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영재 선배들에게 듣는 대회 참가 성과 노하우

중앙일보

입력

입학사정관 전형에선 대회에서 거둔 수상 실적보다, 주어진 과제를 해결하면서 쌓은 경험과 교훈을 통해 학생이 얼마나 자아계발과 학업능력을 성취했는지를 평가한다. 입학사정관 전형의 한 평가요소인 비교과 영역의 활동이 활발해지는 시기다. 앞서 대회를 통해 학업 경험을 쌓은 과학영재 선배들에게 과학 탐구 대회에서 역량을 발휘하기 위해 갖춰야 할 사항에 대해 들어봤다.

신뢰도 높이려 일본 논문 읽고 관련 교사에 자문

 ‘지진해일 피해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알아보라.’ 지난해 4월 전국청소년과학탐구대회 탐구토론부문에서 주어진 문제다. 머리를 맞댄 경기과학고 3학년인 천세화·오세빈·김시연군은 ‘방재림’을 떠올렸다. “일본에 지진해일이 발생했을 때 방재림이 있는 해안의 피해가 덜했다는 신문기사를 봤거든요.”

 이들은 전국청소년과학탐구대회 탐구토론부문에서 동해안 지형을 모델로 방재림의 높이에 따라 지진해일 피해가 얼마나 줄어드는지를 과학적으로 제시해 1등을 차지했다. 교내대회 우승부터 지역대회, 전국대회 우승까지 약 6개월이 걸렸다. 이들은 정확도와 출처가 불분명한 인터넷 자료를 뒤지기보다 지진해일에 관한 일본 논문을 찾아봤다. 일어에 능통한 천군이 번역해 친구들에게 설명해줬다.

 실험과 탐구, 논문 작성이 동시에 진행됐다. 이들은 아크릴을 이용해 수조(바다)와 칸막이(파도를 막는 나무)를 만들었다. 수조에 물을 채우고, 물감을 풀어 선명하게 보이게 했다. 칸막이가 얼마나 열리느냐에 따라 물이 칸막이를 넘어오는 양에 차이가 났다. 논문 작성을 위해 실험 과정마다 사진을 찍었고, 나무에 관해서는 생물 교사에게 질문하는 식으로 각 분야 교사에게 자문을 구했다. 기숙사 생활을 하는 학생들은 밤낮과 주말 없이 학교에 모여 실험하고, 결과를 분석했다.

 토론을 대비한 리허설은 100번 가까이 했다. 과학관련 토론대회에서 수상한 교내 토론팀과 교사들 앞에서 발표하면서 실수를 줄이고, 자신감을 얻었다. 토론대회에서는 12명의 심사위원이 지켜봤고, 상대팀의 지적에 대한 반박도 해야 했다. “동해는 관광지인데 방재림을 어떻게 조성하지요?”란 상대팀의 지적에 이들은 “일본도 방재림을 조성하는데 100년 이상이 걸렸습니다. 지금 당장이 아니라 점차적으로 골프장·팬션 등의 조성을 제한할 수 있을 겁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일본 서해에 진도 7의 지진이 발생해 우리나라에 약 10m의 파고가 덮칠 경우 방재림이 50~100m조성돼 있으면 피해가 50%정도 줄 것입니다”라고 반박했다. 오군은 “리허설 때 상대팀의 지적을 예상해 답변을 준비했던 게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강희정 지도교사는 “학생들이 직접 실험을 설계하고 진행해보는 것이 발표의 정확성을 높이는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평소 과학책 즐겨 읽어 정확한 용어 활용 도움

 강혜지(경기 용인시 수지고 1)양이 지난해 중간고사를 준비할 때였다. 스페이플러로 찍어 분류한 학습자료를 보면서 공부하는데 침에 손이 찔리고 말았다. 강양은 펜치로 스테이플러 침을 누르다 번뜩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스페이플러에 펜치 기능을 결합하는 거야.’ 작은 구리판이 펜치 역할을 하는데 지렛대의 원리를 이용해 적은 힘으로도 침을 눌러 줄 수 있게 한 것이다. 강양은 이 발명품으로 지난해 대한민국학생발명전시회에 출품해 대통령상을 받았다. 대회는 발명 아이디어를 글과 그림으로 표현하는 1차 서류심사와 실물 발명품을 출품하고 심사위원 앞에서 설명하는 2차 심사로 이뤄진다.

 강양은 3개월 동안 서류 작성에 매달렸다. 글은 자신의 아이디어를 얼마나 이해하기 쉽게 정리하느냐가 관건이었다. 강양은 “평소 과학책을 즐겨 읽은 것이 정확한 용어를 활용해 글을 논리적으로 쓰는 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아이디어와 도면이 탄탄하니 실물로 만드는데도 어려움이 없었다.

 3명의 심사위원 앞에서 발표를 할 땐 기지를 발휘했다. 단상에서 내려와 심사위원 앞으로 다가간 뒤 발명품을 직접 보여주면서 설명한 것이다. 실물을 보자 심사위원들은 강양의 말을 더 쉽게 이해했다.

 이런 점 때문에 처음 출전한 발명 대회에서 큰 상을 탈 수 있었다. 발명노트도 한 몫했다. 발명노트를 늘 갖고 다니면서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마다 수시로 그림을 그리거나 글로 썼다. 강양은 이런 재능을 계발하기 위해 과학중점학교로 진학했다. 강양은 “생명공학자가 돼 수술용 스테이플러를 만드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다.

생물 궁금한 점 생기면 친구 모아 토론하고 실험

 “생물 문제는 문제집 속에만 있는 게 아니라 생활 속에도 있더라고요.” 곽승민(경기 과학고 3)군은 주변 생물을 보면서 스스로에게 문제를 내고 풀어보곤 했다. 꽃대에 털이 많이 난 식물이 왜 그럴까 고민하고 ‘수분 증발을 막아 건조한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것’이란 가설을 세운 뒤 조사를 통해 확인해보는 식으로 조사했다. 그 꽃과 비슷한 종들을 조사하면서 여러 꽃의 특징도 알게 됐다. 곽군은 “하나의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깊이 있게 탐구하게 해준다”고 말했다.

 이런 탐구정신 덕에 지난해 7월 국제생물올림피아드에서 금메달을 받았다. “다른 친구들보다 문제집을 많이 풀진 않았어요.” 대신 정확한 개념 이해를 강조했다. 문제는 개념을 확실히 아는지 확인하는 용도로 활용했다. 곽군은 초등학생 때부터 동식물에 관심이 많아 과학 책을 자주 읽고, 과학 다큐멘터리 즐겨 봤다. 이에 힘입어 초등학생 때도 중학교 생물 교과서를 즐겨 읽게 됐다. 중학생이 된 뒤엔 대학수학능력시험 문제집을 보면서 기초 과학의 개념을 익혔다. 곽군은 “수능시험 문제는 사고력을 요구하는 문제들이라 개념을 튼튼히 다지는 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고교생이 된 뒤에는 의학전문대에서 보는 생물책을 즐겨 볼 정도가 됐다.

 생물은 수학·물리와 달리 답이 딱 떨어지지 않을 때가 많다. 곽군은 이 점을 호기심을 키우는 데 활용했다. 교과서를 읽다 궁금한 점이 생기면 친구 한 두 명을 붙잡고 토론을 벌였다. “난 이렇게 생각하는 데 넌 어때?”하는 식이다. 몇 시간 동안 DNA 복제에 관한 토론을 한 적도 있다. 국제생물올림피아드는 일주일 동안 시험이 진행되는데 1파트는 시험만 보지만 2파트에선 실험을 한 뒤 결과를 바탕으로 문제를 풀어야 한다. 평소 학교에서 과학 실험을 자주하고 실험을 바탕으로 논문을 써 본 곽군이 과제를 침착하게 해결 할 수 있었던 이유다. 하지만 곽군은 “평소에 스스로 실험을 자주 해볼 것”을 추천했다. “어렴풋이 아는 지식이 더욱 확실해질 것”이라고 조언했다.

<임선영 기자 youngcan@joongang.co.kr 사진="김진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