 상태로 전이된다.

우리는 모두 이 세상에 자신의 욕망만으로 태어나지 않았다.
우리의 존재는 처음부터 타자의 욕망으로 인한 것이다.

그러니 그 욕망이 불확실하다면, 우리는 모두 자신이 왜 존재해야 하는지 잘 알 수 없게 되며, 자기 존재가 언제라도 파괴돼 버릴 수 있다는 두려움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 가혹하고 두려운 경험을 표상해 낸다는 것, 그것이 팀 버튼이 성취한 것이다.

그것은 표상되는 순간, 또는 표상의 세계 안에서 그 경험을 반복해내는 순간 우리는 그 고통에서 한 뼘 떨어져 설 수 있고, 그렇게 해서 정신의 우울한 죽음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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