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숙자 사망” 북한의 7행 답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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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숙자씨의 남편 오길남씨가 8일 서울 한국프레스센터 외신기자클럽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저서 『잃어버린 딸들, 오! 혜원 규원』도 들어 보였다. 가슴에 달린 카네이션은 아버이날을 맞아 새누리당 하태경 당선인이 달아준 것이다. [최승식 기자]

북한에 억류돼 있던 ‘통영의 딸’ 신숙자(70)씨가 간염으로 사망했다고 북한이 유엔에 통보했다. 스위스 제네바 주재 북한 대표부 이장곤 차석공사가 최근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에 보내는 답변서를 통해서다. A4용지 한 장에 7줄이 전부인 편지엔 신씨의 두 딸 규원(36)·혜원(34)씨가 가족의 구출운동을 벌여 온 오길남(70)씨를 “더 이상 아버지로 여기지 않는다”고 했다는 내용도 담겼다.

 하지만 서울에 살고 있는 오씨는 “북한이 국제여론에 못 이겨 조작된 상투적인 답변을 한 것으로 생각한다”며 “제 아내가 어디서·언제·어떻게 죽었는지, 또 어디로 끌려다니며 살았는지 언급이 전혀 안 됐다”고 말했다. 이어 “여전히 살아 있다고 믿는다”고 했다.

 신숙자씨 모녀 구출운동을 벌여 온 북한 반인도범죄철폐국제연대(ICNK)는 8일 오씨와 함께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북한이 유엔 측에 보낸 서한을 공개했다. ICNK는 “지난해 11월 뉴욕 OHCHR 임의구금 실무그룹에 청원서를 제출했고, 3월 1일 질의서를 받은 북측이 5월 1일 답변서(작성일은 4월 27일)를 보내왔다”고 밝혔다. 북한 당국이 신씨 모녀의 신상에 대해 공식적으로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최근 북한이 유엔에 “신숙자씨가 간염으로 사망했다”며 보낸 답변서. 인사말 등을 뺀 본 내용(붉은선 안)은 7줄에 불과했다.

 북한은 답변서에서 “오씨의 전처 신숙자씨는 1980년대부터 앓아 오던 간염으로 사망했다”며 “오씨가 가족을 버렸고, 또 두 딸들의 어머니를 죽음으로 내몰았기 때문에 신씨의 두 딸들은 오씨를 그들의 아버지로 여기지 않는다”고 했다. 이어 “그들은 오씨를 상대하길 강력히 거부했으며 더 이상 그들을 괴롭히지 말 것을 요청했다”고 통보했다.

 북한은 신씨의 사망 일시와 장소 등 에 대해선 일절 밝히지 않았다.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근거 없이 ‘미스터리’로 연막을 치면서 국제사회의 압력을 차단하려는 시도로 풀이된다. 이에 따라 ICNK는 “공식 문건으로 인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통영의 딸’ 구출운동본부의 허현준 사무국장은 “북한이 신씨를 오씨의 전처(前妻)로 묘사하고, 두 딸이 아버지로 인정하지 않는다고 함으로써 남편·아버지로서 오씨의 권리를 부정하려 한다”고 말했다.

 경남 통영 출신의 신씨는 85년 독일에서 살다가 유학생 남편 오씨를 따라 두 딸과 함께 밀입북했다. 이듬해 오씨는 홀로 탈북해 남한으로 왔고, 신씨와 두 딸은 북한 요덕수용소에 억류돼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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